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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훈 Sep 09. 2023

국밥 한 그릇

산해진미(山海珍味) 넘쳐나고 TV나 유튜브에 소위 먹방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먹거리가 소개되고 있는 세상이다. 그중 어떤 것은 일상적으로 늘 먹는 음식이고 또 어떤 것은 혀의 호사 위해 특별한 날에 먹을 수 있는 고가(高價)의 음식이기도 하다.


그중 시골 장터 낡은 천막 안 삐걱거리는 의자에 걸터앉아 낯 모르는 사람과 어깨 부딪혀가며, 맛있다고 소문나 자리 없으면 바닥에 깔아놓은 멍석에 앉아 먹어도 좋은, 굳이 격식이나 체면 따위 갖추지 않아도 그만인 한 끼의 식사 국밥 한 그릇.


깍두기 하나가 반찬의 전부로 헐하지만 국밥집주인인 늙은 여인의 참으로 고단했을 그간의 생(生) 짐작하거나 장돌뱅이의 부르튼 발바닥 생각하면 느닷없이 가슴 저 깊은 곳이 국밥보다 더 뜨거워져 목이 메기도 하던, 그리하여 가장 비싼 한 그릇이기도 한.




닷새마다 서는 시골장

장마당 한 귀퉁이

천막으로 대충 바람막이한

허름한 국밥집에서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과 어깨 부딪혀가며

사십여 년 오직 그 자리에서

국밥 말았다는 늙은 여인의 평생이 요약(要約)된

겁나게 뜨거운 국밥

후­후 불어가며 맛나게 먹다

문득, 국밥 한 그릇 하시죠.

도시의 반지하 셋방

그 음습한 혈거(穴居)에서 적막(寂寞)과 동거(同居)하다

마침내 그와 결별하려던 노인이 직전

제 주검 수습할 사람들의 수고가 못내 미안해

국밥 몇 그릇 값 넣은 편지봉투에

삐뚤빼뚤하게 쓴 유서(遺書) 아닌

유서가 떠오르는 것인데

새벽부터 쇠뼈 푹 고아 우려냈을

지금 내 먹고 있는 이 국밥이

늙은 여인의 신산했을 삶

혹은, 육탈(肉脫)된 채 비로소 발견된

몸서리나게 외로웠을 노인의 고독(孤獨)

우려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들어

목이 메는 것인데

어쩌면 산다는 것은

오천 원짜리 국밥 한 그릇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그저 허기진 배 든든하게 채우면

참으로 감사한 일인 것을

이렇듯 목메지 않아도 좋을 것을.    


-청송댁 국밥은 언제 먹어도 진국일세.

옆 자리 등 굽은 촌로(村老)가

국밥 한 그릇 남김없이 비우고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오천 원 지폐 꺼내 덕담(德談)과 함께 건네자

늙은 여인이 흐뭇한 표정 지으며

삼천 원 거슬러준다.

-혼자 사는 노인네가 명줄은

어찌 저리도 고래심줄처럼 질긴지 원,

셈 마치고 핏빛 저녁놀 속으로

느릿느릿 낙타처럼 걸어가는 노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며       

늙은 여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아무렴요, 당신의 애틋한 눈길과

헐하게 먹이는 진한 국밥 한 그릇 때문에라도

길 쉬이 떠나지 못하겠어요.

말하려다 그러나, 꿀꺽 삼킨

말이 되지 못한 그것이

느닷없이 뜨거운 그 무엇으로 치밀어 올라

남은 국물 급하게 마시고

내 자리에서 일어선다.     


한 그릇에 오천 원인 국밥 값이

진보장 한 귀퉁이 허름한 국밥집에서는

때로 이천 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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