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차 - 나의 산티아고

5일 차 - 나의 산티아고

by 잼 매니저

5일 차 - 나의 산티아고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따뜻한 이불속을 벗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과 정신을 깨운다. 아침의 공복을 간단히 해결한 뒤 세수를 하고 이를 닦는다. 창밖과 핸드폰으로 날씨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옷을 집어 입는다. 여기저기 흩어진 짐들을 모아 가방에 넣고 신발을 신는다.


이른 아침 등교를 준비하는 학생처럼, 어느샌가 몸에 밴 순서에 따라 흐르듯이 순례길에 오를 준비를 했다. 점점 익숙해져 가는 출발과는 반대로 처음 순례자의 길을 시작할 때 느꼈던 설렘과 두근거림이 사라진, 직장인이 직장을 나가듯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사람처럼 길을 나섰다. 길듯이 짧았던 하루 동안의 단잠은 근육의 피로를 어느 정도는 회복시켜주었으나 왼발 아킬레스건과 양어깨의 통증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미미한 영향은 주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보통 잠에 들기 전, 다음 날 내가 걸어야 하는 길에 대해 찾아보곤 한다. 마음의 준비도 할 겸 어느 정도 내가 마주할 상황에 대해 미리 어느 정도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젯밤 역시 누군가의 후기를 읽었는데, 오늘 출발 도시인 ‘Golega’에서 도착 도시인 'Tomar'에 이르는 순례자의 길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돌아 돌아서 가야 하는 길.’


구글 지도로 확인하면 'Tomar'까지 분명 일직선으로 도로가 나있지만 노란 화살표가 인도하는 순례자의 길은 분명 산을 오르내리며 돌아 돌아가는 길일 터였다. 어제의 여유와 미소가 무색하게도 심신이 극도로 지쳐있었던 나는 어제 걸었던 ‘걷기 더러운’ 길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란 화살표가 안내하는 길로 가지 않고 도로(국도)를 이용해서 최단 시간으로 다음 도시에 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고속도로를 타지 않도록 조심해가며.


누군가 정성스럽게 이 길을 지나는 많은 순례자들을 위해 도로가 나있는 방향에 노란색으로 X 표시를 해두었지만, 나는 일말의 죄책감 없이 그 표시를 무시하고서 도로(국도)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인도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자동차 도로를 따라서 걸어야만 했는데, 도로가 넓지 않아 백색 차선을 위로 걸어야만 했다. 다행히 원래 차가 잘 안 다니는 도로라서 그런지, 바로 옆에 고속도로가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차가 많이 다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씩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나 엄청난 크기의 덤프트럭이 지나갈 때는 다소곳이 옆으로 비켜서서 담담히 차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내가 담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신과 몸의 한계에 달한 피로감이 나의 감각을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도록 둔감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종종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자전거들은 내가 탈 것(킥보드)으로 이 도로를 지나갈 수 있는 정당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그들이 산티아고를 목표로 순례자의 길을 가는 순례자인지 그저 주말을 맞아 자전거를 타러 나온 나들이객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처럼 그들도 탈 것으로 내가 가는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들 역시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지나쳐 가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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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이용함으로써 순례 시간을 꽤나 단축하고 있었고, 산길보다 훨씬 걷기 좋은 길로 이동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왼발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져만 갔다. 결국 왼발로 킥보드를 탈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오른발만을 이용해서 킥보드를 타다 보니 배낭의 엄청난 무게로 인해 오른발에도 서서히 무리가 갔다. 그렇게 킥보드를 타기 좋은 길임에도 나는 걸어서 가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 가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내 머릿속을 맴도는 것들은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이었다. ‘힘들다’, ‘괴롭다’, ‘아프다’, ‘주저앉고 싶다 ‘, '포기하고 싶다', '고독하다', '쓸쓸하다'와 같은 암울한 생각들은 결국에 '산티아고까지 남아있는 순례자의 길에 대한 포기'까지 이르렀다. 마음속으로 포기를 하고 다시 결심을 했다. 그리고 다시 포기했고 다시 결심을 했다. 이러한 번복의 반복이 길을 걷는 내내 계속되었다.


뚜렷한 이유나 목적이 있지는 않았지만, 순례자의 길을 걷고자 마음먹었을 때부터 출발하기 전까지 내가 기대했고 바라던 길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지금처럼 이렇게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고독하지도 않았다. 내가 꿈꾸었던 나의 산티아고는 나와 같은 길 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격려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나아가고 때론, 낯선 사람과 동행이 되어 서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깊은 이야기들을 하고 숙소에 있는 여러 사람들과 음식도 함께 만들어 나누어 먹기도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어쩌면 산티아고 관련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질지도, 혹은 태국여행에서 윤호를 만난 것처럼 인생을 나누며 살아갈 우정을 만날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의 길이었다.


현실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사람들이 잘 걷지 않는 포르투갈 길의 비수기 시즌임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바라던 모습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단체 생활을 즐기지 않고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가지는 성향이기에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과 걷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혼자 걷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이 고독한 현실이 더 외롭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혼자 걸으며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도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여유와 미소의 정신이 신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면 왼발 아킬레스건의 통증과 누적된 피로 그리고 배낭에 짓눌린 어깨의 통증은 정신에 부정적인 힘을 과시했다.


이제는 지나가며 내게 던져지는 모든 시선들이 견디기 힘든 폭력으로 다가왔다. 마주 보는 곳에서 오는 덤프트럭의 높은 운전석에서 던지는 시선, 반대편 도로에서 길을 걷는 이가 보내오는 시선, 건물 안에서 창을 통해 넘어오는 시선까지 모든 시선들이 나를 두들겼다. 시선으로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독특한 행동들로 눈총을 받은 적도 있고, 여러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한 적도 있지만 이 길에서 내가 느끼는 시선들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앞서 말한 것들이 같은 공동체 내에서 내부에 있는 존재에게 보내는 시선이라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시선들은 공동체 밖, 외부에 있는 존재에게 보내는 시선이었다. ‘같음’을 전제로 한 시선과 ‘다름’을 전제로 한 시선의 온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신체적인 나약함에서 비롯된 생각들일 수도 있다.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시선들을 견뎌내며 그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이 길을 걸어 나가기에는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그렇게 나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포기했다.


포기.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수없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포기해왔다.


음악적 재능이 없지만 악기를 다루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중학생의 나는 드럼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한 번 내가 음악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바로 포기해버렸다.


고등학교 때는 가장 열심이었고 재미있었던 단 하나의 과목을 놓아버렸다. 몇 년간 들인 시간과 노력이 무색하게도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 첫 수업을 듣는 데 이해 할 수 없자 그냥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수많은 관계들을 일방적으로 포기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관계의 깊이, 심리적 거리, 함께했던 시간이 얼마가 되었든 간에 가리지 않고 쉽게 포기해버렸다.


이것 말고도 곰곰이 내가 포기했던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살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순례자의 길 역시 내가 포기했던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여러 사람들에게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는 다고 자랑하듯 얘기했던 모습들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자위했다. 부끄럽고 난처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너무나 지쳐있었다. 포기하기로 마음먹자 찝찝한 느낌과 홀가분한 기분이 묘하게 나를 감쌌다.


약 5시간에 걸쳐 ‘Tomar’에 도착했다. ‘Tomar'라는 도시는 조용하고 정갈했다. 잘 정리된 깔끔한 느낌을 주는 이 도시가 나는 좋았다. 도시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들리던 소방서를 찾지 않고 곧장 호스텔을 찾아 들어갔다. 카운터에는 아까 길거리에서 봤던, 양손 가득 장 본 것들을 들고 가시던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녀 역시 나를 알아보았고 우리는 서로 미소 지었다.


“세요(도장) 찍어줄게.”


그녀는 호스텔에 비치된 도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차마 방금 전에 순례자의 길을 포기했다고 말하지 못 한 채 순순히 크레덴션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도시 이름이 적힌 세요가 크레덴셜의 빈 공간에 찍혔다. 그 후 간략하게 호스텔에 대한 설명을 듣고 ㄷ자 모양의 도미토리로 안내받았다. 방에는 흰 벽에 커다랗게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빈 침대는 많았지만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문 정면의, 창문이 바로 옆에 있는 1층 자리에 짐을 풀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뒤숭숭한 생각들은 이리저리 날뛰다가 ‘에라 모르겠다, 밥이나 먹자’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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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의 잘 정돈된 주방을 보고 오랜만에 직접 음식을 해 먹고 싶었던 나는 구글 지도로 마트를 찾아보았다. 도심과 조금 떨어진, 멀지 않은 곳에 대형마트가 있었고 나는 간편한 차림으로 킥보드를 챙겨 길을 나섰다. 마트에는 다양한 먹을거리가 넘쳐났고 지금까지 고생한 나를 위한 만찬이라며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다. 피클에 와인까지 고르고 나서야 나는 계산을 했고 요리 순서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장 먼저 손을 씻고, 재료들을 꺼내 흐르는 물에 헹구었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소금을 한 자밤 뿌린 뒤 가장 센 불을 해놓고 끓기를 기다렸다. 물이 끓자 가장 먼저 마카로니를 삶고 푸실리, 스파게티면 순으로 삶았다. 스파게티 면을 삶는 6분의 시간 동안 새하얀 양송이버섯을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올리고 적당히 익자 토마토소스를 부었다. 다 익은 면을 체에 걸러 물기를 뺀 뒤 프라이팬에 넣고 휙휙 저어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치즈를 뿌렸다. 마카로니와 푸실리는 한 접시에 담고 그 위에 옥수수를 얹고 남은 토마토소스로 덮어주었다. 여기에 냉동 게살 튀김, 피클, 와인을 곁들여 푸짐한 한 상을 차렸다.


IMG_5531.JPG 푸짐한 한 상.


성대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비록 혼자서 먹기는 했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더 들어갈 곳 없이 두둑해진 복부와 곁들여진 와인으로 피곤이 몰려온 나는 먹은 것을 정리하고 다시 침대로 향했다. 달콤한 낮잠은 해가 지고 나서야 끝이 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밤 산책을 나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Tomar'는 아직 평화롭고 정갈했다.


#오늘 걸은 길

- 출발: 08:07 / 도착: 12:45

- 거리: 약 30km

- 경비 : 34.83 Euro


KakaoTalk_20190317_230329073.jpg Golega - To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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