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늙은 해녀(海女)는 종일토록 길도 표지도 없는, 오직 파도만 넘실거리는 짙푸른 망망대해(茫茫大海)의 어디를, 그리고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지난 늦봄 가족여행으로 제주도를 찾았다. 좀 더 일찍 찾아 흐드러지게 핀 한라산 철쭉이며 유채꽃 보려고 했었으나 사정상 때맞춰 가지 못하고 느지막한 봄에 찾게 됐다. 국내든 국외든 여행할 때 가장 신경 쓰이던 것이 머물 숙소인데 그즈음의 제주도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성수기가 아니어서 리조트며 펜션을 예약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나 민박을 하기로 했다. 이전에도 여러 번 제주도 찾았고 그때마다 리조트며 펜션 번갈아가며 이용했으나 지인(知人)의 소개로 몇 걸음만 걸으면 바로 바다인 마을의 한 집을 숙소로 정한 것이었다.
나이 든 나야 숙소에 그리 민감하지 않지만 그간 편의 시설 고루 잘 갖추어진 곳에만 머물렀던 젊은 딸들이 민박이라서 행여 불평이라도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숙소에 도착해서는 색다른 경험이라 여기며 좋아해 적이 안심이 되었다.
그 늙은 여인 본 것은 숙소에 짐들 풀어놓고 가족 모두가 바닷가 가볍게 걸어볼 요량으로 대문 막 나설 때였다. 어디선가 휘오이~휘오이~,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한숨소리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 들려 쳐다보니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이 늙은 여인이 대문에서 좀 떨어진 돌담 근처에 놓인 의자에 오도카니 앉아 바다를 보고 있었다. 도착해서 숙소에 들어갈 때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차에 실린 짐들 내리느라 경황이 없었던 탓에 보지를 못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소리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의자에 하나의 정물(靜物)처럼 앉아있었다. 짧은 순간이기는 해도 자신을 보고 있는 여러 시선을 느꼈을 법도 한데 늙은 여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바다 쪽으로만 시선을 주고 있었다. 연신 휘오이~휘오이 소리를 내며-.
늙은 여인이 내는 형언하기 어려운 소리의 정체 알게 된 것은 민박집 안주인인 그녀의 며느리를 통해서였다. 사실 처음 그 소리 들었을 때는 조금 이상하기는 했어도 나이가 많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인의 특이한 버릇이려니 여겨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우리 일행이 일정에 따라 집 나설 때도 늙은 여인은 어제 그 자리에 그 자세로 앉아있었고 그를 흘낏 보기는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는데 관광 마치고 오후 느지막하게 숙소로 돌아왔을 때까지도 여전히 여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저녁 식사 마치고 민박집 마루에 앉아 일렁이는 바다와 먼 수평선(水平線) 가득 드리운 노을 내 보고 있을 때 민박집 안주인이 늙은 여인 부축해서는 집으로 들어왔다. 한 걸음 떼는 것조차 몹시도 힘겨운지 여인은 입에서 연신 예의 그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잠시 후 민박집 여주인이 여인을 방에다 모셔놓고 나왔을 때 내 지나가는 말투로 슬며시 그녀에게 물었다.
-어머니이신 모양이군요.
-네?
알아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느닷없는 질문이어서인지 안주인은 다소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좀 전에 부축해서 모시고 들어간 분 말입니다.
-아, 네. 제 시어머니십니다.
안주인은 그로 인해 행여 손님에게 불편 끼치지나 않은 것인지 다소 염려하는 듯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시모(媤母)님이시군요. 모시느라 고생이 많겠습니다.
-고생은요. 평생을 해녀로 물질만 하시다가 삼여 년 전에 그만두신 후 날마다 저렇게 바다만 바라보시네요. 저 놈의 바다가 지겹지도 않으신지 원-.
안주인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시모님께서 해녀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러신 지 숨소리가 좀 남다르시더군요.
-숨소리요?
안주인은 다소 의외의 말을 들은 듯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숨소리가 어찌 들으면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더군요.
-아, 네. 숨비소리 말씀하시는 거군요.
안주인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숨비소리요?
-네. 해녀들이 잠수해서 내내 숨 참다가 물 밖으로 나와서 내쉬는 숨소리를 여기서는 숨비소리라고 한답니다.
이후 안주인과 나는 해녀들의 생활에 대해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뇌리에 깊이 남던 것이 숨비소리였다. 천성적으로 내 물을 무서워해서 바다는커녕 강이나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계곡에서도 발만 담그지 좀처럼 수영을 하지 않는 터라 그 긴 세월을 바다에서 이렇다 할 변변한 장비도 없이 잠수하는 것으로 보냈다는 것이 쉬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여자의 몸으로 웬만한 남자라도 견디기 어려웠을 바닷속 엄청난 수압(水壓)을 참아냈다는 것이 보통의 인내로는 감당키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늙은 여인이 측은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아무리 제주도가 섬이고 농사지을 땅 변변히 없어 바다를 삶의 방편으로 삼을 밖에 별도리가 없었다고 할 것이라도 여인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던 것이었다.
여행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하염없이 바다를 보고 있던 늙은 해녀의 모습과 그녀가 내쉬던 숨비소리를 생각했다. 그곳이 묻히든 바다든 과거의 내 어머니들이 억척스럽게 삶을 영위한 것은 마찬가지로 다 신산(辛酸)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지만 유독 해녀의 삶이 더 그러했으리라는 생각이 들던 것은 숨비소리 때문이었다. 한숨 같기도,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는 거친 파도보다도 더 거칠었을 삶의 굴곡(屈曲) 온몸으로 맞서감당했을 것이면서도 힘들다는 변변한 하소조차 하지 못하고 내내 홀로 삭이고 인내했을 여인의 평생이 내쉬는 깊고 깊은 소리일 것이었다.
길도, 표지도 없는 바다 하염없이 쳐다보며 내쉬는 해녀의 숨비소리에 담긴 평생을 뉘라서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있을까?
민박집 안주인의 말에 의하면 이제 제주도에서도 해녀는 대부분이 육십 대 이상이고 더 이상 물질을 하거나 그를 배우려는 여인네도 거의 없는 실정이라 그 수가 갈수록 줄어들어 아마도 멀지 않은 장래에는 결국 해녀 자체가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했다. 그럴 것이다. 누가 저 거친 물결 일렁이는 시퍼런 바다에 뛰어들어 온몸 죄어오는 수압과 차오르는 숨 기어이 견뎌낼 수 있겠는가? 제주도 방언으로‘바당의 어멍’이라 불리는 해녀가 사라지면 더불어 그녀들의 필수품인 빗창과 질구덕, 테왁이며 망사리 등등을 박물관에서나 보게 될 것이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바다의 여전사(女戰士)로 고단한 삶에 결코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맞서 싸운 한 상징으로서의 해녀의 명맥이 끊기게 된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그리고 그 누구라도 모질게도 힘든 해녀로서의 삶을 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과 모진 삶 꿋꿋하게 이겨낸 해녀의 명맥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서로 모순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점차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까닭 모를 아쉬움이 더 크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휘오이~휘오이, 늙은 해녀의, 몸은 비록 뭍에 있지만 마음은 평생을 물질한 저 바다에 있어 결국에는 바다가 내쉬는 숨소리일
휘오이~휘오이, 눈앞의 바다지만 이제 돌아갈 수 없으니 그만 아쉬워하라며 바다 어르는 소리 같은
휘오이~휘오이, 늙은 해녀가 스스로에게 바치는 한평생의 진혼(鎭魂)만 같은, 심해(心海) 저 깊은 곳에서 잣아 올려 가까스로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한 여인의 숨소리, 숨비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