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간호사의 앞으로는?
그간 많은 생각들에 덮여 지내느라 글쓰기는 했지만 발행하고 소통하는 것에 게을렀어요. 왜냐하면 그동안 적었던 글들은 미국 간호사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상이었는데 저는 요즘 참 많은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저의 글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너무 게으름을 피우는 것 같아 요즘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미국살이 2년 차, 그리고 미국 간호사 2년 차.
저는 미국에 와서 한 달의 백수기간을 빼면 계속 간호사로 출근하고 일하는 생활을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업무와 미국직장생활에 모든 생활이 집중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저의 글감이 되어왔지요.
1. 처음엔 일에 적응하는 것이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쉬는 날에도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가 해놓고 온 일들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불안했고, 쉬는 날도 온전히 나를 위해 쓰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2. 출근을 해도 불안과 부담감이 정말 컸어요.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나의 능력을 벗어난 것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그중에 언어는 큰 부분을 차지했지요.
3. 밤시간 동안 깨어서 일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사람은 본디 밤에 자고 낮에 움직이는 것이 건강의 기본이니까요. 밤을 새워 일하고 퇴근한 날 다시 출근을 하게 되면 기절한 듯 잠이 들었지만, 쉬는 날이라는 걸 알면 피곤함과 생체리듬 사이에서 잠들지 못하는 시간에 피로감이 가득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일을 내려놓을 수 없던 단 하나의 이유는, 제가 가장이었기 때문이에요. 아마 많은 한국간호사 이민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간호사 부부가 아니라면 가족과 함께 이민을 왔을 때 한동안은 오롯이 한 사람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구조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 좋은 직업으로 인정받는 직종은 대체로 기술보다는 사무직인 경우가 많아서 배우자들이 직업을 다시 찾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기에 특히 그렇습니다. 저의 배우자는 기술자이지만 저처럼 영어공부를 준비한 것이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이곳에서 취업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한국에서 미리 영어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듣지 않았던 사람인데 다행히 미국에 와서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좀 늦은 거 아닌가 싶었지만 간절한 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곧 좋은 소식을 듣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나의 꿈을 위해 함께 와준 가족이기에 자신이 잃을 것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한 부분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래서 가능하면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제2의 직업으로 선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가장의 무게를 제가 지고 있습니다.
미국 간호사로 일한 지 일 년 정도가 지나자, 많은 것이 편해지고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업무의 루틴도 생기고, 동료들도 나를 인정해 주고, 쉬는 날도 드디어 쉬는 날답게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일에 있어서는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긴 하지만요. 쉬는 날 바람도 쐬러 다니고 외식도 해보고, 집안 대청소 같은 비교적 마음의 여유가 커야 할 수 있는 일들이 저의 루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미국에 온 계절이 5월, 정말 예쁜 봄이었기 때문에 기름 넣으러 차를 몰고 나가는 길조차 드라이브하는 기분이어서 참 즐거웠답니다.
그런데 이제 많은 것에 익숙해지자 저의 본능이 꾸물꾸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미국에 오기 위해 저와 같은 준비를 하셨던 분들 중 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 같은데요. 미국에 오기까지 치열하게 준비하고 공부했던 그 본능입니다. 한국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것에 힘을 썼지만 미국에 오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영어와 경력에 몰아넣어야 하거든요. 그랬던 경험이 고통의 역치를 높이고 이곳에 와서도 그저 편안하게, 가늘고 길게 살아갈 생각보다는 ‘여기서 안주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저에게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것은 병동업무의 체력적 한계 때문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체격도 크지 않고 그래서인지 체력도 좋지 않아서 또래와의 경쟁을 대부분 공부로 해왔습니다. 그랬기에 앉아서 진득하게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에 재미를 느꼈고 책 읽기를 좋아했지요. 한국에서는 그렇게 한 가지만 잘해도 -특히 공부- 미래에 꽤 괜찮은 자리가 보장되는지라 체력을 덜 쓸 수 있는 업무를 공략하고 경력을 만들었지만 미국에 처음 와서는 내가 선택하기보다는 자리가 주어지는 대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너무 피로하고 죽을 맛이었어요. 12시간이라는 업무시간 동안 잠시도 앉아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며 일해야 하고,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환자들의 배변을 닦아 치워 주고 기저귀를 채우는 일은 정말 노가다에 가까웠으니까요. 퇴근하면 내가 보살핀 그 환자들처럼 누워서 내 몸이 더 이상 소리 지르지 않을 때까지 쉬어주어야만 다시 일어나서 밥을 먹고 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요령도 생기고 보조인력에게 적절하게 업무를 나누며 일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다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힘들여 일했던 시간이 꽤 오랫동안 저를 힘들게 했답니다.
이제 저는 미국 간호사 경력 2년이 다가옵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저의 한국경력도 그대로 인정해 주었기에 조각경력 빼고 미국경력까지 그냥 딱 잘라 10년이라고 말하는데요. 정말 10년 차 간호사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 일하러 들어오는 뉴그랫(신규간호사)들은 저를 엄마로 생각합니다. 그들이 물어보는 것에 대해 쉽게 답해줄 수 있는 저를 보며 물경력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그러면서 저에게는 또 다른 고민과 생각들이 요즘 저의 루틴에 들어와서 많은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더 나은 업무환경을 찾는 것.
지금 당장 저에게 가능한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좀 더 저에게 익숙한 부서로 이동을 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전문간호사가 되는 공부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가 다니는 병원은 정책상 6개월 이상 한 부서에서 경력을 가지면, 다른 부서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그래도 대부분 1년 정도는 한 부서에 머물며 업무에 익숙해진 이후에 지원을 하는 편이긴 하더라고요. 제가 이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서는 수술실 또는 임상연구간호사인데 수술실은 저의 첫 경력 이기도 하지만 깨끗한 환경이 저에게 익숙하고 맞는 곳이고, 임상연구간호사는 저의 간호사 경력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저의 성격과 맞는 업무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병원내부채용에도 일부 구인공고가 올라와있기도 한데 그럼에도 망설이는 이유는 또 두 가지. 첫째는 지금 일하는 병동의 분위기가 너무나 좋다 보니 다들 들어오면 부서변동 없이 정년까지 저희 병동 붙박이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가게 되면 이런 좋은 동료들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전문간호사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분명 시간적으로 많이 쫓기고 힘들 텐데 업무환경이 달라지면 그에 따라 적응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추가로 써야 한다는 부담감입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포기하거나 둘 중 비교적 쉬운 것을 먼저 해서 루틴에 안착시키고 남은 어려운 다른 하나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요즘은 하고 있답니다. 아마 미국에 오려고 고민 중이신 분들이나, 이제 막 미국에 오셔서 하루하루를 챌린지로 살아가시는 분들께는 행복한 고민으로 보일 수 있겠네요. 인생이 다 이런 것 같습니다. 어려운 하나를 극복하고 이제 좀 편한 삶이 기다리나 싶으면 또 다른 고민과 선택이 나를 기다리네요.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을 되돌아보면 어찌 되었든 제가 원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더라도 다 해내긴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는 게 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아끼고 원하는 결과를 빨리 얻고 싶다는 욕심이 드네요. 저는 한국인이 분명합니다.
만일 오늘 자신의 삶에서 저처럼 해보지 않은 일들을 두고 고민 중이신 분들이 있다면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든지 지금보다 나은 인간으로 살아갈 의지가 있다면 항상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이불 쓰고 혼자 끙끙거리기보다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선언하는 것도 실천할 한 가지 방도가 된다는 것도요. 내일의 내 삶을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아직 나의 삶은 계속됩니다. 생각보다 많이 길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이왕 마음먹은 거 뭐라도 하나 해보면 또 다른 즐거움과 새로운 삶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아,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간호대학을 다닐 때 지금의 남편이 저를 보조해 주었던 것을 제외하면 부모님으로부터 상속을 받거나 지원받은 것 없이 지금의 모습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에게 필요한 정보와 전략을 스스로 찾고 준비했던 덕분에 미국에 오기까지 한 푼도 내지 않고 영주권을 받고 취업이민을 왔습니다. 한국의 이민중개인나 미국의 에이전시가 있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고, 어떤 선택을 하든 본인에게 이득이 있다면 비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해외에 올 수 있고 정착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전 세계가 점점 살기 팍팍해지고 어려워진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는 하지만, 제가 미국에 와서 느낀 것은 적어도 간호사로 한국에서 살아가던 때에 비하면 미국은 아직도 더 많은 기회와 여유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준비하고 노력한 것들에 대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고, 여기서도 부족한 보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면 더 나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죠. 제가 한국에 있을 때에도 전문간호사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대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업무와 병행하며 배려를 받기도 어렵고 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보상받는 구조가 아니었기에 대부분 자기 만족감에 한정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포기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병원에서 지원해 주는 학비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요. 영주권자로 한지역에서 일정기간 거주하면 대학원도 거주자로 인정받아서 학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저에게는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안 할 이유가 없달까요?
아무튼 요즘 이런 생각들 + 집안 내부적인 중대한 결정들 때문에 몸은 바쁘지 않지만 마음과 머리가 바쁜 시간을 거의 한 달 넘게 보낸 것 같네요.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일하러 가는 날은 일에 집중하고 내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하기 때문에 스위치를 바꿔가며 지내고 있었답니다. 오늘 다시 일하러 가는 날이니 제 마음속 스위치를 반대로 돌리고 출근 준비를 해야겠어요.
이제 겨울이 온다는 것이 제법 느껴지는 날씨입니다. 한국보다 춥고 겨울이 긴 미시간에서 남은 한 해 즐겁게 마무리하려고 해요. 사소한 일들에도 감사하고, 때로는 감사할 수 없는 일에도 감사하려고 합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작년처럼 살아남자! 모드가 아닌 즐겁게 지내보자! 모드가 되도록 마음을 다독이면서요. 오늘 독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셨을지 궁금하네요. 너무너무 엉망인 하루였더라도 이 또한 지나갈 뿐이니 자신을 다독이고 용기를 주고, 자기를 믿어주는 한마디를 꼭 해주시길 바래요. 오늘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고 너무 오랜만에 글 올려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