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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로 Jun 27. 2021

성별 결전의 날

다리 사이에 무언가 보인다

보이시죠? 이렇게 유난히 잘 보이는 아기들이 있어요~

    나에게는 예전부터 가지고 있는 편견이 하나 있다. 아들을 둔 엄마들의 상과 딸을 둔 엄마들의 상이 묘하게 다르다는 편견. 정교하게 말로써 그 둘을 구분 지을 수는 없지만 자녀의 성별을 듣고 나면 '음, 그럴 것 같은'이라는 생각이 들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편견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딸 가진 엄마들의 상'으로 구분 지어 놨다. 막연히 언젠가 내 아이가 생긴다면 그건 당연히 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임신 소식을 안 직후에는 남편도 나도 딸이 아들이 상관이 없었다. 그냥 별 탈 없이 안정기에 접어들기만을 바랐다. 무사히 안정기가 가까워오니 성별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기 시작했고, 의미 없는 희망사항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서로 성별은 상관이 없다며 내숭을 떨었지만 사실 남편은 아들을, 나는 딸을 내심 원하고 있었다.


    특정 성별을 특별하게 원했다기보다는 본인과 친숙한 것에 조금 더 자신감을 보였다는 것이 더 가까운 표현이겠다. 외동아들로 자란 남편도 자매뿐인 나도 본인과 다른 성()의 어린 시절에 대한 정보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와 더불어 각자가 생각하는 로망도 있었을 터.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그냥 단순한 기대에 불과했기에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아기의 성별을 확인하는 그 순간까지는.


    마침내 초음파 상에서 아기의 성별이 구분되던 순간, 우리는 서로의 기대에 진심이었다는 것을 서로에게 들켜버렸다. 시원하게 벌린 아기의 두 다리 사이로 무언가 보이자 남편은 날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어! 어어!! 왑!" 하는, 천장을 뚫고 나갈 기세를 잠시 접은 내적 포효를 내뱉었고, 나는 그 짧은 순간 당황스러움과 함께 잠시 꿈인지 아닌 지를 따져보아야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난 딸 가진 엄마 상인데? 하는 무의미한 외침이 짧은 탄식으로 이어져 나왔고, 동시에 앞으로 내 인생에 임신은 없다던 마음을 빠르게 접고 둘째까지 생각해버린 것이다.


    검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나와 남편 그리고 어떤 형체로 이루어진 하나의 가족 무리에서 어떤 형체가 남자아이로 구체화되었다. 상상 속 내 옆에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고 있는 그 아이가 남자아이였구나. 커다란 의류매장에서 고를 수 있는 옷이 한 줄의 행거 정도밖에 없다는, 뛰고 또 뛰어도 아직도 뛸 힘이 남아있다는, 조금만 커도 집에 와서 세 마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군대 가면 끝이라는, 여자 친구 생기면 더 끝이라는,  결혼하면 내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 남편이라는 그 아들이구나.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을 결혼까지 시킨 후에야 너무 멀리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로 아들이어도 딸이어도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아기의 성별을 물어보면 약간의 시무룩함이 나도 모르게 내 답에 배어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한 선배에게서 '아기가 다 안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방황을 접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 아이가 딸인지 아들인지 보다 더 큰 의미는 내가 알게 될 한 사람의 모습이 구체화되었다는 것이다. 아직은 세포의 느낌이 강했던 존재가 이젠 정말 사람처럼 느껴졌다. 상상하지 못했던 랑랑이의 성별이 나로 하여금 내 미래를 매우 흥미롭게 만들었다. 아들이 있는 나에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아들을 가진 어떤 엄마가 될지, 어떤 시어머니가 될지(혹시 랑랑이가 결혼을 한다면) 같은 것들을 상상해보는 시간이 즐겁다.  


    놀랍게도 지인들은 종종 랑랑이의 성별에 대해 '어쩐지 아들일 것 같아'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어떤 편견 속에서 나는 '아들 있는 엄마의 상'이었나 보다. 나 혼자 '딸 있는 엄마의 상'이길 바랐나 보다. 다행인 것은 랑랑이가 아들이라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뻐한 사람이 있다는 것.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랑랑이의 초음파 사진을 보며 행복해했다. 그렇다고 내가 슬퍼했다는 뜻은 아니다. 기쁨이 진심이 아닐 수는 있어도. 하하

    

    랑랑아!! 네가 아들이라서 정말 행복해 나도!! 이제 정말 건강하게만 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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