경험 적어보기
나에겐 '미팔'이라는 베프 모임이 있다. 고등부 때 친구들로 자칭 미녀팔총사 8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6명의 친구들이 정기적, 비정기적 모임을 하고 있다. 한 명의 친구는 목회자의 아내가 된 사모님인데 지금은 타국에 나가 있어 만나지 못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의 친구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나머지 6명의 친구들은 아직도 한 교회에 다니며 우아하게 늙어가고 있다. 미팔모임을 할 때면 친구들은 종종 이런 얘기를 한다. "말 마라~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시작하면 3박 4일이다!" 또는 "내가 지금까지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내도 몇 권은 나올 거다!" 이런 이야기다. 실제로 책을 낸 친구는 없고 지금은 내가 내려고 시도 중이다. 다만 나의 친구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르신들은 만나 뵈어도 내가 살아온 인생 책으로 내도 될 거라고 하시는 말씀을 종종 듣는다.
누구 하나 스토리 없는 사람은 없으니 살아온 이야기만 풀어놓아도 책 한 권 나오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인생에 의미 없는 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서부터 현재까지 내가 경험한 것들을 종이에 적어보자. 꼭 종이가 아니라도 나만의 수단을 통해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실제로 나는 종이에 그동안 해봤던 경험들을 적어 내려가면서 참 많은 도전과 시도를 했었구나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 피아노 레슨, 반주, 지휘, 노래, 플루트, 플루트 레슨, 일본어 배우기, 헬스, 스쿼시, 운전, 퀼트, 컴퓨터 활용능력, 비누 만들기, 캔들 만들기, 디퓨저 만들기, 네이버 카페 운영하기, 블로그 운영하기, 티스토리 블로그 운영 & 애드센스 광고 수익 만들기, 브런치 작가 되기, 스마트 스토어 운영하기, 자사몰 만들기, 네이버 검색광고 운영하기,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광고 운영하기, 쇼핑몰 통합 솔루션 프로그램 다루기, 재고 관리 프로그램 다루기, 오프라인 매장 운영하기,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 통합 운영하기, 폐쇄몰 운영하기, 온라인 창업하기,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사업자 전환하기, 직원 관리, 스몰 비즈니스 시스템 구축하기, 매뉴얼 만들기, 카피라이팅, 글쓰기, 책 쓰기, 독서모임 운영, 전자책 쓰기, 유튜브 채널 운영, 간단한 영상 편집, 워드프레스 블로그 운영하기 등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그야말로 정말 경험한 것들이다. 이중에서는 전공이기 때문에 전문가 수준인 것도 있고 취미로 접근해서 입문자 수준인 것도 있고 스치듯 지난 경험도 있다. 그동안의 내 경험을 적어보는 것은 나의 '전문성' 정도를 알아보기 위함인데 꼭 수준급일 필요는 없다.
나는 클래식 피아노 전공자이다. 전공하지 않은 이들에 비하면 나는 전문가인 셈이다. 지금의 내가 내 피아노 수준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레슨을 받는다면 당연히 나보다 더 뛰어난 전문가를 찾아가서 받을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를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사람이 내가 찾아갈 그 전문가에게 레슨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아무도 그럴 사람은 없을 것이고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입문자에게는 엄청나게 뛰어난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정 수준의 준전문가 이상은 되어야겠지만 아주 프로의 영역은 아니어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그 분야의 엄청난 프로의 경우 처음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입문자의 고충과 어려움은 이미 정상급 프로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겐 너무나도 당연해서 생각해 볼 여지도 없는 문제일 수도 있다. 이것이 준전문가 수준이어도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이유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준전문가 수준도 안된다 해도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만 정했다면 관련 분야 도서들과 강의들로 빠른 시간 안에 준전문가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현재의 나는 온, 오프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6년 차 법인 대표이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전에 온라인에서 건강식품을 잠시 팔아본 적이 있었고 핸드메이드 캔들과 디퓨저를 판매해 본 경험이 있었지만 거의 입문 단계에서 사업을 접었기 때문에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지난 6년간 내가 치열하게 버틴 시장은 온라인 쇼핑몰 레드오션 TOP3 안에 들어가는 여성의류 카테고리이다. 20대 이상의 수많은 여성분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의류 또는 액세서리 쇼핑몰 운영이라고 하니 이러한 결과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이쪽 시장은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실제로 도전장을 내미는 스타트업 쇼핑몰들이 많다. 6년 동안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쇼핑몰들이 새로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쉽게 도전하지만 매일이 전쟁터인 이 생태계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경쟁업체들도 한순간에 홈페이지가 폐쇄되면서 폐점을 하는 상황을 많이 맞닥뜨렸다. 아무리 경쟁업체라고 해도 한순간 사라지는 것을 발견하면 내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레드오션 영역에도 생존법은 분명 존재한다. 힌트를 주자면 키워드는 '차별성'이다. 나만할 수 있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남들과 똑같이 하는 도전은 안 하니만 못하고 쉽게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차별성을 갖고 꾸준히 브랜딩 한 결과 지난 3-4년간 코로나라는 풍파를 맞으면서도 잘 살아남았다. 아... 이 시점에서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건 기분 탓이겠지?
갑자기 나의 사업 이야기를 구구절절 쓴 것은 이유가 있다. 이렇게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 오프라인 쇼핑몰을 운영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너무 부족해 보이고 잘 안 되는 것, 못하는 것만 눈에 들어오고 개선할 것들만 눈에 들어온다. 한 모임에서 향후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변분들이 온라인 쇼핑몰 쪽으로 교육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 활동하고 있는 강사들도 많고 내가 누굴 가르칠만한 실력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이제 막 스마트 스토어를 시작하려고 하는 입문자들에게는 상품 등록하는 방법조차도 배워야 할 과제인데 무슨 겸손의 말씀이시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은 상대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단 무언가를 알고 나면 그것을 알기 전의 느낌을 잊게 되고 이런 현상은 나의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며 듣는 사람의 심정을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지난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수도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엄청난 공부를 했으며 맨땅에 헤딩하느라 매뉴얼 붙잡고 씨름했다. 그렇게 얻어낸 결과물들이니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다음 나는 그동안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의류 쇼핑몰 창업을 앞둔 사장님들에게 나의 경험들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적어도 내가 했던 삽질은 안 했음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잘 정리해서 시리즈물 전자책 발간을 할 계획이고 2권은 초고 작성을 완료했다.
온라인 쇼핑몰 운영 노하우 PDF 전자책을 출간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내 '경험'에서 시작된 것이다. 내가 쉽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주목해 보자. 그 일이 정말 쉬워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 일에 최적화되어서 능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경험과 지식, 정보가 나의 강점 주제가 될 수 있다. 인생에 의미 없는 순간은 없다. 나의 경험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잘 정리하면서 보석을 발견해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