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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훈 Sep 15. 2023

설천리(雪川里) 가는 길

태양 작열(灼熱)하는 한여름 대낮에도 내게 그곳은 온통 눈 덮인 산골마을이다. 그곳에 머물렀던 어느 한겨울의 사흘 밤낮 쉬지 않고 내리던 눈이 내 안에 층층으로 쌓이고 쌓여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내내 녹지 않을 영구동토층(永久凍土層) 이루고 있어서이다.




아침 일찍부터 흩날리기 시작한 눈이 오후 들어서는 아예 폭설(暴雪)로 바뀌어 순식간에 세상이 오직 희디흰 단 하나의 빛깔뿐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까이 보이는 숲의 잎들 죄다 떨구어낸 나목(裸木)들의 예리한 가지들이 바람 불 때마다 흔들리며 허공 찢다 급기야는 마음에조차 생채기 내던 살풍경(殺風景)이 부지불식간에 반전되어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별천지(別天地)에 든 것만 같다.

 

 닷새 머무르기로 하고 들었던 첩첩산중 설천리(雪川里)에서의 사흘째 날.

 

이곳 들어 딱히 무엇을 하겠다고 작정한 것 없어 하염없이 내리는 눈 그저 보고만 있어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나 저렇듯 내리는 눈의 적설량(積雪量) 가늠컨대 꼼짝없이 며칠 더 머무를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 들어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더불어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으로 그를 핑계 삼아 며칠 더 발이 묶이는 것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다른 계절도 아닌 겨울에 이곳 들었을 때 처음부터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는 예상을 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닷새라는 기한 정해 택주(宅主)인 대학 후배에게 집 빌려달라고 했을 때 어차피 이번 겨울에는 이런저런 작품 활동으로 바빠 산중이 아닌 시중에 머물러야 한다며 쾌히 승낙한 그가 굳이 닷새라는 기한 정하지 말고 머물고 싶으실 때까지 머무시라며 묘한 웃음 지었던 것은 여러 번의 겨울 이곳에서 살며 겪은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설천리가 달리 설천리겠냐는.    


낡아 삐걱대는 흔들의자 앉아 한쪽 벽면이 전부 유리라 계절마다 제각각 다른 풍경들 온전히 안으로 끌어들였을 통유리 통해 끼니조차 잊고 종일토록 하염없이 내리는 눈만 보는 생면부지의 장소 설천리.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라는 물음 화두(話頭)처럼 되뇌며 이미 걸어왔던 길들에서의 갖은 일들과 아직 걷지 않은 그러나 걸어가야 할 길들에서의 나날들 곰곰이 생각한다.


초로(初老)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 나는 왜, 이렇듯 뭍임에도 절해고도(絶海孤島)만 같은 이곳에 스스로를 유폐시키려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이렇다 할 뚜렷한 죄(罪) 없이 자꾸만 인적 없는 곳으로의 도주(逃走)를 꿈꾸는 것일까?

나는 왜, 걸어가야 할 남은 길에 희미한 발자국 하나조차 남기지 않는 완벽한 실종(失踪)을 바라는 것일까?


이곳에 들기 삼여 년 전부터 끊이지 않고 이어진 때로는 내가 가해자이기도 했고 피해자이기도 했던 많은 일들. 그로 하여 어느 밤부터 마치 머릿속에 수십수백의 백열등(白熱燈) 커져있어 그를 끄려 할 때마다 오히려 더 밝아만 져 눈 감고 있어도 마음 저 안은 대책 없이 환하던 불면(不眠)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왜, 나는 항상 손 먼저 내밀기만 해야 하고 너는 그 손, 잡기만 하느냐는 피해의식이 팽배해 있어 불화(不和)의 원인이 누구로부터 기인한 것이든 결코 내 먼저 손 내밀지 않겠다는 억하심정이 의식을 온통 지배해 심신이 날로 피폐해져만 갔다.


이전과는 달리 표정이 어둡고 별 일 아닌 것에도 쉬이 짜증을 내는 나를 두고 사람이 달라져 보인다는 아내의 뼈아픈 지적 자주 듣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것을 아내는 정년(停年) 꽤 남은 직장 느닷없이 그만둔 후의 공허(空虛)와 상실(喪失) 때문일 것이라 짐작하며 나를 이해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고 그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서 연이어 겪은 불화로 상처받은 것들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견고한 믿음에 기초한 내 선의(善意)와 이해(理解)가 눈앞의 이익에 송두리째 부인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 몇 차례 겪으면서 타인에 대한 신뢰뿐만 아니라 부인(否認)당한 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게 됐다. 고래(古來)로부터 회자(回刺)되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던 경구(警句)가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씁쓸하게 곱씹게 됐다.

 

마음이 몸을 해(害)하고 그것이 다시 마음을 침범(侵犯)하여 심신이 더불어 피폐해진 날들이 이어졌다.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否認)했다는 베드로. 나는 스스로를 가엾은 예수로 자처했고 많은 날들 시퍼렇게 날 선 칼 들고 베드로를 찾아다녔다. 기어이 찾아 그의 목에 칼을 대고 배교(背敎)의 죄 치죄(治罪)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날 스스로 회개하고 순교한 베드로 쫓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망한 일이냐는 생각이 들었고 더 나아가 정작 베어야 할 것은 그가 아니라 대속(代贖) 위해 기꺼이 십자가 짊어진 채 골고다로 간 예수처럼 그를 자처한 나 자신을 베었어야 했다는 때늦은 각성 들었을 즈음 그를 단단하게 붙들어 매어 다시 덧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겨울의 설천리에 든 것이었다.         

 

틈입자처럼 내 찾아들었던 그때 그곳 설천리. 사흘 밤낮 내린 눈이 쌓인 곳은 다름 아닌 내 마음이었고 그 적설(積雪)의 무게로 인해 그때, 그리고 이후 한참을 휘청거렸었다. 그러나 그것은 돌이켜보면 그때껏 처음으로 그 이전의 삶과 이후의 그것에 관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던 나 스스로 기꺼이 택한 행복한 위리안치(圍籬安置)였다.

 

쌓인 눈이 그야말로 순백(純白)의 내(川) 이루어 흐르는 것만 같던 그곳 설천리에서 비록 발 묶여 꼼짝도 하지 못했지만 그 무엇으로도 결코 묶어둘 수 없던 자유로운 사유(思惟)로 그때껏 삶에 굳은살로 자리해 내내 떼어낼 수 없던 저잣거리에서의 갖은 애환(哀歡)들 말끔히 씻어내 마치 새로 태어난 신생(新生)의 그 무엇만 같던 것이었다. 이후 설천리 그곳, 다시 가지 못했지만 내 안에 그 무엇이 시나브로 쌓여 까닭 없이 삶이 버거워질 때 모든 것들로부터의 완벽한 단절(斷切)이 오히려 생을 긍정케 하던, 그리하여 그 철저한 고립(孤立)이 내가 오롯이 나여야만 너 또한, 나일 것이라는 불이(不二)의 이치로 부질없는 불화와 반목이 아닌 상생(相生)의 세상 염원하게 되던 그곳 설천리.


나는 늘 그곳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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