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에 한바탕 소동
여느 때와 같이 정신없이 바쁜 근무였다. 데이근무 간호사들은 나이트는 맨날 노는 줄만 아는데, 우리도 대부분 너네들만큼 바쁘다. 아닐 때가 간혹 있는 거지. 빈방이 너무 많은 채로 근무를 시작한 데다 - 입원할 환자를 받아야 한다는 뜻- 예정 없이 준비되는 대로 입원환자들이 들이닥치다 보니 취침약 돌리고, 환자들 신체사정하고, 자기 전에 필요한 것들 이것저것 챙겨주다 보면 금세 자정이 된다.
오랜만에 같이 근무하게 된 간호사 S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환타였다. 음료수 이름이 아니라 ‘환자를 탄다’는 말에서 비롯된 간호사들의 은어인데, 건강 상태가 특히 좋지 않은 환자만 항상 맡거나, 맡은 환자들이 갑작스레 안 좋은 상태가 되어 밤새도록 처치하느라 정신없는 간호사를 지칭한다. 중환자실 경력도 있는 중년의 간호사라 언제나 환자의 중한 상태를 일찍 잘 알아차리고 적절한 처치를 잘하지만, 환타인 그녀와 일을 하는 날에는 조용하게 아침을 맞이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오늘은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환타의 면모는 보이지 않는 럭키한 밤이었다. 자정이 넘어 밀린 차팅을 시작하면서 간식으로 싸 온 컵떡볶이를 한입씩 먹으며 행복해하고 있었는데, 내가 앉아있던 자리 바로 앞방에서 코드블루 사인이 들어왔다.
새로 입원한 다른 간호사의 담당환자였는데 소생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호스피스였기에 일단 코드블루가 성립이 안 되는 상태였다. 그리고 누군가 버튼을 눌러야 활성화가 되기 때문에 이상하다 생각하며 일단 방에 들어갔다. 환자의 가족 두 명도 함께 자고 있던 상태라서 다들 영문을 몰라했는데 환자에게 어떤 거라도 버튼을 누른 적이 있냐고 하니 그런 것 같은데 뭘 눌렀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보통은 방에 들어가서 해제 버튼을 누르면 코드블루알람이 바로 해제되기에 별생각 없이 들어가서 처리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알람이 꺼지지 않았다. 그 사이 우리 병동의 간호사들과 의사가 다 모이게 되었는데 무슨 수를 써도 알람이 꺼지지 않아서 다들 침대 코드도 뽑고 베드알람도 건드려보고 한동안 아수라장이 되었다.
차지널스였던 S가 하우스매니저에게 연락을 하고, 다른 동료간호사가 병동 내 수리가 필요하면 연락하는 service response에도 전화를 했다. 그때까지도 코드블루 알람은 쩌렁쩌렁 온 병동에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봤지만 알람은 꺼지지 않았고, 결국 엔지니어를 불러서 알람을 꺼야만 한다고 했다. 지금은 새벽 2시, 자고 있던 사람을 깨워서 오기까지 우리는 꼬박 2시간을 더 기다리며 2분마다 다시 크게 울려대는 알람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리도 같이 2분마다 울려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야밤에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한밤중에, 그것도 호스피스 환자의 방에서 미친 듯 울리는 코드블루 알람이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결국 한밤중에 자고 있던 엔지니어에게 연락이 닿아 졸린 눈 비비며 와준 덕분에 두 시간 넘게 울려대던 엄청난 소음은 그의 손이 닿자 오분도 안되어 종료되었다.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야!
한국에서 일할 때도 가끔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는 했다. 병원이란 장소는 항상 다급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곳이긴 하지만 경험적으로 나이트 근무하는 시간에 돌아가시는 분이 많다고. 그리고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도 이상하게 모두가 잠들어 있어야 하는 새벽 2시부터 5시 사이에 약속한 듯이 일어난다고. 그런데 또 귀신이 활동하는 시간이 딱 그때 제일 활발하다는 이야기들. 그래서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리는 거라는 말도.
종교를 떠나서 나는 귀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한창 밤에 일하는 간호사들이 제일 피곤할 그 시간에 세상을 떠나는 환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더욱이 새벽 3시부터 병동이 조용할수록 환자들이 아무 일 없이 잘 자고 있는지 더욱 열심히 확인하러 다닌다.
다행히 알람이 꺼진 이후로는 아무 일 없이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곤 데이널스들이 출근하자 나이트널스들은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이곳에선 한국과 달리 도파민이 넘칠 일이 없이 맨날 심심하다 보니 우리 눈에는 별것도 아닌 일들이 이들에게는 핫이슈다. 미국병원에도 귀신은 있는 모양이다. 다들 고스트가 있다며 소름 끼친다, 무섭다, 안 보여서 그렇지 보이면 자기가 싸워서 이긴다 등등 우리나라에선 초등학생들도 안 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하 호호한다. 힘든 하루 가운데 또 그렇게 이야깃거리 하나를 추가하고 다들 바삐 퇴근길을 재촉했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기에 아픈 상태로 와서 건강한 상태로 집이나 다른 의료기관으로 가는 환자들도 많지만,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환자들도 그만큼이나 많다. 미국 정서상 임종을 지킨다는 개념은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간호사에게 자신의 아픈 가족을 맡긴 채, 환자가 사망한 이후 연락을 받으면 병원에 온다.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고 싶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죽는 순간을 목격하는 건 남은 사람들에겐 트라우마가 되는 것 같다. 자신의 삶에서 좋은 모습만 기억하고 싶다고 하면서 임종을 지키지 않으려는 사람도 만났다. 이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세상과 이별하는 사람은 그대로 사라지지만 남은 사람은 그 모든 기억을 안고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평소에 아끼고 사랑하며 잘 지내는 것이 마지막순간에 울고불고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말이다.
내과병동에 있다 보니 호스피스 환자를 맡는 경우가 자주 있다. 처음엔 미국의 문화를 몰라서 어찌해야 하나 전전긍긍했는데, 시간이 지나 이제 생각해 보면 분명히 한국과 다른 부분도 있겠으나 사람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방법은 다 비슷한 것 같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도 침착하고 차분하며 인자하고 남을 배려하는 성품이라 죽는 그날까지 고맙다는 말과 행복하다는 말을 하다가 세상과 작별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기가 죽어간다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변사람에게 독설하고 괴롭혀가면서 하루하루 버티다 그냥 그렇게 사그라진다. 나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싶을까? 만일 그 순간을 준비할 수 있다면, 또는 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라면 당연히 나와 남에게 좋은 기억과 행복한 시간을 남기고 가고 싶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이런 경험들을 미리 해보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느껴지는 기회였다. 매번 남들의 죽음을 목격하는 건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후회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한 것에는 좋은 끝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남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면서까지 나의 이익을 챙기고 자신만을 위하는 삶은 결국 자신을 갉아먹기 마련이다.
오늘도 웃을 수 없지만 어이없어 우스운 에피소드 덕분에 나의 하루와 일상에 감사하며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는 나를 자랑스럽게 칭찬하고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