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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훈 Oct 04. 2023

탑(塔)

지금도 그 시장 가면 날마다 머리에 탑 이고 가는, 아니 그 자신이 한 기의 탑인 초로(初老)의 여인 뵐 수 있다. 그곳 상인들은 그녀를 '파스보살님'이라고 부르는데 혹 어느 시장 갔다 손목이며 뒷덜미, 무릎이 파스투성이인 여인 뵈면 마음속으로나마 경의(敬意) 표하시길-     




얼마나 이고 날랐으면

등 떠밀리며 걸어가는 북새통 시장길

틈새 비집어가며 저 층층의 식판

저리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을까?

아차 하면 그대로 엎어져 내동댕이칠 것 같은

아슬아슬한 보행(步行)인데

아슬아슬한 것은 보고 있는 나일뿐

정작 층층탑 머리에 인 여인은

비집고 갈 길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잠깐의 머뭇거림이나 비켜달라는 부탁도 없이

한 몸으로 걸어간다. 저 탑, 저 균형 이루기까지

머리 내리누르는 무게와 저린 손, 후들거리는 다리

이 악물고 버텼을 것이고 보면

말 그대로 공든 탑.

산중(山中)의 탑만 탑 아닌 것이

자신의 몸뚱이 기단(基壇)이며 탑신(塔身) 삼아

층층의 식판은 노반(路盤)

밥이며 반찬 그릇은 보륜(寶輪)

그를 떠받히는 두 손은 앙화(仰花)

행여 먼지 앉을세라 덮은 신문지는 보개(寶蓋)로

오히려 저잣거리 저 탑이

허기진 상인(商人)들 한 끼 식사로

다시 뱃심 키워 손님 불러 모으는

우렁찬 목청이며 몸짓되었을 것이니

공덕(功德)도 저런 공덕(功德) 없을 터

그녀 잡고 그를 말하면 한낱 호구지책(糊口之策)인 것을

가당찮다며 손사래 치겠지만 누구든 안다,

저 수고로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켜

번듯한 일가(一家) 이룬 슬하(膝下) 많으리라는 것을.


검은 물결 헤치며 나아가는 탑 위

오후 해가 후광(後光)처럼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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