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차 - 에그 타르트와 에스프레소 그리고 바람
‘Coimbra'를 떠나는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제 줄 서서 먹은 식당에서 다른 메뉴도 먹어보고 싶었고, 꼭 가보고 싶었던 식당은 아직 가보지도 못했다. 내 마음에 들어앉은 이 도시를 벗어나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호스텔 앞에 있는, 이제 막 문을 열고 있는 카페로 들어가 에그 타르트(Nata)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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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타르트와 에스프레소.
에그 타르트는 리스본 부근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수녀들이 만들어 먹던 빵의 제조법을 전수받아 1832년부터 도시 외곽의 조금만 빵집에서 만들어 판매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그 이후로 포르투갈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디저트가 되었고,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디저트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 조그마한 빵의 맛은, “원조 에그 타르트를 먹기 위해 포르투갈을 여행지로 선택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 나는 이 맛을 알게 된 이후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같이 이 음식을 먹었는데 길을 걷는 도중 먹었던 에그 타르트는 행군 중에 먹었던 초코바 못지않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마실 것은 단연 에스프레소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의 투박함을 반영하듯 커피의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보통의 가게에서는 에스프레소와 이에 물을 조금 탄 아메리카노가 되지 못한 에스프레소만을 취급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두 가지 음식의 조화로움이 가히 햄버거와 함께 마시는 콜라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리스본의 어느 에그 타르트 전문점에서 이 두 가지를 처음으로 함께 맛보았을 때 나는 새로운 맛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촉촉한 크림을 가진 타르트를 바삭 반쯤 베어 문채로 진한 커피 향을 맡으며 얕은 신맛과 담백하고 씁쓸한 에스프레소를 입안으로 적당히 흘려 넣으면, 이미 입속에서 자리 잡고 있던 커스터드 크림과 조화롭게 은근한 단맛을 이루게 되고, 이 단맛은 바삭한 페이스트리와 어우러져 입안을 맴도는데 이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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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앉아 아침 식사를 대신한 에그 타르트를 먹으며 생각했다.
오늘의 도시 ‘Mealhada'를 지나 내일의 도시 ’Agueda'까지 가기로.
아직 고치지 못 한 킥보드의 바퀴가 덜렁덜렁거렸지만 다행히 굴러가기는 했고, 50km에 육박하는 거리였지만 왠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짜(?) 순례자처럼 오늘은 걸어서 가자는 마음으로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도시를 나섰다.
무난한 길들의 이어짐은 힘듦보다는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때문일까, 길을 걷는 내내 깊이 있는 고민이나 의미 있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들지 않았다. 그저, 한국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을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한국에 돌아가 먹고 싶은 음식만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먹어야 할 음식의 가짓수가 쌓이고 쌓여 두 자릿수를 넘어가고 있을 때쯤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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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Mealhada'에서 그다음 도시인 'Agueda'까지 걷는 내내 날씨는 계속해서 변덕스러웠다. 어느 정도 포르투갈의 날씨에 익숙해졌다고 자부하며 나아가고 있었지만, 오늘 만난 날씨로 인해 이는 명백한 오만이었음이 밝혀졌다. 머리 위로 먹구름이 비를 뿌리다가 어느 순간 나를 지나 그 뒤에 숨어있던 햇볕이 나를 비추는 것은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다. 이런 현상이 10분 간격으로 일어나는 것도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허나, 나아가는 나를 막아서고 있는 이 바람은 내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분명, 바람 한 점 없는 흐린 날씨였다. 순식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태풍 같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한 방향에서 몰아치는 바람이 아니라 오른쪽, 왼쪽, 앞쪽, 뒤쪽 등 방향에 구애받지 않는 강력한 바람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나를 강타헸디. 내가 걸어가는 길을 막아서기도 하고 나를 앞으로 밀어 주기도 하며 마치 신이 바람을 조절하며 나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이 바람의 강력함은 내리는 비를(과장을 조금 보태서) 가로로 내리게 만들었다. 이 물방울의 세기는 맨살에 맞으면 따가울 정도였는데, 바람에 실린 이 물방울이 내 몸에 닿을 때마다 입 밖으로 “아” “아야” “아야야” 하는 소리를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잠시 잠잠해졌다. 좀 살만한가 싶을 때 또다시 위의 상황이 반복되었다. 눈앞에 도시를 두고 막아서는 바람을 뚫고 갈 때에는 나도 날씨처럼 미쳐서 온갖 혼잣말을 지껄여대며 온 힘을 다해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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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도착한 숙소는 도시 외곽에 위치한 호스텔과 사립 알베르게를 겸하는 곳이었다. 지독한 바람을 이기고 들어온 나는 도시 중심에 있는 소방서를 찾아갈 힘이 없었고, 곧바로 숙소로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전원주택 같은 안락한 숙소의 주인은 반갑게 나를 맞더니 킥보드로 순례자의 길을 걷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기념으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머쓱함과 뿌듯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그를 보자 그는 나보다 더 뿌듯해하고 있었다.
“혹시 저녁식사는 어떻게 해요?” 나가서 식당을 찾기에는 너무 지쳐있던 내가 물었다.
“시켜 먹어!”라며 그는 메뉴판을 보여주었다.
‘응? 여기서 뭘 시켜먹어?’ 머릿속으로 의심에 찬 생각을 하며 그에게서 메뉴판을 전해 받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놀랍게도 메뉴판에는 다양한 메뉴가 적당한 가격과 함께 적혀있었고 배가 몹시 고팠던 나는 소시지와 고기, 밥 그리고 감자튀김이 함께 있는 메뉴를 손가락으로 짚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배달이 완료되면 불러준다며 방에 들어가 쉬고 있으라고 했다. 잘 꾸며진 거실을 지나 썰렁한 도미토리에 들어간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젖어있는 몸을 다시 적셨다.
샤워를 끝내고 몸을 닦는데 비에 맞았던 곳들이 빨갛게 올라와 있었다.(비의 강도를 짐작해볼 수 있으리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나의 몸을 훑고는 나른해진 몸을 뉘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음식이 왔다며 나를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지하에 마련된 꽤나 큰 식당으로 갔다. 어느 식탁에 거대한 1회용 도시락 용기가 떡하니 놓여있었고 나는 가차 없이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않는 음식은 엄청 맛있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는 나만의 텅 빈 공간으로 돌아가 몸을 웅크렸다.
#알아두면 좋은 정보(tip)
-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양이 많으니 주의하자.
- 엄청난 바람을 각오하자.
- 에그 타르트와 에스프레소는 하루에 한 개 이상 먹자. 한국에 돌아오면 가장 그리운 음식이 될 것이므로.
#오늘 걸은 길
- 출발: 08:56 / 도착: 17:40
- 거리: 약 48km
- 경비: 37.5 Eu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