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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Jun 18. 2023

강은 산과 함께 흐른다 - 섬진강과 하동

국내여행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질문이지만, 누가 “한국의 강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강은?”이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섬진강! 그런데 왜 아무도 이 질문을 하지 않는 걸까 ㅎㅎㅎ


(검색에 따르면) 전북 진안군에서 발원해 광양만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은 한국에서 4번째로 긴 강이다. 그런데 (검색해볼 것도 없이 경험상으로도) 주변에 대도시가 없다. 하구언도 없어서 자연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 있다. 강폭이 넓은데도 주변에 평야가 거의 없어서 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강변의 지형이나 산세가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섬세하고 포근하면서도 크고 시원하게 흐르는 강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섬진강은 알려준다. 광활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가파르거나 차가운 구석 없이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장소들. 벚꽃 피는 봄에서 눈 내리는 겨울까지 모든 계절이 아름답지만, 녹음이 우거진 6월의 섬진강 역시 큰 힐링이다. 바로 오늘 같은 날.



섬진강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들은 항상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갈 때였던 것 같다. 오래 머물 수 있는 강변의 장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 오늘 멋진 곳을 찾았다! 부산에서 직장 생활하는 이점을 살려 전라도까지도 쉽게 자주 여행하면서도, 중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하동에서 숙박한 적은 거의 없었다. 이번엔 하동에 호텔을 잡고, 강을 가까이 오래 볼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살펴보다가 섬진강 습지공원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이곳은 주소지로는 ‘경남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 1344-3’에 해당하는데, 주차장 딸린 큰 유원지 같은 곳이 아니다. 근처 인가로는 신월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을 뿐이다.


나무 데크 말고는 인공적인 시설물이 없고 데크 산책로에서 강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강가는 모래나 땅이 아니라 마치 썰물때의 서해안 뻘처럼 습지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물줄기가 이어지는 습지는 부드러워 보였고 은빛을 띠고 있었다. 조금씩 색상과 채도를 달리하는 초록빛들이 주위를 온통 둘러싸고 있다. 하늘과 강은 비슷하게 연푸른빛이다. 공기는 습기를 머금었지만 덥지는 않다.



늦은 오후, 햇살은 사그라들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습지에서 뽀글뽀글대며 움직이는 민물게들, 멀리 강에 떠 있는 나룻배 한 척, 이름 모를 새들이 있다. 배는 무엇을 하는지 강 한가운데서 움직이지 않는다. 배 위의 사람들과 우리 말고는 사람은 전혀 없다(이렇게나 좋은 곳인데!). 한없이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이다. 물론 마루야마 겐지가 쓴 글처럼 막상 시골에 살게 되면 안평화로울 수도 있겠지.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도 알고 보면 온갖 다툼의 온상인지도 모르지. 어쩌면 우리에겐, 누구에게나, 가까이 가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볼 장소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거리를 두고, 생각을 멈추고, 그저 공기와 바람과 풍경을 느끼기.




(다음날 덧붙임) 호텔은 섬진강에서 갈라져나온 작은강 주교천 근처에 있었다. 시골로 여행을 다녀도 숙소는 주로 시내에 잡았던 우리로서는 예외적인 선택이었다. 호텔 봄봄이라는 곳이었는데, 깔끔한 신축 건물이고 주변이 탁 트여 있었다. 방이 좀 작은 것 말고는 만족스러웠다. 사실 음식은 기대를 안했는데 한식 스타일이 포함된 조식도 괜찮았다. 이 동네에서 빠질 수 없는 재첩국도 같이 나왔다.*



더 좋았던 것은 오늘 아침 먹고나서 호텔 주변을 산책하면서 본 풍경. 산과 강과 들이 어우러진, 소박하고 고즈넉한 경치였다. 내가 무식해서 이름을 모르는 노란꽃이 만발했고, 도로는 멀리 있어서 들리는 것은 풀벌레 소리와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 밖에 없었다. 와중에 우리는 <살인의 추억>에 보면 농수로에 시체가 있었다느니 하는 뻘소리를 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 토, 일 이틀 묵었는데 월요일 아침에는 식당에 한식이 없고 빵, 시리얼, 라면만 있었다. 응? 싶었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월요일 아침엔 손님이 없어서인가 일요일 아침이 특별했던건가. 뭐 애초에 비싸지 않은 숙소라서 괜찮긴 했음. 일단 주변 산책로가 너무 좋아서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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