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차 - 분노의 포르토
짐을 다 챙기고 배낭을 메기 위해 어깨끈에 손을 넣으려는 순간, 썩은 냄새가 코를 강타했다. "으웩" 소리와 함께 질색을 하며 냄새의 발원지를 찾아보니 배낭의 등 부분과 어깨끈 부근이었다. 푹신한 소재의 이 부분들은 그동안 착실하게 땀과 비를 흡수해왔던 것이다. 이 냄새는 지금까지 길을 걸으면서 인식하지 못한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역했는데,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던 내게는 치명적이었다. 이제 와서 배낭을 빨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표정을 잔뜩 구긴 채로 배낭을 멨다. 길을 걷기도 전부터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길에 대한 ‘감’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노란 화살표가 보일 때쯤 보이지 않아도 곧 보일 것이란 확신에 찬 느낌이 있었고, 실제로도 조금 지나 노란 화살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오늘 역시 그 ‘감’을 믿고 노란 화살표가 보이지 않고 있음에도 같은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노란 화살표는 보이지 않았고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나는 도로에 우뚝 선 채 구글 맵과 지도를 꺼내 내 위치를 가늠해보기 시작했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확신이 들자 더 이상 구겨질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구겨졌다. 나아가던 길로 계속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목적지까지 크게 돌아가 몇 시간을 더 걸어야 했다. 차라리 지금 온 길을 되돌아 가 맞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따라서 뒤를 돌아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이틀 연속 두 개의 도시를 (약 90km에 달하는 거리) 걸은 것으로 다리의 피로는 극에 달해있었다. 게다가 오랜 시간 비를 맞으며 무리를 했기 때문에 몸살 기운까지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걸었던 길을 되돌아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과정은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점점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일이었다. 이 상태에서 강풍을 동반한 비는 (그렇다, 또! 또! 또다시! 그 바람과 비였다.) 짜증이 바짝 오른 상태의 나를 분노하게끔 만드는 데 충분했다.
분노. 순례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화가 난 적이 없었는데, 분명 나는 지금 이 순간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의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화가 난 이유를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러 부정적인 상황들이 곰비임비 만들어 낸 결과인 것은 분명했다. (배낭에서 나는 썩은 내, 한계에 달한 몸 상태, 걸었던 길을 되돌아 가야 하는 상황, 그 바람을 동반한 비….) 분노는 내게서 미소와 여유, 그리고 차분함을 앗아갔다. 짙은 안개로 노란 화살표가 잘 보이지 않을 때마다 혼잣말로 "시x 시x" 욕지거리를 해댈 정도로.
향할 곳 없는 분노는 도심을 지나 산길에 들어설 즈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한결 풀린 표정으로 빨간 자두를 입에 물고 가는데 맞은편에서 2명의 순례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부엔 까미노”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부엔 까미노” 그들 역시 활짝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인사를 주고받고 나자 문득, 아까 전까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혼잣말로 욕을 내뱉으며 걸은 것이 멋쩍어 헛헛한 웃음이 났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살면서 이런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불가항력적인 것에 대해 화가 나고, 스스로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던 순간들이. 이런 향할 곳 잃은 분노는 혼자 사그라질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더러는 가까운 사람들을 향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나는 분노보다는 애정을, 분노 어린 말들보다는 애정을 느낄 수 있는 표현들을 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게 소중한 그들이 역설적이게도 ‘소중하기 때문에’ 분노의 종착지가 돼버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지난날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뜨거운 기운이 얼굴까지 올라왔다.
화끈한 얼굴이 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식어가듯이 지난 행동들에 대한 후회는 점차 앞으로의 다짐으로 굳어졌다.
이렇듯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은 분명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대부분의 하루를 혼자서 보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침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 익숙했기에 소중함을 잊고 있던 것들, 낯 뜨거웠던 실수들을 돌아보며 반성했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다짐들을 했다.
의미 없이 시작했던 나의 순례자의 길은 점점 나름의 의미를 띠어 가고 있었다.
화가 가라앉고 나서야 오늘의 하늘이 흰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회색빛의 구름으로 덮여있는 것이 보였다. 회색빛의 구름으로 덮여있는 세상은 차분했고 덩달아 나 역시 보다 차분해졌다. 들끓었던 분노의 감정은 깨달음을 거쳐 가라앉아 잔잔한 평온함이 되었다.
하루하루의 순례자의 길은 생각에 잠겨 걷다 보면 도착할 만큼 거리가 결코 가깝지 않았다. 지도로 계속해서 남은 거리를 가늠해보고, GPS를 켜서 내 위치를 수시로 확인하고, 시계를 수십 번도 더 확인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고작 1시간을 일찍 도착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았다. 지나쳐가는 마을의 조용한 카페에 들러 빵과 커피를 먹기도 했으며 길 위의 의자에 앉아 몇십 분씩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무엇에 대한 사색이었는가 하면, '왜 계속 힘든 이 길을 걸어 산티아고까지 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왜 순례자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에 대해 답할 수 있었고(그레고리에게 이야기했듯이 ‘경험’) 이 길 위에서 내가 얻는 것도 분명 있었지만(여러 깨달음과 다짐 등), 이런 것들이 계속 이 길을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중간에 힘들고 외로워서 포기했다가 다시 걷게 된 이유와는 또 다른, 순례자의 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이곳을 찾았었다. 요새는 이 길을 걷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채로운 이유로 이곳을 찾지만 말이다. 이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유는 잠시 제쳐두고, 전통적인(종교적인) 이유로 순례자의 길을 찾았던 이들의 경험을 보면 산티아고에 도착해 감격스러움, 감동, 거룩함 등을 느꼈다고 한다.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고자 이 길을 계속해서 걷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내가 이 감정을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얻지 못 함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답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처음 만났던 그레고리와는 다른, 다채로운 이유를 갖고 이 길을 걷는 다양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내가 만났던 벤처럼. 벤은 인생의 분수령에 이르러 이 길 위에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고 내게 말했었다. 벤의 이 같은 이유는 입대 전이라는 나의 상황에 적용할 수도 있지만, 100% 만족할 수 있는 답은 아니었다. 나는 곧 변하게 될 나의 상황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 후의 계획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생각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음을 시작할 때까지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산티아고까지 계속해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였다. 그저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알게 되지 않을까'라는 낙관적인 생각과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공허함과 허탈감으로 채워지진 않을까'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교차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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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에서의 하루.
무리를 해서 달려온 포르토는 한마디로 별로였다.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일까, 포르토에 있는 내내 만족스럽지 않았다. 넘쳐나는 관광객과 끝없는 오르막은 도시를 돌아다니기조차 싫게 만들었고, 오히려 코임브라에 대한 향수만 짙게 만들었다. 실망감으로 가득 찬 내가 포르토에서 한 것이라고는 그저 쉬고 또 쉬는 것이었다.
#알아두면 좋은 정보(Tip)
- 개인적으로 'Porto'보다 'Coimbra'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오늘 걸은 길
- 출발: 09:36 / 도착: 18:10
- 거리: 약 34km
- 경비: 33.75 Eu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