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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훈 Oct 14. 2023

바닷가 우체국

올레 7길, 외돌개에서 월평포구까지

바다 끼고 걷다 다리 저려올 때쯤

그 우체국 닿는다.


나는

바다가 눈앞인 그곳 의자에 앉아

눈 짓무를 때까지

바다만 바라보다

목젖까지 차오르는 것이

파도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그때

참았던 숨, 길게 내쉬며

마침내 편지를 쓴다.

지금 내 안 깊숙이 밀려들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귀안에 모래처럼 쌓이는 파도소리,    

먼 수평선에 흰 빨래처럼 널린 구름과

반짝이는 물결들을

편지지에 꾹꾹 눌러 담는다.

설령 한 장 다 채우지 못해도

느리게, 느리게 일 년 후에나

도착할 편지의 여백(餘白)에는

추억(追憶)의 배후(背後)가 그리움이듯

곰삭을 대로 곰삭은 그것들이

추억(追憶)을 소환(召喚)하는 소인(消印)으로

선명하게 찍혀 있을 것이다.  


빨간 우체통에 편지 넣고

넣은 것이 다만 편지만이 아니라

느리게, 느리게

그러나 가장 빠르게

내 뒤 밟아오는 그 무엇이기도 한 것인지

걷다가는 멈추고

다시 걷다가는 멈추어 서서

자꾸만 뒤돌아본다.

저기 낮달 떠있는 월평포구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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