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옇던 하늘이 오후부터는 구름이 걷히고, 하얀 솜사탕 사이로 연한 하늘색의 바탕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구름을 지고 나르는 바람은 땅 위에 있는 나에게도 여지없이 다가와 오랜만에 손질한 머리를 가차 없이 흐트러뜨리고 지나간다. 지난주까지도 제법 날카롭던 바람은 4월이 되더니 한결 푹신해졌다. 덕분에 이제 막 기지개를 펼친 꽃잎들도 무사히 나뭇가지에 버티고 섰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들은 벼랑에서 외줄을 부여잡은 사람처럼 간신히 나뭇가지에 손을 뻗고 이리저리 휩쓸렸다. 꽃잎의 체력이 아직은 충분했던 것인지, 오래 기다린 꽃을 나무가 벌써 보내기 아쉬웠던 것인지 내가 기대하던 흩날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그 꽃들은 지난해보다 더 알차게, 더 높이 피어나고 있었다. 하늘이 맑게 갤 수록 꽃잎은 빛을 받아 더 반짝거린다.
꽃이 반가운 사람이 되었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을 지내고 무사히 피어난 꽃잎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린다. 바람과 비에 흩날려 땅으로 나뒹굴다 결국 썩어버렸던 작년의 꽃잎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것의 모습으로 다시 만개한다. 해가 다르게 세월의 흔적이 쌓이는 나를 보자면 그것이 적잖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꽃의 고운 자태에 나비도 신이 났는지 활짝 핀 꽃들 사이로 술에 취한 듯 팔랑거리며 날아다닌다. 진수성찬 앞에서 고민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새에서 배달어플을 켜놓고 오래도록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