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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Jan 27. 2022

티백같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여.

태안 노을길 백패킹

새해계획 없이 새해를 맞이한 지 2년이 지났다.

뻔한 계획이라도 다이어리에 끄적이며 연말을 보내는 그런 소소한 기쁨을 잊은 채로 지내왔다. 그래, 오랜만에 계획을 세워보자. 넘어가는 해를 보며 생각을 정리해보겠다고 무작정 태안으로 향했다.


태안 노을길. 백사장항에서 시작해서 꽃지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코스였다. 그 길을 택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이름이 노을길이니까 노을이 예쁘겠지.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한 해의 마지막날 솔밭을, 해안가를 홀로 걷고 또 걸었다. 여름과는 또 다른 풍경. 바다의 진면목은 겨울에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강한 파도와 차가운 바람이 만들어내는 스산함과 적막함이 나쁘지 않았다.


트레킹 코스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국립공원에 속해있어서 마땅히 야영할 만한 곳이 없었다. 목표지점에 다다라서는 택시를 타고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다. 백사장항에 합법적인 야영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얀 눈 위에는 아침에 걸었던 발자국 한 줄이 그대로 나 있었다. 오늘 이 길을 걸은 건 나뿐인 걸까. 그게 정말 내 발자국이 맞는지 혹시나 해서 옆에 나란히 찍어보는 발자국. 크기로 보나 밑창의 모양으로 보나 분명 내 것이었다.


낯선 길 위에서 아는 발자국을 따라 나란히 걸었다. 동틀 무렵의 나와 해질 무렵의 내가 시간차를 두고 함께 걷는 그 길 위에서 혼자이지만 어쩐지 혼자가 아닌 기분이었다. 야영장에 도착해 텐트를 설치하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해넘이를 보겠다고 삼삼오오 몰려든 사람들이 한해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티백같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며 한해가 저물고 있었다. 해는 점점 깊게 우러나고 많은 기억들 또한 함께 우러났다. 묵은 해는 바다속으로 완전히 침몰하고 내일이면 다시 또 새로운 해를 뱉어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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