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간호사가 당한 인종차별

드디어 올 것이 왔나

by 미국간호사 Sophia

해외로 이민 온 사람들이 한 번쯤은 침 튀기며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인종차별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괜찮으려나 했는데? 역시나 피해가질 못했다.


좀 지난 일이긴 하지만 해외에 살면 누구나 겪을만한 일이라서 일기 삼아 남기며 다음에도 같은 일을 겪게 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려 한다.




이 주간 근무 스케줄이 한 군데로 모여있어서 원래 3일만 하고 쉬어야 하는데 거의 5일간 연속근무를 했던, 많이 피곤하게 일하던 한 주였다. 그래도 땡스기빙 연휴라서 - 우리나라로 치면 추석연휴- 딱히 바쁜 일 없이 느리게 흘러가고 뭔가 좀 편안한 분위기로 밤을 보낼 수 있어서 다들 화기애애했는데 유독 한 환자가 나에게 까칠하게 구는 걸 느꼈다. 그동안 경험한 바에 따르면 미시간에서 만난 흑인 남자들이 대체로 좀 거칠고 무뚝뚝한 면이 있어서 - 우리나라로 치면 경상도 남자 같이- 그래서 이 사람도 그런 부류의 사람인가 했다.


다음날 다시 그 환자를 맡게 돼서 인사를 했는데 지난밤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데이 근무하던 간호사가 흑인이었는데, 그녀와는 그렇게 살갑게 대화를 하더니 바로 옆에 있던 나에게는 누가 봐도 돌변한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닌가. 데이 간호사도 상황을 눈치를 챘던지 이제 우리 병동 최고의 간호사가 너를 간호해 줄 거다라며 나를 포장해 주었지만 그는 심드렁했다. 오히려 난 그런 상황이 더 불편하기도 했고. 그 자리에서도 환자는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겠다며 불평을 했다. 데이 널스는 내가 한 말을 반복해 주면서 “나는 알아듣겠는데?”라고 하자 환자는 입을 닫았다. 이때 뭔가 싸한 느낌이 있었지만 내 할 일만 다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방을 나왔다.


왜 항상 싸한 기분은 틀린 적이 없던가! 취침 전 약을 주러 들어가서는 기어이 듣고야 말았다. 인종차별주의자의 당당한 발언을!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어떻게든 나에게 꼬투리를 잡아서 일을 크게 만들 작정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약에 대해서 말을 할 때마다 니 영어 못 알아듣겠다. 설명할 필요 없다. 난 못 알아듣는다면서 내 말을 끊더니 “미국에 왔으면 영어를 써라. 차이니즈 쓰지 말고”.라는 말을 했다. 오 마이갓!


나는 화가 나면 날수록 말이 줄고 침착하며 냉정해지는 성격인데, 그 말을 듣자마자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아주 침착해지면서 표정을 바꾸고는 말했다. “난 영어로 말하고 있어, 그리고 난 중국인도 아니야.” 거기에 환자는 “아니, 넌 영어를 하는 게 아냐. 그리고 중국 아니면 일본, 아니면 한국이겠지. 넌 어디서 왔는데?라고 답했다. 대답할 가치가 없어서 더 이상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내가 어느 나라 출신이면 뭐 어쩌려고?


그리고 결국 그가 원하는 건 내가 아닌 다른 간호사라는 걸 알기에 “나 대신 다른 간호사를 원하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좀 전까진 그렇게 내 말을 못 알아듣겠다던 그 환자는 “바로 그거야, 나는 영어를 하는 ‘미국’ 간호사를 원해! 이왕이면 흑인으로! “라고 답했다.


어이가 없어서 그대로 그 방을 나왔다.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고 저러는 걸까? 중얼거리며 차지널스에게 가서 상황을 그대로 말했다.


나이트 근무는 해외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간호사들이 꽤 많은데, 우리 병동에도 거의 대부분이 그 환자에게 예외 없이 차별을 받을만한(?) 외국인간호사들이 포진해 있다. 그들을 다 제외하면 오늘 우리 병동에는 신규간호사 한 명과 다른 병동에서 도와주러 온 백인 간호사뿐이었다. 심지어 차지널스도 나이지리아 출신. 결국 다른 병동에서 온 백인 간호사에게 내 환자를 바꿔줄 수 있겠는지 물어보고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아까 그 상황을 우리 병동에 있던 모든 간호사가 다 듣고 있었다고 했다. 병동이 유난히 조용한 날이어서 그랬을까? 그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다 듣고 있었다니! 차라리 잘되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나를 저격해서 대놓고 하는 말에 하나도 속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런 말과 행동을 한 그 사람이 문제인거지 나에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미국에서도 인종차별은 사회적으로 매우 엄중하게 다루는 주제이기에 그가 비난을 받을 이유는 충분했다.

우리 병원에선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 걸로 알지만 어떤 병원에서는 이런 말과 행동을 한 환자는 매니저가 바로 퇴원을 시켜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한밤중이라 환자를 내보낼 수도 없었기 때문에 환자가 나에게 한 이야기를 차팅으로 남기는 것으로 일단락을 했다.


환자를 바꾸고 나서 나의 다른 환자들을 살피고 방에서 나왔는데 미국에서 나고 자란 간호사들이 줄줄이 나에게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모든 미국인이 그렇지 않다고, 저 환자가 미친놈이라고, 역겨운 놈이라면서 나한테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기에 말한 놈은 당당한데 그 상황을 보고 들은 동료들이 나에게 사과를 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해줬다. 그 사람이 문제이지 나는 문제가 없다고, 괜찮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건 나의 진심이었다.




업무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자리에 앉아서 차팅을 하니 아까 그 상황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정확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이미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꽤 많은 경험담도 들었던 터였다. 그럼에도 내가 약간이라도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방비로 당하는 상황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어쩌면 그게 지금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일을 하는데 자신감이 있고 어떤 돌발 상황도 꽤나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기에 벌어진 일이라 금세 아픈 마음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맘 같아선 나도 그 환자에게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그래봐야 나도 같은 인간말종이 되는 건데 뭐 하러 나의 시간과 심력을 낭비하겠는가.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저렇게 밖에 살지 못하고 갈 것이 분명한 인생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생각에 꼬리를 물고 나는 정말 인종차별과 같은 당황스럽고 억울한 상황을 처음 겪은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한민족이라는 타이틀 아래 참 많은 것들을 나누고 분류하며 차별을 만들어왔다. 남녀차별, 노소차별(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른 차별), 직급차별, 직업차별 등등.

그런 일들이 흔하고 당연히 여겨졌던 나라에서 태어나 살았기 때문에 차별로 여기지 못했을 뿐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은 차별 없이 이루어지기 힘든 나라였다. 내가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이었기에 너무나 당연해서 피부로 느끼지 못하다가 차별이 무식함의 증표이자 불법이라 말하는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차별을 느끼니 그저 크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되돌아보면 어려서는 외모나 성적, 부모님의 직업 등의 환경들이 차별과 비교의 이유가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학벌이나 출신지역이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부산에서 살았을 때, 그저 표준어를 쓰고 서울출신이라는 이유로 우대를 받았던 기억도 있고 지방의 별 볼 일 없는 대학출신이라 무시당한 적도 있으며,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라서 신뢰받은 기억도 있다. 모두가 나 자신 그대로를 인정받은 것이 아닌 비교와 차별의 결과였다.




이건 그 차별에서 약간 벗어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가끔 미국간호사로 이민을 와서 영주권자로 살아가면서 자신을 ‘외노자’라 지칭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나는 일단 그 표현에 관해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 이유는 우선 외노자라는 표현을 처음 들은 것이 취업이나 결혼 등 여러 이유로 우리나라에 이민을 온 동남아 등지에서 온 사람들을 낮추어 지칭하는 것이기도 했고, 굳이 외국인이나 노동자라는 말을 나에게 붙여서 얻을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영주권자로서 미국에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국적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오기는 한다. 영주권을 받은 지 4년 9개월이 되면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남은 나의 여생을 살아갈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좀 더 유리한 때가 있어서 나 역시 그때가 오면 고민을 하게 될 텐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태어나서 살아온 나라가 한순간에 나에게 ‘외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단어 하나로 갈라치기하는 것이 불편한 마음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체로 한국인들이 선호하지 않는 3D업종에 많은 외국인들, 특히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 또는 아프리카 등등 우리나라보다 GDP가 낮은 나라에서 자신과 가족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일을 하러 오는 분들이 많은데 한국의 고집세고 못난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 내가 겪은 일처럼 그들에게 무례하게 하는 일화를 보고 들은 것이 있기에 어쩐지 그 일이 낯설지가 않았다.


돈 때문만이 아닌 한국의 뛰어난 인프라와 분위기, k컬처의 유행 등으로 한국에서 살아보기를 원하는 다른 나라사람들도 많다.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져서인데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지내며 생활비를 벌거나 직장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이런 사람들을 한데 묶어 외노자라고 여기거나 지칭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경우이던지 간에 해외로 나와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들 모두가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해서 실력을 갖춘 이들이고 엘리트라는 점이다. 같은 시간 일하면서도 좀 더 나은 수입을 벌기 위해 해외살이를 자처하는 것인데 그저 우리나라보다 나라살림이 어려운 곳에서 왔다는 이유로 깔보고 낮춰 대하는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기도 하고 그분들의 씁쓸한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하는 오늘이었다.


아무튼 나에겐 외노자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부정적인데, 이 환자가 나에게 했던 표현과 태도가 딱 나를 그렇게 느끼게끔 했고 나마저 그런 생각으로 여기까지 와서 일하고 있었더라면 정말로 서럽고 수치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평균적으로 간호사라는 직군에 대한 시선은 매우 좋은 편이지만, 공부도 많이 해야 하는데 몸도 써야 하는 직업이라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게다가 미국인들 중 꽤 많은 인구가 우울증, 불안증, 양극성인격장애, 조현병 등 정신과적 질환을 진단받은 경우가 많아서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일을 하는 것을 꺼리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쿠쿠다스 멘탈이랄까? 또는 간호사가 되어서도 경력만 좀 쌓고 더 편한 일을 하려고 급성기병원을 떠나는 젊은 세대가 많은데, 우리 병동도 그런 경향이 있어서 대부분 연륜 많고 이해심 많은 시니어널스들과 뉴그랫들만이 양립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래서인지 해외출신 경력간호사를 선호하는 병원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여러 인종이 골고루 섞여 일하기에 직접적으로 인종차별하거나 당하는 일이 드물기는 한데 오늘 이 환자는 사태파악을 좀 못한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며 인정받고 만족하며 살아온 사람이지만, 간호사로서 살아가기에 좀 더 나은 환경을 찾아서 온 곳이 미국이었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힘이 없는 나라일지언정 미국이 더 위대하다거나 부러운 나라여서 온 것은 아니었기에 자칫 자존감을 떨어뜨렸을법한 사건에서 최소한의 데미지만을 입고 나는 결국 그 환자에게 기분 좋게 fire 당했다. 말썽 부리는 환자를 볼 바에는 차라리 아픈 환자에게 시간을 쓰는 편이 좋다. 그날은 그 뒤로 아무 일 없이 느긋하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 일을 마주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남들이 보는 것보다 나는 훨씬 자존감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생각보다 많이 단단해졌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독립해서 일할 때는 confused 한 환자들, 제정신이 아니어서 설명으로 설득할 수 없는 환자들 때문에 일하다가 울기도 하고 출근이 하기 싫은 날도 많았는데, 이제는 출근에 대한 공포는 거의 없다. 내가 그런 공포감이 있었다는 사실도 이제는 좀 낯설다. 부담스러운 컨디션의 환자는 있을지언정 내가 감당 못할 정도의 상황을 만나지는 않는다. 운이 좋은 것도 있지만, 그만큼 내가 많이 단련되었고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삶은 언제나 배울 일들의 연속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리고 싫은 것도 겪어내면서 좀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내가 알고 있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모르고 막막하고 두려운 것들이 내편이 될 때 그만큼 성장하고 내가 원하는 나의 삶이 완성되어 갈 것이라 믿는다.


혹시 지금의 삶에서 감당하기 싫은 일들을 마주하고 있다면, 그래서 내가 도저히 이겨낼 수 없어 압도당하거나 의미 없는 일들이라면 잘라내어 나를 지키길 바란다. 하지만, 당장은 좀 괴롭거나 불편한 일이더라도 나의 삶을 단단히 해줄 수 있는 경험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맞서보기를 바란다. 나 역시 한국에서 40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기에 우리나라의 삶과 경험은 무척 매운맛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런 경험들이 무조건 나를 무너뜨리게만 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미국은 한국에 비해 순한 맛인 부분이 많고,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에서 생존해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산전수전 좀 겪어본 한국간호사가 미국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마주하는 약간 매콤한 경험을 나눠보면서 나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시작은 마상(마음의 상처)이었지만 결과는 나를 칭찬하고 예뻐해 주는 것으로 끝낸 하루였다.


다음에 이런 언행을 하는 환자를 만난다면 대놓고 말해줘야겠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으면서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남을 탓하고 욕하는 삶을 사는 당신이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다고! 그리고 나는 당신처럼 살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당신도 내 환자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케어할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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