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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캐리 Aug 16. 2023

언제나 달콤하길, 나의 도시.

그냥 계속 뭔가를 쓰는 이야기.

시간은 어느새 흘러, 2주 후면 다시 사이버대 개강이 다가온다. 만 나이가 되어 한 살이 어려졌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나이를 먹는다. 언제나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기에.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에 도무지 쓸 소재가 없어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어디론가 떠나 지금껏 해보지 못한 일들을 뻔뻔하게 하며 살아가는 상상을 매일 했다. 스카이다이빙이라든지, 순례길 걷기라든지, 심지어는 히말라야 등반 같은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세상에 권태로운 일상이 이렇게 무서운 거였군. 아빠가 아픈 이후로, 아무 일없이 흘러가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지만, 변덕쟁이 인간들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었다. 정말이지 영원한 마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구나.


다행히 한 동안은 썽과 약속되어 있던 호캉스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다. 나름대로는 다이어트도 하고 옷은 뭘 입을지 고민하다 보니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역시 여행은 가는 것보다 가기 전이 더 설레는 과정이었다. 호캉스 후에는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뮤지컬 덕분에 신나는 나날들이었다. 뮤지컬은 볼 때마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고, 커튼콜을 보고 있자면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내가 언젠가 진짜 작가가 된다면 뮤지컬 영화 하나 기깔난 거 만들어 봐야지,라는 다짐을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매일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해 주던 파워 'E'유형 인간인 애기가 망막박리로 갑자기 수술을 하게 되는 바람에 다 모인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맛있는 고기를 먹고 한참이나 수다를 떠니 이제야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인간은 조금이라도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것이 있어야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는 모양이다. 친구들 만나 밥 먹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그 작은 이벤트도 크게 다가왔다. 나는 만으로도 서른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지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아주 사소한 것도 특별하게 생각하려는 훈련이 필요했다.










도대체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었을까.


결국 예전의 나는 어떤 글을 썼는지 찬찬히 다시 들여다봤다. 과거의 나여.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니.


어렴풋이 기억을 떠올려 보면, 어린 날 첫 공모전에 냈던 작품은 이제 막 서른이 된 네 명의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이와 어른 사이의 청춘들, 일과 사랑에 치이는 여자들. 이 얼마나 뻔한 소재인가. 그때는 아마도 삼십 대의 삶이 대단히 치열하고 사건사고가 많으며, 그것을 아름답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내 삶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내가 좋다 못해 사랑하는 미드 <섹스 앤 더시티>와 그리고 그 시절 서울에 대한 환상을 품게 했던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와 많이 닮아 있었다.

(극본 송혜진  연출 박흥식/최강희, 이선균, 지현우, 문정희, 진재영 주연)

애 딸린 이혼남을 잊지 못하고 아직도 그리워하는 주인공, 회사에서 잘생긴 연하남의 대시를 받는 주인공,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가 결국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주인공들. 이 모든 것들은 그 언젠가 내가 봐왔던 드라마들의 총집합이었다. 내가 생각해 낸 건, 그러니까... 주인공 이름 정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또다시 그 병이 도졌다.

'내 글 구려병'

나의 모든 글은 왜 이리도 구린 걸까...ㅎ

그래도 서울에서 시나리오 수업을 들었던 시절에는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기도 했다. 선생님이 내 작품의 로그라인을 보고 흥미롭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고, 내 작품을 다 같이 돌려보는 게 민망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얻는 것들이 많아 유익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글 구려병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그때 썼던 글은 사주가 더러운 여자가 자신의 나쁜 운명을 상쇄시켜 줄 은인을 찾는 내용이었다. 어디선가 이 이야기를 들어봤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다. 드라마 <운빨로맨스>다.

(MBC/ 극본 최윤고  연출 김경희/황정음, 류준열, 이청아, 이수혁 주연)

주인공 보늬(황정음 분)는 미신에 푹 빠져있는 여자다. 점쟁이의 말대로 호랑이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야 아픔 동생이 나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렇게 호랑이띠 남자를 찾아 헤매며 심지어는 인터넷 구인 광고까지 내 처음 보는 남자와도 하룻밤을 보내려다 위험한 일을 당할 뻔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수호(류준열 분)가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 수호도 호랑이 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주나 타로 같은 것들을 보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주를 맹신하는 여자 이야기를 생각해 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마치 정해진 운명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운명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는 교훈 같은 걸 주고 싶었는지도.

그나저나, 내가 만든 이야기는 다 어디서 한 번쯤은 본 이야기 같은데... 저는 이제 뭘 써야 하죠?








사주를 보면 항상 '저는 언제쯤 잘 풀릴까요?'라는 질문을 했다.

그럼 대체로 올해까지는 힘들었는데, 내년부터는 인생이 필 팔자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야, 그런 말은 누가 못 하냐. 점이나 사주를 보러 오는 사람대부분 뭔가 힘든 일이 있는 사람들이고, 원하는 대답이 바로, '내년에는 괜찮아진다'였다. 재작년에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다. 하지만 나는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올해도 여전히 힘든 일들이 있고, 또 어떨 때는 내 인생 이만하면 괜찮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서울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무엇인가를 계속 써왔다. 왕의 자리에 누가 오르는 가로 피 터지게 싸우는 역사극부터, 내가 좋아하는 농구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잃어버린 남자들이 나오는 옴니버스식 스토리, 또는 시골 마을로 여행 간 취준생이 살인 사건을 맞닥뜨리는 이야기까지, 늘 서울로 떠나고 싶었지만, 내가 사는 이 도시에서도 그렇게 늘 무언가를 써왔음을, 똑똑히 확인했다.






나는 생각을 멈췄다.

사주는 통계학에 근거한 것이며, 확률이라는 것은 늘 부정확한 것이었다. 요즘은 어떤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면 사주보다는 MBTI를 살펴보라던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왔다 갔다는 하는 'F'형 인간의 삶에서 많은 생각은 곧장 많은 걱정으로 이어질 뿐이었기에 생각을 멈추었다.

생각을 멈추고 얼마 전 보고 온 뮤지컬 넘버를 찾아들었다. 역시 생각이 많을 땐 그저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웃는 게 최고였다.

좋은 노래와 함께, 또 무언가를 쓰기 위해 나는 다시 한글창을 열었다.












(사진의 출처는 해당 마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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