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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훈 Sep 08. 2023

손자와 함께 춤을

벌써 여러 해를 아내와 함께 본가인 대구와 딸이 사는 동탄 오가며 손자와 손녀의 양육, 흔히 말하는 황혼육아를 하고 있다.


손자가 태어나기 전에는 이런저런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그야말로 호기롭게 자식은 그 부모가 키우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냐며 육아를 거부하는 말들을 했지만 막상 맞벌이인 큰 딸 내외의 바쁘고 힘든 직장생활을 보고 들으면서 그것은 한낱 허언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말았다.


특히나 몸이 약한 딸의 육아 분투를 도저히 못 본 체할 수 없었다. 이후 모든 일상이 손자와 그 두 해 뒤에 태어난 손녀의 양육에 맞춰진 날들이었고 삼십여 년이 넘는 교직생활을 명예 퇴직하고 얻었던 4년간의 달콤한 자유는 그로써 위리안치*당하고 말았다. 육아의 수고로움은 돌봄 그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발이 묶여버리는 속박 때문이기도 했다.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


퇴직 후 직장생활 중에는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아 좋아는 했지만 자주는 갈 수 없었던 산으로 들로 그리고 해외로, 남아도는 것이 경제적 이익과 맞바꾼 시간뿐이라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그리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었던 Anytime, Anywhere가 손자와 손녀의 등원과 하원이라는 일정한 시간과 어린이집과 영어학원으로 완벽하게 제한되고 만 것이었다.


돌봄 중 정말 어려웠던 것은 아이들이 수시로 그리고 자주 아프던 것이었다.


손자와 손녀가 번갈아 가며 고열이 몇 날 며칠이고 떨어지지 않아 한밤중에 응급실을 찾았고 그리도 주의를 기울였건만 손녀가 문틈에 손가락이 끼어 근 한 달 여를 비교적 멀리 떨어진 정형외과를 노심초사하며 찾기도 했었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어린이집이 불시에 폐쇄되어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이 잦았고 아이들의 양육이 아니었으면 내 전혀 몰랐을 구내염이며 수족구 등등에 손자와 손자가 감염되어 등원을 하지 못하거나 다른 아이의 감염으로 며칠간을 마음 졸이며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게 되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내가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면 큰 딸 내외가 온전히 직장생활에 매진하지 못하겠구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불어 이런 양육의 어려움이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했더라도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저출산의 한 원인이기도 하겠다는 나름대로의 진단을 하기도 했었다.


이런저런 황혼육아의 수고로움들. 그러나 그보다는 귀엽고 어여쁜 손자와 손녀가 조금씩 몸과 마음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데서 오는 보람이 훨씬 크다.


특히 손자에게서, 누구나 그러했을 가장 행복하고 무구했을, 전혀 기억나지 않는 내 어린 시절이 아마도 저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새삼 애틋해지기도 했다. 내 아버지에게서 내게로 그리고 나에게서 딸로 다시 손자에게로 이어지는 그 DNA의 전승이 참으로 신기하게도 여겨졌다. 손자녀 키워줘 봐야 아무 소용이 없더라는 항간의 말이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기는 하겠지만 양육으로 무슨 보답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아이들과 그 아이들로 이어지는 전승이 생은 소멸이 아니라 그렇듯 끊어지지 않고 계속 유전되는, 그로 하여 찰나가 아니라 영원을 꿈꿀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던 것이다.


아준, 여원, 태이 내 손자녀(孫子女)이자

아버지고 어머니이기도 한.





거실 가운데를 무대로 손자가

흔들, 흔들, 흔들

걸음마 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의 저 흥(興)

보고 웃으며 손뼉 치는 어른들 향해

활짝 웃음까지 지어가며 더 신나게 이제는

펄쩍, 펄쩍, 펄쩍

그러다 느닷없이 녀석이

소파에 앉아 그저 미소만 짓고 있는

할애비에게 다가와 어서 일어나라며 재촉한다.

다른 사람들 다 두고

하필 내 바짓가랑이 잡아끄는데

아내와 딸들 차치하고라도

사위들 보는 앞에서 민망하게도

자꾸만 재촉하는데

차마 분위기 깰 수 없어 일어나

무대로 나갔지만 엉거주춤

녀석아, 좀 봐 다오.

내 어색한 미소 지으며

사정하는 눈빛으로 녀석 내려다보지만

어서요,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할애비 올려다보는 것인데

얼굴에 웃음 한가득인데

에라, 모르겠다. 뉘라서 저 순진무구

감당할 수 있으리. 나도 흔들, 흔들, 흔들

굳은 뼈마디 삐걱삐걱 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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