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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훈 Sep 11. 2023

새벽시장

오늘 하루는 허투루 오는 것이 아니었다. 해뜨기 전 먼저 눈 뜬 부지런한 사람들이 흐려진 유리창 닦듯 겹겹의 어둠으로 굳게 닫혀있는 문(門) 온몸으로 열어젖혀 비로소 희붐하게 밝아오는 것이다.


거리를 빗질하는 미화원과 도시 외곽 버스 차고지에서 그날의 첫 시동(始動) 거는 운전기사와 먼바다로부터 새벽녘 귀항(歸港)한 고깃배가 몇 날 며칠 잡아 내려놓은 비린내 풀풀 풍기는 갖은 생선들 선별해 나무상자에 담는 억척스러운 수산시장 여인들. 그를 한낱 그들의 밥벌이 수단이라고 여기기에는 내 편한 잠이 어쩐지 미안해지는-.


내뱉는 입김 금세 허옇게 얼어붙던 어느 한겨울 새벽. 어둠 쓸어 포대에 담던 미화원 조심스럽게 지나 연신 하품 쏟아내던 허연 머리의 운전기사가 모는 버스 타고 도착한 수산시장. 수많은 백열등 휘황하던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말없이 생선 선별하던 빨간 고무장갑의 남루한 여인들을 보았다.


그날 딱히 지은 죄(罪) 없음에도 공연히 죄스러운 생각이 들던, 그리하여 수고하신다는 말과 함께 언 손 한 번 꼭 잡아주는 것으로 면죄부(免罪符) 삼고 싶던-.




드럼통 화로(火爐)에 장작불 활활 타오르고

그를 둘러싼 채 바짝 몸 들이민 사람들이

곱은 손과 언 발 녹이고 있다.

며칠 한겨울답지 않게 따뜻했던 날이

느닷없이 몰아닥친 한파(寒波)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을 것이라는

예보가 내려졌던 날의 시장.

싸고 싱싱한 물건 사려면

부지런해야 한다는 아내의 성화에

등 떠밀려 따라온 이곳, 새벽시장의

새벽 한 귀퉁이에서

내 잔뜩 몸 움츠린 뜻밖의 관찰자로

도무지 생경한 하루의 시작 보고 있는 것이다.

겨우 눈만 내놓은 채

묵묵하게 불 앞에 서있는, 그리하여

배화교(拜火敎)의 은밀한 신도(信徒)만 같은

상인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김.

이른 아침의 경매에서 box, 혹은 kg당

단 돈 몇 백 원이라도 헐하게 낙찰받기 위해

달콤한 잠 반납한 저 부지런한 노고(勞苦)가

어쩌다가 아니라 일상(日常) 일 것이고 보면

수면 부족과 만성피로 호소했던 것이

한낱 투정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 들어

못내 부끄럽고 미안하기도 한 것인데

신심(信心) 깊은 신도(信徒)의 간구(懇求)에 응답하시듯  

기도보다 더 간절한 저들의 수고에

신(神)께서 기필코 응답하시어 살림이

시나브로 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 들기도 했다.  

에일 듯 시리던 새벽 한기(寒氣)

주춤해지고 불길 잦아들 때쯤

날 희붐하게 밝아오고

도처에서 밤새워 짐 싣고 달려온

트럭들 한 대, 두 대 입구 들어서자

다시 전투에 임하는 전사처럼

서둘러 불 앞 떠나는 사람들.


화로 앞에 서서 타고 남은 재 본다.

문득, 소진(燒盡) 한 것은 장작만이 아니라

잔뜩 움츠린 채 떨고 있던 미명(未明) 함께 살라   

아침은 그저 오는 것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부지런하고 정직한

노동으로 열리는 것이라는 생각 들었다.

죽여주시옵소서, 편안함에 젖어

날로 나태해져만 가는 저와 저의 일상을.

주일마다 성전(聖殿)에 편히 앉아

그저 앵무새처럼 읊조리기만 했던

영혼 없던 기도에 매운 회초리 내리친 듯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이곳, 새벽 사원(寺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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