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치과가 안 무서울 줄 알았는데?

귀신보다 무서운데요????

by 프니

어른이 되면 치과가 안 무서울 줄 알았다. 아니, 길가다 귀신을 마주쳐도 덤덤히 제 갈길 가는 온세상 두려울 것 없는 쿨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커보니, 피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다 못해 흘러넘쳐 숨 쉬는 게 다행인 유약한 어른이 되어버렸고, 여전히 눈에 뵈지 않는 귀신을 무서워하고, 지나가다 술에 취해 휘청휘청 걷는 사람을 봐도 무섭고, 엄마의 잔소리도 무섭다. 어릴 때 두려움의 대상이 귀신이었던 게 오히려 행복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 중 으뜸은 치과에 가는 것. 스케일링도 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검진도 받아야 하는데 약품 냄새가 가득한 치과 문을 열고 "저 검진받으러 왔는데요."를 할 용기가 없던 나는 미련하게도 진통제로 치통을 참으며 버티고 버텼다.


그러다 일이 났다. 2월의 어느 날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 과자봉지 하나를 집었다. 그렇게 많이 딱딱하지도 물렁하지도 않은 바삭한 식감의 과자였다. 한두 개만 집어먹으려고 했는데 어느덧 과자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냥 다 먹어치우자는 맘으로 마지막 과자를 무심하게 씹었을 때였다.


"뜨악"

머리가 울렸다. 그리고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마치 4년 전, 사무실에서 해동이 덜 된 가래떡을 먹다가 치아가 부서졌던 그날의 느낌과 같았다. 식탁 위에 퉤퉤 하고 입안의 내용물을 뱉었다. 역시나, 노란빛의 과자 사이로 선명하게 보이는 부서진 치아 조각.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허탈하고 허무했다. 4년 전에 신경치료를 3개나 하고 더 이상은 충치 생길 일은 없겠지 하며 살았는데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됐으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담담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치과에 가는 것.

그렇게 바로 치과의 문턱을 넘었다. 편할 리 없는 치과의자에 앉으니 내 몸은 자연스레 눕혀졌고, 곧 얼굴 위에는 초록색 천이 써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곳에 도착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벌렸고, 잠시 의자를 세우더니 선생님은 거울로 내 충치를 직접 보게 하셨다. 애써 모르는 척했던 두려움을 직면하던 순간, 신기하게도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진단이 내려졌다. 깨진 치아는 너무 많이 썩어서 치료를 해야 하고, 그 옆에, 그리고 사랑니도 뽑아야 한다고 했다. "이거 대공사가 되겠네요?"라는 선생님의 낮은 저음은 순식간에 나의 두려움을 신경에 가까운 충치만큼 이 더 깊어지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에 신경치료 아픈가요, 얼마나 아픈가요를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두려움을 안고 충치치료가 시작이 된 날, 내 입속에서는 수류탄이 터지고, 탱크가 지나가고, 물폭탄이 터져 흡사 전쟁을 방불케 했다.


온몸이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어깨, 팔, 다리 할 것 없이 모든 신경과 근육이 작은 입으로 향했다. 이렇게까지 슬플 수도 없었다. 그래도 식사후 바로바로 닦았었는데 왜 이렇게 썩은걸까, 억울하기도 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그때 선생님은 내 오른쪽 어깨를 지그시 3초 정도 잡아주시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요. 저희가 알아서 잘하겠습니다."


아직 몇 번 보지 않은 사람에게 내 치부를 있는 힘껏 보여줘야 하는 것도 싫고, 소름 끼칠 만큼 시끄러운 기계의 소리도 싫었지만 선생님의 한마디는 날 조금이나마 진정하게 해 주었다.



신경치료 두 번째 날이었다. 이번에도 마취를 해주면 안 되냐 물으니 선생님은 참을 수 있는 고통이라며 치료를 시작했고, 정말 그 말처럼 참을 수 있는 고통을 견디니 어느새 치료가 끝났다.


그렇게 자주 치과에 드나들며, 입을 벌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나는 선생님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지어 치과에 가는 날이 기다려졌다. 오늘은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해주실까? 하는 기대감과 스스로 내 몸을 관리하는 나의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어느새 나는 치과의 우렁찬 석션소리를 씩씩하게 즐기고 있었다.


비로소, 치과공포증에서 벗어났다.


하루는 치료를 받고 입을 헹구는 내게 선생님이 물었다.

"10층짜리 건물을 지을 때 어떻게 짓죠?"


"10층짜리를 짓는다고 해서 1층부터 짓는 게 아니죠? 저 아래 튼튼한 기둥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하죠. 치과 치료도 마찬가지예요. 너무 힘들고 지치겠지만, 차근차근 기초부터 올려나가야 치아를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어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치료를 할 때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며 공감했다. 마치, 교양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처럼 고개를 끄덕였고, 선생님의 결연한 눈빛은 내게 무한한 신뢰와 뜨거운 울림을 주었다.


나는 치아치료를 받음과 동시에 내 인생을 뒤돌아봤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때로는 너무 쉽게 무언가를 얻지만, 대부분은 인내를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하나씩 올려 견고한 성을 만들어내야하는 것처럼.



이제 오늘이면 모든 치료가 종료된다. 오랜시간이 걸린 큰 공사가 끝났다. 치료를 중단 하고 도망가고 싶었던 두려움을 이겨내고 아주 천천히 쌓아 올린 건물 옥상에서 여유로운 바람을 맞고있는 기분이랄까. 홀가분하다. 여전히 치과 가는 게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무섭지는 않다.

깨져버린 것은 충치가 아니라 내 마음속 두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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