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유럽 돌바닥에서의 기록 16

열여섯 번째 기록- 이번 여정에서 난,

by 릴리코이

솔직히 실감이 안 난다. 여기 있던 그 모든 시간들이 한 일주일 같았다. 모조리 행복하지도 않았고, 모조리 불행하지도 않았다. 다만 포르투갈에서 더 '행복함' 이란 것을 느낀 것은 맞다. 나에게 행복은, 여유에서 나오는 듯하다. 스페인에서는 여유가 없었다.

사람들도, 나도.

스페인에서는 내가 펜을 들고 싶은 환경이 아니었다. 도시에, 포르투갈보다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긴 여행이 지쳐서일까, 아니. 아니다. 나는 여유롭고, 따사롭고, 옛정취가 느껴지는, 자연이 푸르른 곳을 좋아한다. 이번 여정에서 나는, 나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또 나를 사랑하고 예뻐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의 마지막 에어비앤비. 2층 전체가 내 공간이었던, 호텔 같았던.

방금 마지막으로 묵은 에어비앤비 후기를 썼다. 에어비앤비에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읽다 보면 왜 그렇게 한국인들이 오타를 섞어서 썼나 싶었는데.. 이제는 이유를 알겠다. (번역기로 돌려지지 않아 호스트가 읽지 않았으면 하는 맘에서였다.) 이곳은 호텔 같은 방에 화장실도 개인이어서 편했지만, 내가 포르투갈, 스페인에서 묶었던 4개의 에어비앤비 중 제일 좋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집의 시설보다, 주인과의 소통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불쌍한 시츄. 주인이 키우는 강아지. 너무나 방치되어있어 매일 문 앞에서 빛도 못 보고 앉아있는 그 강아지를 보면, 주인의 팍팍한 인심을 볼 수 있다.

내 방으로 올라가던 계단에서 다시 뒤돌고 찍은 사진뿐이구나.. 가엾다.

나는 이제껏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용감하지만,

생각보다 겁이 많다.

나는 생각보다 감성적이지 않고,

생각보다 감성적이다.

그래, 사람은 뭐라고 딱 단정 지을 수 없다. 모든 면을 다 갖고 있는 거야.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껏 난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런 내가 바보 같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몬세라트 산에서 나는 내가, 날아다니는 꽃가루 같은 존재라는 것을 눈으로 봐버렸는걸. 내가 이 산에서 떨어져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아. 나는 그렇게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세상살이에 목숨을 걸었을까.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냥 살고 싶다. 그냥 그때그때 즐기고, 느끼고, 맛보며, 그냥 살란다. 분명한 목표는 필요하다. 내 삶의 목표. 여행 전과 후, 같다.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거야!


다만 여행 전에 내게 가치 있는 삶이란, '남'에게 가치 있는 삶을 나눠주는 것뿐이었다. 그저 남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은 없다. 하지만 '나'를 챙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 스스로 가치를 느끼며 살고 싶은 마음.

어떠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한 게 아니라, 그냥 그 순간을 살아내며 미소가 내 얼굴에 번질 때마다 눈물이 났다. 삶을 살아오는 동안, 순간순간을 느끼지 못하며 돌봄 받지 못한 나 자신이 가엾어서 흐르는 눈물이리라. 신트라, 몬세라트. 나를 눈물 나게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곳. 꼭 남편과 다시 와야지.

호카곶 언덕에 무작정 앉아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글을 쓰던 그때

캐리어를 끌고 렌페타는 곳 앞에 있는 카페에 앉았다. 외국 여자들은 얼굴형이 참 예쁘다. 앞머리를 다 넘겨 위로 땅땅하게 높이 묶었을 때, 지들이 예쁜 걸 알고 그렇게들 묶겠지. 너무너무 예쁘구나.

엊그제 까탈레나 광장에서 어떤 까불거리던 남자가 무리에 있다가 달랑달랑 나를 쫒아와서 어디 가냐 어디서 왔냐 등등 물어봐서 괜히 퉁명스럽게 why~?-_- 했더니 뭐라 뭐라 블라블라 말을 하는데, 그 순간 그 말들을 바로 알아듣는 나를 느끼고 기분이 좋았다. '오, 나 영어 많이 늘었는데' 그 짧은 순간 기분이 참 좋더라. 나는 내일 떠날 거야! 하니, 그 아인 놀라며, 너 여기사는 사람 아니었어? 하기에 응, 만나서 반가웠어. 악수를 하고 헤어진다. 나는 아마도 눈치로, 뉘앙스로 알아듣는 것 같다. 스페인, 포르투갈에 있었지만 몇 주 내내 영어를 썼기에 생각도 영어로, 감탄사도 영어로 하는 나를 발견.

내 테이블 앞에, 서양 할머니들 패션.. 위아래 빈 공간 없이 알록달록 한 패턴 패션이 우리 할머니를 떠오르게 한다. 세상 할머니들은 다 똑같은 취향인가 봐. 보고 싶다. 풍자씨.

되게 맛있게 생겨서 되게 맛없던 빵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제니와의 아침식사, 몬세라트, 쇼핑, 사그라다 파밀리아, 레몬맥주 클라라와 타파스.. 어라 꽤 많네? 별다르게 좋았던 기억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좋았네, 바르셀로나. 이제 곧 공항에 가면, 가져왔던 해리포터 책을 다 읽을 거다. 배는 안고플 듯. 엉덩이가 아플 즈음 일어나야지. 이번 여정에서 또 얻은 깨달음. 다음에는 무조건... 캐리어로 발목 잡히는 저녁 비행기를 잡느니 새벽 비행기를 잡으리..

공항으로 가는 렌페를 탔는데, 놓친 줄 알았지만 럭키 하게 잘 탑승! 내 옆엔 커다란 캐리어 2개를 가지고 온 백인 중년 여성이 숨을 고른다. 무진장. 그녀에게 물을 건넬까 싶다. 나이를 가늠할 때 난 사람의 손을 본다. 손에 있는 나이테를 보고 알 수 있다.

옆칸부터 차근차근 연주를 하던 트럼펫 연주자가 우리 칸에도 왔다. 내게 있는 현금을 다 털어줘야지. 오래간만에 듣는 거리 음악이라 기분이 좋다. 아, 음악 듣고 싶다. 나는 음악을 참 좋아한다. 정말이지, 좋아 죽겠다. 음악을 사랑하는 것 같다. 음악이 없다면, 우울하고 심심하다. 바르셀로나가 심심하고 재미없던 이유, 리스본이 즐겁고 행복했던 이유는 아마 '음악'때문인 듯싶다.

그래도 바르셀로나에서 참 좋았던 시간, 난생처음 본 오페라 버스킹

자, 정말 내 인생 가장 복잡한 시간이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던 최악의 텍스리펀을 이겨내었다.. 2시간 걸렸나, 큰 것도 아니고 자잘한걸 여러 개 사서 혼자 볼펜 붙잡고 한참을 쭈그리.. 마치 돌려주고 싶지 않으니 귀찮게 만들어야지! 하고 작정한 영수증.. 영수증 전쟁... 너무 고생한 나를 위해, 그래도 꼭 내 꺼 잃어버리지 말고 통장에 텍스리펀... 넣어주세요... 텍스리펀..... 꼭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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