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고 여름이 깊어지는 동안, 사이버대 대학생이 된 나는 두 번의 시험을 끝냈고, 하나의 공모전을 마쳤다.
왜 항상 공모전이 끝나면 더 잘할 순 없었을까 생각하면서 막상 할 때는 그것밖에 안 되는 걸까.
역시 인생은 매 순간이 아이러니구나.
해리포터를 본 건 기말고사 시험 기간이었다. 사이버대라고 만만히 봤더니 매주 강의는 꼬박꼬박 올라오고 리포트에 기사 스크랩에 토론까지 할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역시, 어떤 학교든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난 상담심리의 전문가가 될 예정이니 열심히 해야지.
난 인간을 깊게 이해하고 탐구하며 공감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그러나 나의 다짐과는 다르게 눈뜨고 보면 중간고사에 리포트 마감 기한이었고, 어느새 기말고사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진짜 대학교를 다닐 때도 이렇게까지 벼락치기는 아니었는데, 일하면서, 엄마 없는 집안의 살림까지 책임지다 보니 도저히 공부할 시간이 나질 않았다... 는 것은 역시 핑계였다. 세상에는 재밌는 TV 프로그램, 드라마가 너무 많았다. 그걸 다 보고 살자니 공부는 무슨, 역시 시험 때 보는 영화 드라마가 제일 재밌어. 하루 24시간은 너무 짧아.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 그래도 드라마, 놓치지 않을 거예요.
해리포터는 내 또래 어른들의 소울 무비였다. 2001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개봉했을 때 학교에서 이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다. 옛날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뚱뚱한 TV를 통해 반 아이들과 단체로 봤던 것을 시작으로 10년 동안, 그러니까 초등학생이 성인이 되는 동안 무려 8편을 선보이며 내 또래 아이들에게 최고의 시리즈물이 되었다. 수많은 해덕들은 모두 내 또래가 아닐까.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 시리즈물은 무엇보다 세계관 구축이 중요하다. <반지의 제왕>, <왕좌의 게임>과 같은 작품을 포함해 현실 세계가 아닌 것을 배경으로 하는 모든 작품은 우리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도, 보는 사람이 불쾌함,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구성과 장치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리포터의 마법세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해리가 결국 볼드모트를 이겨내고, 그 과정에서 모든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는 것들 때문에 다음 시리즈를 계속해서 보게 만들었다. 물론 관객의 입장에서 재밌었던 시리즈와 그렇지 않은 시리즈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잘 만들어졌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왕좌의 게임>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를 처음 보았을 때 놀랐던 것은 어떻게 모든 가문의 히스토리를 다른 가문과 적절히 연결되게, 그것도 시간 순서에 딱딱 맞게 이토록 잘 구성해 내었는가였다. 기나긴 대서사시를 쓰면서 단 한 번도 어긋남 없이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는 플롯을 짜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각 인물에 얽힌 모든 스토리를 이질감 없이 만들어내는 작업은 오로지 그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왕좌의 게임>은 경이로웠다.
굳이 판타지 장르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최명희 작가님의 <혼불> 그리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고전 작품들, 그러니까 단편이 아니라 분량이 어마어마한 작품들도 등장인물 설정이나 구성이 중요하다. 물론 <왕좌의 게임>과 <해리포터>도 원작 소설이 탄탄했기에 나올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천지혜 작가는 드라마 작가가 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는 괜찮은 원작의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생각해 보면 내 머릿속에 있는 방대한 이야기를 드라마 구조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 소설로 한 번 써 보는 건 어떨까. 소설이 쓰기 쉽다는 말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소설은 그 수많은 인물과 이야기를 어긋남 없이 잘 이어주어야 하는 고된 노동이다. 편집도 재구성도 없다. 시간 순서대로 모든 에피소드를 물 흐르듯이 나열해야 한다. 물론 시공간을 역행하는 소설도 있지만, 그래도 소설에서 중요한 건 앞뒤가 잘 이어지는 스토리인 것은 틀림없다.
최근 방송가는 '괜찮은 원작'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잘 나갔던 작품들 중에서도 웹툰이나 웹소설 원작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JTBC <재벌집 막내아들>, 넷플릭스 <D.P.>, ENA <마당이 있는 집> 그리고 시즌 2로 찾아온 tvN <경이로운 소문>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원작이 있는 작품을 찾으려면 한도 끝도 없다. 내가 사랑하는 드라마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역시 웹소설이 원작이고, 나의 10대 후반을 책임졌던 드라마 <궁>과 <성균관 스캔들> 역시 각각 만화와 소설이 원작이다. 내가 사랑하는 배우 김동욱의 열연이 돋보였던 <돼지의 왕>도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다. 영화로 넘어와도 마찬가지다. 거의 밤을 새워 읽었던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 권비영 작가의 <덕혜옹주> 역시 이미 베스트셀러 소설들이 된 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방송국에서는 점점 드라마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되도록 흥행이 보장된 것에만 몰두하게 되는데, 원작이 있는 작품들은 재미가 보장되어 있기에 더 경쟁이 치열하다. 수많은 공모전이 작가지망생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는데, 정작 만드는 사람들은 새 작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보장된 재미에만 돈을 쓰고 있는 듯해 지망생으로서는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는 집에서 혼자 글을 쓰고 나 혼자만 만족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나의 작품을 온누리에 펼치고 싶고, 그걸로 돈을 벌고 싶다. 상업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돈이 되는 작품을 써야 한다.
할 일이 너무 많은 현실 속에서 나는 되도록 글을 많이 쓰려고 노력했다. 옛날 표현이기는 하지만,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 중요하다가 하지 않았는가.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한다면 답이 나오리라 여기는 수밖에.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엄마와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었다. 엄마 역시 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에 등록해 공부하면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꼼꼼하게 해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늘 존경심이 울컥 올라오곤 했다.
그런 엄마와 방에서 인터넷 바둑을 두는 아빠를 뒤로 하고 주인공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며 같이 보는 드라마는 너무도 재밌었다. 그렇게 <일타스캔들>, <모범택시 2>, <낭만닥터 김사부 3>와 <어쩌다 마주친, 그대> 그리고 <악귀>를 보내주었다.
아무리 좋은 드라마라도 순간순간, 너무 드라마적인 요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일타스캔들>에서 극 전체를 이끌어 온 빌런이 다소 어이없게 죽고 마지막에 갑자기 해이(노윤서 분) 엄마가 등장해 속을 뒤집어 놓는다든지, 김사부(한석규 분)가 너무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드라마적인 요소만이 부각되었을 때라든지, <모범택시>의 김도기(이제훈 분)가 매 에피소드마다 자기 본명을 내놓고 일을 하는데 경찰의 제재가 전혀 들어오지 않을 때라든지, 몇몇 순간들마다 '저건 말도 안 된다'하면서 깔깔거리고 웃으면 그게 또 하나의 재미였다. 물론 드라마들이 그런 부분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가끔 엄마는 드라마에서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나올 때마다 "작가들이 시청자를 우롱한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저러면 되겠냐고, 너는 저러지 말라고. 나는 그럴 때마다 맞장구를 치면서도 과연 내가 만든 세계는 보는 사람을 우롱하지 않을 수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노트북 속 깊은 곳에 묵혀 두었던 나의 세계를 꺼내었다. '말이 되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보는 사람들이 바로 그 '비현실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아직 내 노트북에는 없는 것 같아 조금 슬퍼졌다. 근데 뭐, 생각해 보면 언제는 안 그랬나. 그래도 언제나 나만의 세계를 만드리라 다짐하지 않았던가. 날씨도 더운데 가슴이 답답해지는 생각은 이제 그만. 어차피 내가 아무리 고민한다고 해도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작품이 나오겠니? 내가 박찬욱, 봉준호도 아니고. 내가 김은숙, 김은희도 아니고.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쓰겠다고.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나만의 길을 가리라 다짐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괜찮은 원작'하나 만들어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