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새드엔딩.
생각해보면, 기억에 오래 남는 이야기는 꽤 슬픈 것들이었다. 영화관에서 어떻게든 추하게 울지 않으려고 발악을 했던 작품들은 다른 장르보다 확실히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봤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그때 나는 꽤 어렸기에 영화의 모든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도 강동원 배우의 얼굴에 천이 덮이는 그 순간에는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영화 <하모니>도 마찬가지다. 감옥에서 나온 주인공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다른 가족의 품에 보내는 장면에서 나는 가지고 들어간 휴지가 부족에 옷소매로 계속 눈물을 닦았다. 끅끅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나마 영화는 괜찮은 수준이었다. 어두컴컴한 상영관에서 빠져나와 사람들 틈에 섞여 매표소 근처의 팝콘 냄새를 맡을 때면, 그래, 내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구나, 이건 현실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일 뿐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달랐다. 늦은 밤 집에서 보는 슬픈 드라마에서는 빠져나올 방법이 딱히 없었다. 특히나 잠이 안 오는 새벽시간, 침대 위에서 두 눈을 꾹꾹 눌러가며 봤던 드라마들은 나를 쉽게 잠들지 못하게 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진짜 생각의 늪으로 빠지는 순간이었다.
'드까알'이라는 말이 있다.
'드라마는 까 봐야 안다'의 줄임말인데, 보통 방영 전에는 그다지 기대를 모으지 않았지만, 판을 열어보니 웰메이드, 고퀄리티로 시청자의 인정을 받은 드라마에 쓰는 말이다.
일단 드라마는 배우 라인업이 화려해야 주목을 받는다. 거기에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면 방영 전이라도 SNS에서 소문을 타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기대는 양날의 검이다. 막상 펼쳐보니 별로인 드라마들도 넘쳐나는 게 현실이다. 시청자들의 보는 눈이 높아진 만큼 무작정 인기 많은 배우가 나온다고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닌 현실이 작가를 꿈꾸는 사람으로서는 기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2021년 말, '드까알'의 주인공이었던 드라마가 있다. 5.7%의 시청률로 시작해 17.4%로 화려하게 막을 내린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다.
(MBC/극본 정해리 연출 정지인, 송연화/이세영, 이준호 주연)
<옷소매 붉은 끝동>의 경쟁작은 SBS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이다. 송혜교라는 스타 중의 스타의 복귀작이었고,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로 연하남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장기용이 남자 주인공인 드라마였기에, 많은 기대를 모았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뻔해 보이는 사극 로맨스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완벽하게 떼낸 남자 주인공과 연기 경력 25년이 넘는 베테랑 중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여자 주인공의 케미가 빛나며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남녀 간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우리는 사랑을 잃었을 때 슬프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진부한 스토리지만 언제나 마음을 찢어 놓는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사실 <옷소매 붉은 끝동>의 두 사람은 좀 애매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기엔 이산(이준호 분)과 덕임(이세영 분)은 엄연한 부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언제나 함께일 수만은 없다. 산은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한 나라의 왕이고, 덕임은 자신의 인생을 모두 잃어버리고 온종일 궁에 갇혀 남편을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후궁이기에.
정조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모든 작품들이 그렇듯, 이 드라마도 정조의 업적 뒤에 가려진 외로운 인간 이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외로움을 채워주는 건 오직 덕임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산은 그녀의 외로움을 채워주지 못했다. 덕임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함께 어울리던 동무들을 찾았고, 산은 그런 덕임의 손을 잡고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억지로 너를 내 옆에 둔 잘못에 대한 뒤늦은 사과였다.
두 사람은 분명 서로를 사랑했고,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 행복했지만, 늘 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신분과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마음은 시대극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슬픔일지도 모른다.
시대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픔과 슬픔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드라마가 있다. 아침마다 내 눈을 퉁퉁 붓게 만들었던, 드라마 <오월의 청춘>이다.
(KBS/극본 이강 연출 송민엽/이도현, 고민시, 이상이, 금새록 주연)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우리가 이 작품이 얼마나 슬플지 예상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아주 친절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5.18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가 슬프지 않을 리 없다는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고, 사랑하는 두 남녀가 쉽지 않은 사랑을 할 것이라는 걸 1회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잘 만들어진 작품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오월의 청춘>은 흔히 말하는 톱스타가 출연하지는 않았다. 라이징 스타이긴 하지만 아직 어린 배우들이 주인공이었는데 덕분에 그 시절 청춘의 모습이 더 잘 표현되었는지도 모른다.
희태(이도현 분)는 명희(고민시 분)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녀와 헤어진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대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조금 특이하다. 그동안 봐왔던 멜로드라마대로라면, 남자 주인공이 고뇌에 휩싸이다가 여자 주인공에게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싼다든지, 차를 돌린다든지, 숨이 차게 뛰어가는 장면이 나올 법도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 언제 돌아가나, 하는 순간에 별안간 갑자기 툭, 명희의 앞에 희태가 나타난다. 아버지의 서재에 갇혀 있다 빠져나올 때도 그렇다. 묶여 있던 팔다리가 풀리고, 풀어준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명희에게 달려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냥 갑자기 일하고 있던 명희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난다.
명희가 죽을 때도 마찬가지다. 명희가 군인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그녀와 다시 만나기로 한 희태의 아련한 모습이 그려지면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이 클로즈업될 것 같지만, 당황스럽게도 총소리만 한 번 들리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 뒤, 그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바로 구덩이에 툭하고 버려진다.
이렇게 클리셰적인 장면을 과감하게 잘라내 버리면서 시청자들이 간접적으로 겪을 잔인한 희생에 대한 고통을 줄일 수 있다. 그렇지만, 클리셰가 없다고 해서 슬픔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굳이 울고불고 발악하며 헤어지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희태를 측은하게 보며 익숙하게 명희의 얼굴이 붙은 전단지를 받아 두는 그 시절 식당 주인의 모습에서 억울한 희생이 얼마나 일상적인 일이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명희가 없는 채로 늙어버린 현재의 희태가 명희를 찾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다시 젊은 희태로 전환되는 장면에서 그 시절 그 상태 그대로 단 하루도 제대로 나이 들지 못한 채 명희를 그리워했다는 것을 시청자들도 알 수 있다.
슬픔을 어떻게 진부하지 않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작가들에게 굉장한 난제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백 퍼센트의 확률로 슬프다. 단순히 헤어지고 떨어져 산다는 것을 뛰어넘어, 내가 사는 곳 그 어디에도 그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 다시는 만날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보다 슬픈 게 또 있을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죽는 것만큼 뻔한 것도 없다. 등장인물의 각성 요인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보다 더 간단한 장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사건을 진행시키기 위해 캐릭터를 희생시키는 의미 없는 죽음을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고, 이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라는 건 확실하다.
'신파'라는 말이 언제부터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다. 그래, 너 좀 울어라, 하고 대놓고 눈물을 뽑는 장면들이 나오는 작품에, 우리는 뻔한 신파라는 말을 쓴다. 그냥 새드엔딩이 아니라 같은 역사적 사실이라도, 같은 죽음이라도 고통은 줄이고 슬픔은 극대화할 수 있는, 뻔하지 않은 작품이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순간이 영원이 되는 것처럼.
(사진 출처는 해당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