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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훈 Sep 27. 2023

까페 Blue

호모 마스크루스 혹은, 마기꾼의 일상(日常)이 끝나고 호모 사피엔스의 그것으로 돌아왔지만 마스크 쓰기 전의 일상과 온전한 얼굴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것은 한 구실일 뿐 이미 그 훨씬 이전부터 나와 너는 Mask보다 더 두터운 가면(假面)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의 우울(憂鬱)과 너의 창백(蒼白)이 날로 깊어지는 것으로 추측컨대-





볕 드는 곳으로 옮길까요?


우울남(憂鬱男)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맞은편 앉아 손에 든 반쯤 남은 칵테일

물끄러미 보고 있던 창백녀(蒼白女)가

고개 끄덕이며 일어선다.


언제쯤 끝날까요?


자리 옮기고 잠시 이야기 나누다

고개 돌려 멍하니 창밖 보던 女가

더는 견디지 못하겠던 것인지

쓰고 있던 마스크 벗어 탁자에 놓으며

한숨 쉬듯 말한다.


글쎄요, 쉬이 끝날 것 같지는 않군요.


고개 돌린 女의 가늘고 흰 목 보고 있던 男이

다소 겸연쩍은 표정 지으며 대답한다.


얼마나 답답할까요? 우리 속 짐승들


뜬금없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女


‘……’


돌아가면 새장 활짝 열어야겠어요.


느닷없다는 듯 女의 얼굴 말없이 보고 있던 男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희미하게 웃는다.


짐승이나 새만이 아니었군요. 갇힌 것이


까페 주인의 의도적인 선곡(選曲)이지 싶은

밝고 경쾌한 음악이 연이어 흐르다

짧은 늦가을 해가 서녘으로 기울 때쯤

차분해서 시나브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곡(曲)으로 바뀌어 흐른다.


기왕 마시는 김에 블루스카이나

블루하와이 한 잔 더 해야겠어요.


전작(前酌) 마저 비운 女가 혀로 입술 훔치며

몽롱한 눈빛으로 말한다.


블루스카이라면 몰라도

블루하와이는 독할 텐데요.


창백해 더 짙어 보이는 女의 보랏빛 입술 보며

男이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뭐, 어때요. 안은 이미 짙푸른 바다인 것을

독한 술 한 모금 더한다고 달라질 게 있겠어요.


女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

가리키며 자조(自嘲)하듯 웃는다.


그런가요?


화답도 만류도 아닌 애매한 말로

얼버무리며 女의 얼굴 쳐다보다 男은 문득,

짙은 안개로 윤곽만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섬을 떠올린다.

자신도 女도 분명 거기에 있지만

도무지 거기에 있지 않고 외따로 떨어져 있는 듯한,

마스크의 일상(日常)으로 하여 가려진 것이

코와 입만이 아닐 것이라는.


딩동, 딩동 출입 알리는 벨 연이어 울리며

연인(戀人)인 듯싶은 젊은 남녀 한 쌍과

중년 사내 몇이 들어와

일정한 간격으로 띄워놓은 자리에 앉는다.

별 뜻 없이 그들 보고 있던 男이

잊고 있었다는 듯 탁자 위 마스크 들어 쓰자

女가 고소(苦笑) 지으며 따라 쓴다.

한산했던 오후와는 달리 어둑해지면서

하나, 둘 빈자리 채워지는 까페

답답한 것이 좁혀진 간격 때문이 아니라

실내 떠도는 음험한 그 무엇 때문이라고 여겨질 즈음

음악이 고엽(枯葉)으로 바뀌고

노래에 떠밀리기라도 한 듯 女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안하지만 먼저 가봐야겠어요,

더 늦기 전에 새장 열어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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