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자극적이지 못한 내 인생에게.
청춘의 삶이 이토록 찬란한 와중에도 청춘을 다루는 드라마들은 영 어깨를 못 펴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모두 좋은 작품들이었고, 내부적으로는 호평을 받았으나 어찌 됐 건 상업 드라마는 시청률이 잘 나와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디즈니 플러스에서 웹드라마로 만들어졌던 <너와 나의 경찰수업>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이 드라마를 'TV에서 볼 법한 드라마'라고 표현하며 전반적으로 아쉬웠다는 평가를 내놓은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OTT를 통해 공개된 작품이지만, 고자극의 다른 학원물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이 작품은 다소 평범하고 밋밋했다는 평가였다.
해당 기사에서 언급한 드라마 <치얼업> 역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으나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다. 어린 배우들의 열연이 빛났고 오랜만에 만나는 청춘 캠퍼스 물이었지만, 3%대의 시청률에 머물렀다. 물론 시청률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뭐 어떡해요. 사람들은 그런 걸로 평가하던데.
TV를 벗어나서도 다양한 작품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생기다 보니 어느새, 청춘, 힐링, 가족애, 로맨틱 코미디 등 예전의 드라마를 대표하던 장르들은 모두 공중파 드라마스러운 장르들이 되었다.
심지어는 이제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은 재미가 없다는 인식까지 생겨난 것 같다. 실제로 인기 작가의 기대작들은 이미 우선적으로 OTT로 빠진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아직 티켓 파워를 가지지 못한 어린 배우, 몇 작품 하지 않은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 주로 공중파에 배정되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예전에는 공중파를 지나 종편, 케이블로 떠났다면 지금은 넷플릭스로 가버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공중파 시스템이 가지는 각종 제약들이 드라마를 더 꽃 피우지 못하게 하는 걸까, 아니면, 자극적인 것에 이미 물들어 버린 우리들이 더 이상 잔잔한 드라마를 사랑하지 않게 된 걸까.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장르들인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건가요? 오늘도 길을 잃었네요.
작가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도 자극적인 소재로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몇몇 작가들은 개연성은 개나 줘버린 막장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 때마다, 글을 정말 저렇게 써야 하는 거냐며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전 클래스 101 강의를 통해 알게 된 드라마 <금혼령, 조선 혼인 금지령>의 천지혜 작가는 우선 팔릴 만한 작품을 써야 그다음에 나의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또오해영>과 같은 흥행작이 없었다면 <나의 아저씨>나 <나의 해방일지>같이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무겁고 딥한 작품은 나올 수 없었을 거라고.
<유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백미경 작가는 말했다. 안전 기반 위에서 1등을 하는 것보다 도전하는 꼴찌를 원한다고.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원한다고.
"또 도전하다 실패하면 <품위 있는 그녀>, <마인> 같은 걸 또 쓰면 돼요."
아, 멋있다.
정말 멋있는 말이었다. 성공한 작품을 가지고 있고, 언제든 그러한 작품을 다시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결국 백미경 작가가 한 말도 이것과 일맥상통한다. 작가들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하며 자아실현 하기를 꿈꾸지만, 아무도 내 작품을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혼자서 소설을 끄적이고픈 사람이 아니라 나의 작품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사람이고,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자극적인 요소는 반드시 필요한 모양이다.
타고난 성향 자체가 자극적이지 않고 원래 힐링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는, 막장이 아닌 재미, 재미없지 않은 힐링, 그 사이에서 오늘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작품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천지혜 작가의 말을 가슴에 품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사진의 출처는 해당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