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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Jun 16. 2024

아파도 행복한 개

한강을 뛰다 목격한 아름다운 순간

맙소사. 꼬리콥터가 달린 개가 주인을 향해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는 풍경이라니. 양쪽 앞다리에 다관절 기브스를 하고 저만치 앞서 달려가 이름을 부르는 주인에게 힘겹게 걸어간다. 마음은 이미 달리고 있겠지만 다리가 따라주지 않는 것 같다. 꼬리를 팔랑거리며 열심히 앞으로 발을 내딛어보지만, 한참을 끙끙대도 시작지점에서 멀리 떠나오지 못했다.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혹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이내 멈춰선다. 한참을 더 기다리던 주인이 다가와 강아지를 끌어 안고 벤치로 가서 앉는다. 그리고 저만치 앞서 나가 이름을 부르고 걷기를 몇번 더 반복한다.


일요일 늦은 아침 한강 러닝을 나왔다가 탁 트인 풍경이 보이는 한적한 공터에 앉아 쉬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한참 외진 방향으로 달려와야 있는 곳이기 때문에 거의 동네 주민들만 있는 곳이다. 그렇게 한강멍 아차산멍을 때리고 있던 그곳에서 참으로 보물같은 순간을 목격하고 말았다.


조금 아프다는 이유로, 말을 잘 듣지 않는 다는 이유로, 어떤 어떠한 이유로 유기견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하얗고 조그만 그 강아지를 아프다고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보듬고 있었다.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사실 얼만큼의 시간과 돈이 드는 지 모른다. 하지만 처음보는 형태의 다관절 기브스는 그냥 보기에도 돈이 많이 들었겠다 싶었다. 장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들었을 수술 비용이나 앞으로 들어갈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사실 꽤나 많이 부담스럽겠지. 그리고 주변에서 주인을 따라 똥꼬발랄하게 뛰어다니는 예쁜 강아지들을 보며 내 강아지는 아프고 병들어서 이렇게 어기적어기적 걷는것에 아쉬운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저렇게 사랑해주는구나. 너무 너무 예쁜 마음을 본 것 같아 내 인생까지 조금 더 아름다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암벽등반을 하다 추락사고로 온 몸이 부서져서 겨우겨우 숨만 붙어 있을 때도 나를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 한참 시간이 흘러 겨우 겨우 걷게 되었을 때 나를 옆에서 붙잡고 똑바로 걸을 때까지 기다려준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과정들을 이해하고 아직까지 후유증이 남은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까지.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없겠지. 그 강아지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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