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프라이론

실패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시작만 하면요.

by 프니

남편은 달랐다. 남편은 계란 프라이 4개는 먹어야 한다고 했다. 계란을 유독 좋아하는 남편을 만난 탓에, 30알이 들어있는 계란 한 판을 아주 자주 사 먹었다.


계란을 좋아하는 남편과 결혼을 무사히 마쳤더니 코로나가 시작됐고, 그 여파로 고정적인 수입이 끊겼고,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에는 무작정 누워 책을 보다가, 영상을 보다가, 노래를 듣다가를 반복하기 일쑤.


무기력한 시간이 지속되던 침대에서 나를 일으켜 세운 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아닌 허기였다. 한 손으로 꼬르륵 소리 나는 배를 부여잡고 무거운 냉장고 문을 힘겹게 열었다. 엄마가 가져다준 각종 김치통 아래에 며칠전에 사놓은 계란이 보였다.


나는 배가 고픈 것이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계란 하나를 쥐어 프라이팬 위에 톡 하고 깨트렸다. 곧이어 어젯밤에 해둔 밥을 간장에 비비고, 그 위에 계란을 올려 먹었다. 미친 듯이 맛있지는 않지만 먹어줄 만한 맛. 별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맛은 있었다.


무기력증에 빠져 계란 프라이 하나 해 먹는 것도 힘에 부쳤던 날이 있었는데, 심지어 간장 계란 비빔밥을 만들어먹었다는 나의 소식에 남편은 좋은 현상이라며 엄지를 들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입맛이 없을 때마다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먹었는데, 한 번은 문득 입안에 터져버린 노른자처럼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고정적인 수입이 끊기니 다시 한번 세상 밖으로 퉁 하고 튕겨져 나온 것 같았다. 살아가는데 직장이 필수는 아니지만, 직업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딱히 내세울 능력이나 재능이 없었던 것이다. 면접장에서는 아이 없는 기혼이라며 대놓고 고개를 저었고, 나는 점점 작아졌다.


자연스레 취준생으로 살았던 20대의 삶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서른이 되면 자랑스러운 사원증을 매고, 식사 후 여유롭게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퇴근후에는 자기계발하는 멋진 대리님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서른이 넘은 나는 또 다시 집에 있다. 앞으로 나가는 대신 후진만 해대는 핸들이 고장난 에잇톤 트럭도 아닌데 난 왜 이럴까?하는 부정적인 생각은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 찍었고, 곧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버렸으니 스스로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놀이공원에서 엄마손을 놓쳐 엉엉울던 그날처럼, 두렵고 막막하고 무서웠다. 남들은 롤러코스터를 타며 즐기는데, 나는 고장 난 놀이기구 앞에 줄 서 있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 되버린 것 같았다.


그때, 남편은 그동안 하고싶었지만, 못해본 일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나는 돈을 버는 행위보다 더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곧장 재능 플랫폼을 뒤져서 배우고 싶던 것들을 배웠다. 웹소설을 배웠고, 유튜브 영상 기획하는 것을 배웠고, 전자책 만드는 법을 배웠고, 글 쓰는 방법 그리고 블로그를 키우는 방법도 배웠다.


사실 돈을 주고 배울 때만 해도 나는 내가 소설 작가가 될 수 있겠어? 유튜브는 무슨? 전자책은 팔리기나 할까? 하는 두려움이 공존했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배웠고, 습득해나갔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어느새 나는 유튜브 스토리작가로 돈을 벌고, 무경력으로 유튜브 영화 편집을 했고, 만들어 놓은 전자책도 아주 가끔 팔려나갔고, 그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블로그 체험단으로 외식비도 줄였다)



내게는 엄청난 성과였다. 반년 전만 해도 내가 이런 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만약 배움의 두려움으로 첫 시작을 하지 않았다면 일구어내지 못했을 일이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프라이로 시작된 나의 요리는 점점 커져 계란말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기대없이 만든 계란비빔밥의 성공덕일까, 나는 조금씩 활력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양한 요리를 시도했다. 오늘은 계란볶음밥?오늘은 토마토계란볶음?으로 점차 확장되어 가는 계란의세계처럼 나는 또 새로운 것을 익혀 나가며 나의 능력을 키워나갔다.


그런데 뒤돌아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치즈 계란말이를 만들려고 덤볐다면

오히려 지금의 계란 요리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 같다.

점점 진화하는 계란 요리

그러니, 처음부터 잘할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고급진 계란 요리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계란을 톡 하고 깨트리는 것.

내 두려움을 깨부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때 계란 프라이에 이어, 계란 토마토 볶음, 계란볶음밥, 계란 샐러드, 계란 토스트, 계란말이, 계란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 아닐까? 이게 내가 말하는 계란프라이(이)론이다. 일단은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더라도 시작할 것.

그 시작은 내게 보잘 것 있는 것들을 가져다줄테니.시작이 반이라는 말과 일치하는 이론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어려우니, 일단 계란으로 계란 치기! 그게 내 전략이다!

오늘도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 계란 하나를 꺼낸다.

아니 두 개. 계란을 깰 때마다 두려움은 깨어지고, 그 계란으로 만든 요리에서는 새로운 도전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설레는 맛이 난다.


계란프라이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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