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임영웅 덕질, 이렇게 합니다.
엄마의 덕질은 1년 내내 유지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초반에는 함께 노래를 들으며 감정을 공유하던 아빠는 언젠가부터 슬슬 엄마를 피하기 시작했다. 너희 엄마는 왜 저렇게 진심이냐는 아빠에게 에이, 몇 달 있으면 시들시들해지겠지라고 했던 게 또 작년의 일이 되었다. 그러니까 1년 동안 엄마의 덕질의 향은 점점 진해졌다. 사실 우리 가족 모두 예상하지 못했다. 엄마가 이렇게까지 진심일 줄은.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보랏빛 엽서와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질리게 들어 그의 숨 쉬는 소리까지 외울 지경이었다. 미스터 트롯 프로그램이 끝나면 엄마의 노래 재생은 잠시 일시정지가 될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그는 또 새로운 노래를 발표했다. 자, 이제 다시 시작인 것이다. 덕질을 위한 여행!
1. 팬카페에 처음 가입한 엄마
작년 8월, 엄마는 영웅시대에 가입해야 된다고 했다. 뭐라고? 무슨 시대? 아, 임영웅 팬카페 이름이었다. 엄마는 나를 불러 다음 가입을 해달라고 졸랐다. 이런 역할은 언제나 내 몫이다. 어쩔 수 없이 착한 딸이 될 수밖에 없다. 카카오 아이디를 찾아 연동을 하고, 팬카페에 처음 가입했을 때의 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드디어 본인도 영웅시대 가족이 되었다며 좋아하던 엄마.
2. 궁금한 게 많은 나이, 60대
엄마는 영웅시대 가족이 된 후로, 종종 내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1) 스밍이 무엇이냐? 지니, 멜론은 어떻게 까는 거니?
2) 유튜브 좋아요 눌러도 돈 안 나가는 게 맞니?
3) 유튜브 구독은 어떻게 하는 거니?
4) 브이 앱이 뭐니......
과장 좀 보태어 엄마의 인생은 임영웅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그를 알기 전에는 유튜브를 보아도 구독, 좋아요 같은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던 엄마. 그저 요리방법을 배우는 것으로 유튜브를 활용했던 엄마였는데, 그의 등장은 엄마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엄마는 하루종일 그의 유튜브 영상을 재생시키며 듣고, 듣고 또 들었다. 안방의 티비에는 뽕숭아학당을 틀어놓고, 핸드폰으로는 영웅시대를 보고, 갤럭시텝으로는 유튜브를 틀어놓는 못말리는 엄마.
몇 달 전, 인스타그램에서 알 수도 있는 친구로 추천된 계정을 보고 눈을 비볐다. 어딘가 낯익은 이름, 너무나 낯익어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 그곳에는 엄마의 이름 석자가 나를 보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인스타그램 가입한 게 맞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걸 어떻게 알았냐며 깔깔 대며 웃었다. 엄마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봤다. 팔로잉은 딱 한 명, 아 역시 그였다. 그의 피드마다 눌려져 있는 엄마의 좋아요를 보자마자 나 또한 웃음이 터졌다. 인스타그램은 어떻게 알았냐는 말에 엄마는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엄마의 온라인세상의 지식과 덕력은 점점 진화하고 있었다. 이제는 딸의 도움없이도 스스로 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3. 응원하기 딱 좋은 나이, 60대
사실 우리 가족은 임영웅의 수혜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가 신곡을 발표하거나, 투표 1위를 달성했거나, 공중파 1위를 차지했을 때마다 우리는 덩달아 웃을 수 있었다. 그때마다 기분이 좋아진 엄마는 함께 투표를 도와준 우리에게 고맙다며 그가 광고하는 티바 두 마리 치킨, 청년 피자를 사주었다. 그러니까, 그의 업적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우리의 식탁에는 웃음이 번졌다. 그렇게 그는 우리에게도 희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만 부작용이라면 치킨을 먹고 싶을 때마다, 비비큐 대신 티바 두 마리를 먹어야 한다는 엄마를 설득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엄마는 굉장히 강력하게 그를 응원했다. 그것은 비단 피자와 치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보일러가 고장 났다던 엄마는 곧장 경동나비엔 보일러를 설치했으며, 온수매트에서 자보고 싶다던 엄마는 곧장 경동나비엔 온수매트를 주문했다. 안방 침대에 깔아 두었던 80만 원 고급 매트는 작은 전기매트를 쓰던 언니에게 돌아갔다. 엄마는 영웅이의 온수매트 위에서 잘 수 있어서 좋고, 언니는 화력 좋은 매트 위에 잘 수 있어서 좋은 일이었다.
엄마는 정말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8월쯤인가. 영웅시대에서 수재민 돕기 성금으로 8억 여원에 달하는 돈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화제였다. 또 한 명의 영웅시대 가족이었던 엄마 역시 소액의 돈을 기부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임영웅 이름으로 함께 도울 수 있으니 영광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엄마에게 박수를 선물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식들 다 키워놓고, 본인의 삶에 집중하게 되는 60대. 뒤늦게 시작된 덕질의 세계에서 활약하기 딱 좋은 나이.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자식들에게 피자를 시켜주고, 온수매트로 몸을 지지면서 그를 응원하기 딱 좋은 나이가 아닐까.
4.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일
한때 나는 엄마에게 꽤나 시달렸다. 관련 투표는 왜 그렇게나 많은 것인지 몇 번이나 어플을 깔아댔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등의 말을 자주 했던 엄마. 이제는 그 말 대신 "지금 영웅이 봤니?", "영웅 신곡 어때?", "투표했니?"가 대부분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내가 알기로 그는 대부분의 투표에서 대부분 1등을 거머쥐고야 말았다. 초반에는 와 이렇게나 인기가 많은 건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은 일절 들지 않는다. 그들(영웅시대)의 단합력은 세계 유명 스타 팬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단단하니까.
일상의 무료함을 고백하던 엄마의 입에서는 더이상 부정적인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나올려고 해도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쉬지 않고 활동하며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그를 응원하기에도 바쁘니까. 나와가장 가까운 엄마를 통해 오늘도 배운다. 덕질 하기 가장 좋은 날은 어제보다 젊은 바로 오늘이라고. 나는 그런 엄마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로했다.
작년 코로나가 뜸해졌을 때, 나는 엄마 친구분들의 콘서트 티켓을 구해드렸다. 이제 천국을 가도 후회 없을 만큼 행복했다는 콘서트 후기를 들으며, 이렇게나 설레는 것은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새벽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취소표를 잡으려 했던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콘서트 티켓을 구했다는 나의 소식을 들은 언니에게 카톡을 받았다. "올해 할 효도 다했네, 효녀 인정" 그렇게 나는 이 동네의 참 효녀로 등극하였다. 효도? 어렵지 않다. 오늘도 임영웅 투표하고, 임영웅 노래 듣고, 엄마와 임영웅 이야기를 하면 끝. 뭐 어려운 일인가.
임영웅 이름 세 글자에 설레고, 그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며 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엄마를 화끈하게 응원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그가 더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노래를 해주길 바란다. 엄마의 덕질이 영원하도록. 그렇게 나는 임영웅을 덕질하는 엄마를 덕질하며 오늘도 행복한 덕질을 관람 중이다. 어쩌면 엄마는 덕질 dna가 없던 것이 아니라, 딱 맞는 덕질대상을 60년만에 어렵게 찾은 것이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면,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는 엄마의 열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