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차 - 다시 걷다

by 잼 매니저

6일 차 - 다시 걷다


어제, 그러니까 ‘Tomar‘에서 온전히 하루를 다 보낸 날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하러 나갔었다. 어김없이 평화로운 도시를 느린 발걸음으로 하나하나 둘러보며 카메라에 담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순례자의 길에서 누적된 피로가 아직 남아있어 점심을 먹고 다시 들어가 쉬기로 결정했다. 점심은 여행을 다닐 때 종종 애용하는 어플로 찾은 가게였는데, 좋은 평가를 줄 수밖에 없는 훌륭한 수제 햄버거를 먹을 수 있었다. 여기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곁들이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계산을 하고 나른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평화로운 'Tomar'


방으로 들어갈 때 카운터에서는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중년의 어느 한 남자가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 순례자요, 하는 차림새였는데 내가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있는 ㄷ자 모양의 도미토리로 들어왔다. 그는 아무렇게나 짐을 던져 놓은 뒤 침대에 앉아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 그의 주위를 맴돌며 앉았다, 일어났다,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그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핸드폰에서 떨어지자마자 나는 먹잇감을 낚아채는 한 마리의 독수리처럼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안녕하세요, 순례자세요?”


그는 따뜻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잉글랜드에서 온 그는 나처럼 순례자의 길을 포기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의 사정은 이러했다.


꽤나 나이가 많은 그는 지팡이에 의지하며 천천히 산티아고를 향해 걸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넘어지고 말았는데 이때, 무릎을 땅에 세게 부딪혀 계속해서 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느꼈고 그는 급하게 일단 가장 가까운 마을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원래 오늘의 목적지였던 ‘Tomar'까지 기차를 타고 온 것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의 그는 고민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이 길을 걷느냐, 아니면 일단 돌아가서 회복을 한 뒤에 다시 돌아와 걷느냐.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그는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 이 호스텔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의 결정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는 말없이 신중한 태도로 나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 그 후 각자가 걸어온 길과 이 시기에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얼마 동안 오고 갔다.


대화가 맺어지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은 채 우리는 각자의 침대에서 생각에 잠겼다.


생각에 잠겨 눈을 감고 있다가 어느새 잠에 들어 눈을 뜨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배고픔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삼겹살에 흰쌀밥이 먹고 싶었던 나는 어제 장을 봤던 대형마트에서 쌀과 고기를 산 뒤 어제 먹고 남은 것들을 이용해 요리를 해 먹었다.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밥을 먹는 동안에도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순례자와의 조우는 포기했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밥을 다 먹고 정리를 할 때도, 잠이 오지 않아 평화로운 도시의 밤거리를 걸을 때도, 침대에 돌아와 누워 눈을 감기 전까지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걸어야 하는가?’


-


자기 전까지 맴돌던 고민과 문장들은 온 세상이 다시금 밝아졌음에도 여전히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는 침대 주위로 널브러진 짐들을 바라보며 오늘부터의 계획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침대 앞에 팔짱을 끼고 꼿꼿이 선채로 미간을 모은 채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어제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중년의 남자가 마찬가지로 조식을 먹고는 들어온 것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그가 내게 말했다.


“나는 포기하기로 결정했어. 내가 가지고 있던 지도 필요하면 줄게. 필요하니?”


어렴풋이 예상했던 그의 포기였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지도를 내게 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응, 나 줘!” 나는 순간적으로 대답했다.


그도 어렴풋이 예상했던 대답인지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씨익 웃으며 물었다.


“다시 순례자의 길을 걸을 거야?”


“응, 오늘부터 다시 걸을 거야!”


KakaoTalk_20190212_234719649.jpg 그에게 받은 지도.


그가 내게 포기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다시 순례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그에게 지도를 건네받고 짐을 챙겨 떠나는 그를 배웅했다. 그리고 다시 도미토리에 혼자 남아 왜 다시 순례자의 길에 오른다며 그에게 지도를 받았는지 생각해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나는 아직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 순간을 평생 돌아보며 살아갈 것이 뻔했다. 고개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봐야 하는데 계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볼 것만 같았다. 미래의 내가 이 순간을 돌아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다시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나의 성향이 머릿속에 번뜩 문장으로 떠올랐다.


‘쉽게 넘어지고 쉽게 일어난다.’


나는 항상 그래 왔다.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자주 넘어졌지만 금방 다시 일어났다. 지치고 힘이 들면 금방 포기했고 곧 다시 회복하고 나아갔다. 마치 지금처럼. 그래, 이게 나였다.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렇게 내가 나답다는 것을 증명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기 위해 나의 속도로 다시 순례자의 길에 오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심이 서자 행동은 빨라졌다. 세면을 하고 가방을 챙겼다. 짐들을 챙겨 가방 속에 넣을 때 순간적인 기지로 카메라 가방이자 서브 가방을 배낭에서 꺼내 킥보드 손잡이에 걸어 배낭의 무게를 확 줄였다.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등산화를 동여매고 한 발자국 걷는데, 아뿔싸 왼쪽 아킬레스건에 심한 통증이 왔다. 참고 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지겹게도 계속되는 고민, 고민, 고민. 하지만 지금 어떻게 해서든 출발하지 않는다면 고민만 하고 있을 것이 자명했기에 나는 다시 기지를 발휘했다. 등산화를 벗고 가방 속에 있던 스니커즈를 꺼내 신었다.(그렇다 나는 총 3켤레를 들고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 등산화, 스니커즈, 슬리퍼까지) 다행히 스니커즈를 신자 걸을 수 있었고 마침내 나는 10시가 조금 넘은, 순례자의 길을 시작하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에 출발할 수 있었다.


다시 순례자의 길로 돌아온 나를 반기기라도 하듯이 날씨는 너무나 청명했다. 그러나 곧 ‘그’ 시선들이 다시 느껴졌다. 그 시선들은 마치 한 겨울 막 만든 음식이 차가운 공기를 만나며 빠르게 식어가듯 어제 호스텔에서 나와 같은 순례자와 나누었던 눈빛과 대화들로 느낀 따뜻함을 식혀갔다. 나는 식어가는 온기를 최대한 간직하려 애쓰며 다시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나갔다.


도심을 벗어나 한참을 산속 한적한 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오르막이 계속되었지만 포장도로였고 카메라 가방을 킥보드에 걸음으로서 배낭의 무게가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오르막이 끝이 나고 내리막이 시작되었는데 경사가 심상치 않았다. 스키장 최상급 코스에 버금가는 경사를 보고 나는 고민했다.


‘킥보드를 탈 것이냐, 말 것이냐’


킥보드를 타자니 내리막이 너무 길었고 경사가 심했다. 킥보드를 안 타자니 내가 지금까지 한참 동안 오르막길을 오른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정상에 서서 잠시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세기의 대결을 앞둔 선수처럼 비장하게 킥보드에 올랐다. 타악, 하고 땅을 발로 차고는 곧바로 킥보드에 올렸다. 처음에는 재밌었다. 하지만 아래로 향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내 감정도 그에 맞춰 빠르게 변해갔다. 통제할 수 없는 속력은 즐거움에서 엄청난 공포로 빠르게 변해갔다. 킥보드 뒷바퀴에 달려있는 보잘것없는 브레이크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 나는 손잡이를 ‘툭’ 놓아버렸다. 힘을 잃은 킥보드는 나가떨어지고 맨몸의 나는 원래 가지고 있던 속력을 맞추기 위해서 다다다다 발을 빠르게 굴렸다. 빗물이 남아있던 윤택한 도로의 미끄러움과 내 다리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속력으로 인해 나는 뒤로 벌렁 자빠졌다. (이때만큼은) 감사하게도 나의 등에는 돌덩이 같은 배낭이 있었고 나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때 아닌 썰매를 탔다.


내리막이 끝나자 나도 멈출 수 있었고 비유가 아닌 실제로 넘어진 나는 또 금방 일어나서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약간 까진 몇 곳을 제외하고는 나도 킥보드도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다시 나아가기 전 뒤를 돌아 내가 내려온 곳을 봤다. 나는 미쳤었다. 저런 경사를 킥보드를 타고 내려오려 했던 나는 단단히 미쳤었다. 스스로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앞으로 향했다.


IMG_5585.JPG 내가 넘어졌던 경사진 도로.


꽤나 시간이 지난 후 오늘의 목적지인 ‘Alvaiazere'에 도착했다. 길이 힘들지 않았고 날씨는 계속해서 걷기 좋은 상태로 있어주었기 때문에 나는 소방서에서 도장만 받고는 그다음 도시인 'Rebacal'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받은 포르투갈 순례자의 길 책자에 따르면 거리는 좀 멀었지만 순탄한 길이 이어졌기 때문에 좋은 컨디션의 나는 호기롭게 출발하였다.


호스텔을 나선 지 9시간, 장장 63km에 달하는 거리를 지나 하루의 막이 내린 'Rebacal‘에 도착했다. 고요한 도시에서 나는 갈 길을 잃었다.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잘 곳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열심히 숙소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정적한 도시 여기저기를 헤매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길을 지나는 친절한 어느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걸어주어 순례자들을 위한 어느 한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식당의 주인아주머니가 자물쇠로 굳게 닫힌 알베르게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어 주어 내게 잘 곳을 마련해주었다.


‘Rebacal’의 알베르게는 웅장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지나왔던 도시들에서는 아예 알베르게가 없거나 있어도 비수기로 문을 열지 않았었기 때문에 소방서나 호스텔을 이용했었다. 따라서 오늘이 순례자의 길을 걸은 후 처음으로 순례자 숙소를 이용하는 날이었는데 이곳은 호스텔과 가격, 시설, 공용 샤워실 등 비슷한 부분이 많으면서도 혼자서 방을 쓸 수 있었다. 일단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샤워를 한 후 아까 나를 구제해줬던,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문을 열고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웬걸, 식당에는 어느 한 순례자가 나보다 먼저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맞은편에 앉을 수 있냐고 물었고 그는 흔쾌히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의 이름은 벤이라는 청년으로 나보다 조금 어린 나이었다. 오늘 아침 나에게 책자를 주었던 중년 남성처럼 잉글랜드에서 온 벤은 굉장히 밝은 친구였다. 덕분에 나는 정말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다른 환경, 다른 문화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라왔지만 길 위에서 똑같은 것들을 느끼고 경험했다. 내가 느낀 것을 그 역시 느꼈고, 그가 느낀 것을 나 역시 느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 우리는 그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친구였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 벤은 피곤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며 숙소로 먼저 돌아가겠다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그를 배웅했다. 그가 가고 얼마 후 나 역시 숙소로 돌아가 길고 길었던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알아두면 좋은 정보(tip)

- 순례자의 길은 경쟁이 아니다. 자신의 속도로 걷자.

- 친절을 베풀는 사람, 친절을 기분좋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오늘 걸은 길

- 출발: 10:08 / 도착: 18:53

- 거리: 약 63km

- 경비: 27.3 Euro


KakaoTalk_20190317_231216616.jpg Tomar - Alvaiazere - Rabacal


keyword
이전 07화5일 차 - 나의 산티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