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단점도 큰 해외간호사 살이
세월이 참 빠르네요. 게으름을 좀 피웠더니 벌써 3월이 되어버렸다니요. 핑계이긴 하지만 이제 미국에서 병동간호사생활을 거의 2년을 채워가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발목을 잡고 꼬리의 꼬리를 무는 바람에 글 쓰는 것이 조금 무서워졌달까요?
이미 저장해 놓은 발행예정 글들이 꽤 많이 모였지만 쉽게 글을 올리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HIPAA라고 불리는 환자개인정보 및 규제준수 항목 때문에 환자들의 이야기를 이곳에 적어두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고 이제는 일이 익숙해지고 미국살이도 많이 안정이 되다 보니 별것도 아닌 것을 대단한 일인 것처럼 글로 적어내는 것이 내심 쑥스럽기도 해서였답니다.
하지만 최근에 EB3 문호가 많이 진전되면서 기다림에 지치셨을 많은 한국간호사선생님들이 미국에 오는 날이 현실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분명 지금의 저의 이야기들이 아직 미국의 현실을 겪지 않으신 궁금증이 많은 분들께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한국보다는 확실히 자율성과 합리적인 부분이 많지만, 병동에서 일하는 것은 역시 힘든 일이긴 해요.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싶게 저도 속으로 구시렁거리긴 하지만 대부분의 업무들에 다 익숙해져서 이제는 출근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저 일 덜하고 돈 많이 벌고 싶을 뿐이죠.
오늘은 그동안 좋은 말이 더 많았던 미국 간호사에 대해 불만족하는 면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입장에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니 반박 시 다른 의견도 맞습니다. 반말채로 넘어갑니다.
첫해 미국간호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의문스러웠던 점은 소셜미디어에서 미국에서 간호사로 병동/수술실 등 일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보람된다는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출근하는 날이 무서울 정도로 싫었고, 부담되었고, 자신이 없어서인지 하나도 재미없고 그냥 돈 벌어야 하니 가는 일터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더 힘든 환경이었어도 이 정도로 거부감이 들진 않았는데.. 미국엔 괜히 온 걸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그랬기에 좋은 이야기만 하는 한국출신 미국간호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도대체 어떤 점이 그렇게 신나는지(?) 궁금했다.
내 경험으론 프리셉터와 함께했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독립한 뒤에는 한동안 출근할 때마다 심장이 요동치고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매번 들었다. 아마도 아직 영어도 서투른 데다 일도 모르는 게 많고, 혼자 일해야 하니 동료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도 대부분 항상 바쁘기 때문에 일하다 도움이 필요하면 그간 하던 일을 다 멈추고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긴장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이 조금 익숙해진 뒤에도 여전히 자신감이 없는 나에게 차지널스를 해야 한다는 말에 거의 울면서 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도움 청하기가 수월해졌고 여전히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전보단 출근이 무섭진 않아 졌다. 달라지지 않은 건, 일하러 가는 길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는 점. 이 때는 딱 1년만 버티자는 것이 내 목표였다. 어디든 이직을 하려면 미국 경력 1년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1년째 되던 날, 나는 지난 나의 한 해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선 신기하게도 출근하는 게 즐겁진 않았지만 무섭지도 않아 졌다. 일해야 돈이 생기니 병원에 가는 거였지만 무덤덤한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상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환자를 맡는 게 제일 부담스러웠는데 인계를 받기 전 환자를 파악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 만큼 일에 익숙해져서 덜 힘들게 느껴졌다.
둘째론, 다들 괜찮아 보였던 동료들도 나만큼 힘들고 하기 싫은 것을 알았다. 다들 말없이 자기 일을 알아서 하고 있으니 그렇지 못한 나만 부적응자요, 일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힘들게 느끼는 일과 까다롭게 느끼는 환자는 모두가 비슷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서 또 많은 부담과 두려움이 조금 벗어졌다. 그리고 더 우스운 건 나는 항상 겁쟁이에 속으로 벌벌 떨면서 일했는데도 내 동료들은 내가 응급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용감하게 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호들갑을 떨 정도로 여유가 없었을 뿐인데 다들 단단히 오해를 해줬다.
셋째론, 아무리 수많은 환자들이 나고 들어도 결국 많이 만나다 보면 익숙해지고 그만큼 일도 빨라지는 단순한 논리를 뒤늦게 깨달았다. 처음엔 약도 수십 가지에 치료방법이나 케어플랜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까막눈처럼 저게 무슨 소린가? 했었는데 도망치고 싶었어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했던 시간들이 나의 내공을 채워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생각보다 미국간호사들은 한국간호사들처럼 환자에게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간호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이 많다고 느꼈던 것인데 여기선 환자의 의견과 권리도 중요하고, 웬만해선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시킨다. 환자를 강하게 키우는(?) 느낌이다. 나는 너무 이것저것 다 해주는 간호사였기에 환자들이 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의지하고 시켜 먹기도 했던(?) 것이었음을 배웠다.
이제 곧 이 병동에서 2년을 맞이한다. 달라지지 않는 사실은 다른 동료들처럼 나는 이곳에서 은퇴할 때까지 일하지는 못할 거라는 것이다. 체력적 이슈가 크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고, 그중에는 체력을 요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퇴근하고 쉬는 날이 되면 난 항상 첫째 날은 앓아눕는다.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기운이 없어서 도대체 내가 뭘 위해 일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누구는 기본 3일 근무에 추가근무를 2-3일씩 더하고 돈을 모으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돈을 쓴다는데, 나는 수입이 줄지만 않는다면 이틀만 일하고 싶다. 아니 하루만 일하고 싶다. 도저히 체력이 안 따라줘서 3일 이상은 일 못한다 절대. 가끔 부매니저가 근무를 이상하게 만들어놔서 3일 연속근무를 하거나 이틀 일하고 하루 쉬고 연이어 이틀근무를 하게 만들어놓으면 ‘난 그때 죽었다’ 생각하고 체력을 비축할 생각만 한다.
간호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면 하거나, 대학원을 갈 준비를 하는 것도 다 같은 이유다. 도저히 이 체력으론 한국보다 더 힘든 미국병원 생활을 할 자신이 없다.
미국애들은 타고나기를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체력과 체격을 가져서인지 일을 아주 식은 죽 먹는 듯한 표정으로 한다. 맨날 나만 피곤하고 졸리다.
환자들의 은근한 인종차별과 경력차별은 또 어떤가? 얼굴 보며, 때로는 내 영어 엑센트를 들먹이며 어느 나라 출신인지를 묻고, 대체로 어려 보이는 아시안의 얼굴 때문에 신규간호사는 아닌지 확인하려 든다. 여기도 신규간호사를 못 미더워하는 건 우리나라와 똑같다.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는 주름과 피부 처짐이 이들한테는 전혀 안 보이는 모양이다. 20대 중반으로 봐주는 건 고마운데 나 그렇게 애송이 아니다, 간호사 한지 10년도 훨씬 넘었다고 말해주면 어쩐지 안심하는 환자를 보면서 어리게 봐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정신승리를 한다.
그래도 이제 만 2년, 햇수론 3년 차 미국간호사로서 아주 조금은 일하는 재미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이 생긴 거 같다. 가끔 한가한 밤근무 중에 마음 맞는 동료와 수다를 떤다거나, 맘씨 착한 환자가 나를 좋아하고 의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며 두런두런 시간을 보낸다거나, 다들 잠들어 평온한 밤을 보내며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싸 온 도시락을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때에는 그래도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해외에서 영어로 일하며 꽤 괜찮은 수입을 버는 내 모습이 만족스러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날은 정말 손에 꼽을 만큼 드물긴 하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긍정적인 추억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어도 지나가면 얼른 잊어버리고, 좋았던 기억들로 시간을 채우며 하루하루를 산다.
미국간호사로 살아가는 것이 절대로 행복하고 만족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디나 남의 돈 벌기가 쉽지 않고, 미국도 그리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솔직히 오세요!라고 말하기 쉽지는 않다. 또 다른 어려움과 성장통을 겪어야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뭐든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라면 해볼 만하다.
이제는 지금까지 미국에 오기 위해 어려운 많은 관문을 통과해 온, 그리고 이제는 미국 병원의 한 간호사로 역할을 잘하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인 나에게 잘해온 것들만 이야기하고 칭찬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미래를 준비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해본 사람은 안다.
- 한국에서 간호대를 졸업하기까지 치열하게 겪는 경쟁 가운데서 1등 하기
- 졸업 후 상급종합병원에 취직하기
- 미국 간호사 시험 합격
- 아이엘츠/오이티 비자스크린 점수 획득
- 미국 트라우마레벨 1 병원 합격
- 미국영주권자로 이민
- 3년 차 미국간호사로 생존하기까지 내가 이뤄온 일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남들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이 일들을 이루기 전의 나와 이룬 뒤의 나를 비교하기만 해도 너무 명확하다. 지금의 나의 삶을 갖기 위해 난 15년 이상 꾸준히 노력하고 정진해 왔다.
비록 지금 하는 일에 커다란 기쁨과 행복은 없을지언정 지금까지 노력하고 이뤄오며 일상에서 느끼는 어떤 것들과, 앞으로의 또 다른 계획과, 그 계획을 실현하기까지 슬픈 일도, 실망하는 일도, 후회하거나 우울한 일도 있기 마련이다.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살아가자. 이것이 요즘 내가 내 삶에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한국에서 살 때는 목표를 향해서만 달려왔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줄로 알았다. 여기서도 더 큰 목표를 만들고 그걸 이루기 위해 나를 채찍질하며 더 나은 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는 내 삶을 진정으로 돌아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것인지, 신기하게도 내 삶에서 나를 옥죄고 닦달하던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게으르게 시간을 보냈어도 나를 혼내지 말고, 힘들면 힘든 것을 받아들이며 나를 편안하게 해 주며 요즘은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 중이다. 미국 병원에서 느끼던 단점이 나의 삶을 좀 더 유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준 원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렇듯, 단점도 상당한 미국생활과 미국간호사의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단점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말리지 않을 터이니 꼭 목표한 바를 이뤄서 미국 생활을 해보시길 추천한다. 단점 어쩌고 시작해 놓고 또 오라고 하니 다중인격자 같지만 이 또한 사실인지라 싫기도 하지만 좋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드린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뿐인데, 해보고 싶은 게 있다거나 목표가 생겼다면 포기하기보다는 되는 데까지 해보시기를 추천드리며 부끄럽지만 투정 섞인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