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유럽 돌바닥에서의 기록 15

열다섯 번째 기록- 헤매기만 했던 바르셀로나, 이별준비

by 릴리코이

6시에 눈이 떴다. 바르셀로나에서 정말로 오래된 맛있는 페스츄리가 있다고 하여 아침부터 찾아가 빵을 맛보았다. 호프만 베이커리. 정말 많은 종류의 크루아상 중 내 픽은 마스카포네 페스츄리. 마스카포네 치즈가 부드럽게 안을 채우고, 바깥은 얇고 바삭한 크루아상이 겹겹이.

하나 더 사 먹을걸...

그 근처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을 찾아 골목골목을 걸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알차게 꾸며놓았더라. 한국어 가이드까지 들으면서 관람했건만.. 설명이 너무 전문적이라 미술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겐 들으나 마나 했지만... 열심히 아는 척 들어본다. 바보같이 '내가 찾아온 곳에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니! 완전 난 완전 행운아야.' 하며 세상에 피카소 미술관이 여기 하나 있는 줄 알았다. 찾아보니 프랑스에 피카소 미술관이 있고, 내가 알고 있던 피카소의 주요 작품은 여기 없었다. 바보 나 같으니..

이 주변 해변에 유명한 쇼핑몰이 있대서 꾸역꾸역 걸어갔다가, 또 질질 다리를 끌고 구엘공원으로..

골목골목 세월의 흔적이 아름답다

솔직히 말할까? 울고 싶다. 너무 힘들다. 길 찾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일정이 끝날 것만 같다. 몇 날 며칠을 있어도 이곳은 익숙하지 않다. 다리가 아프고, 지치고, 배고프고, 힘들다. 어디를 가든 꼭 한 번에 찾아가는 일이 없고 뱅뱅 돌다가 도착한다. 저녁엔 야경을 보러 갈 생각이었지만 야경이고 뭐고 빨리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사서 집으로 가고 싶다. 울고 싶다. 가슴이 울끈 울끈하다. 왜냐고?

너무 화가 나서!!!

몬세라트에서는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뻔했는데 오늘은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성질을 가라앉히려 거리음악가의 음악을 들으러 갔더니, 그는 내 맘도 모르고 연주를 멈추고 집 갈 준비를 하고..

하늘엔 뿌연 구름에, 휴...

이만하면 됐다.

이만하면 집 가도 되겠다

이만하면, 집 생활에 감사하며 잘 살 수 있겠다.

집 가고 싶다.

집에 갈래.

날씨 요정은 나를 미워하나 봐

왜 유럽 여자들은 다리가 죄다 곧고 예쁠까? 모든 게 다 맘에 안 들고 화가 난다. 열심히 화를 내다보니 어느새 4시 반이 되어 그놈의 구엘공원에 들어왔다. (따로 표를 예매하고 그 시간을 기다렸다 줄을 서고 들어와야 하는)

그래, 별거 없다. 다만 초록색 앵무새가 있다. 여긴 그냥 길거리에 장난감 같은 새들이 넘쳐나는구나.

공원의 낭만을 느끼기엔, 너무 춥고 다리가 아프다. 뭘 안 먹어서 그런가. 무기력하다. 도대체 뭘 사진으로 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뭘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다. Parkguell.....


하지만 그 와중에 하늘색이 무슨 명화에 나오는 하늘색 같다. 붓으로 부드럽게 뭉게 놓은 것 같다.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는데 내게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그러니 불평 말고 느끼라고!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제발 그만하고 즐기라고.

붓으로 그려놓은 듯한 하늘 그리고 구름

석양을 보고 싶다. 그냥 이 자리에서 앉아서 보고 싶다. 이제 내일이면 모든 여행이 끝난다. 내 여정의 마지막 날. 내일은 천천히 일어나서 11시에 로컬푸드 맛집이라는 daniel cafe를 가고, 글로리 에스 쇼핑 마무리한 후, 가고 싶은 곳엘 마지막으로 어디든 갈 거다. 꼭 봐야 하는 야경 같은 거 다 필요 없어..

이 곳에 있으니 (사람들 정말 많은, 사진 찍는 그런 곳 말고 공원의 숨겨진 심장부) 정말 숲 속에 있는 듯하다. 자연 그대로 잘 보존해 놓았다. 예쁜 꽃도 많다. 빨간 꽃, 하늘색 꽃, 연보라 꽃, 앵무새도, 종달새도. 이곳은 내가 이제껏 갔던 그 어떤 공원보다도 잘 보존되어 있는 것 같다. 풀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다 싱그럽고 시원하구나.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글로리 에스 쇼핑몰에 마지막으로 들렀다. 음, 그래! 제일 신났다. 옷을 마구 사재 꼈다. 한국이었음 비싸서 안 샀을 것들을 마구마구 구매. 늘어가는 쇼핑백에 캐리어가 이젠 정말 더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 걱정. 원래 오늘 저녁엔 꼭 봐야 한다는 야경 장소 벙커에 가보려 했지만, 접어둔다. 굳이 야경? 그것도 혼자?

여행의 막바지. 이만하면 되었다. 이만하면 한국가도 여한이 없다. 얼른 가고 싶지도, 더 남고 싶지도 않다. 내일이면 적당하니 좋다.


한국에 가는 당일엔 에어비앤비 체크아웃을 10시에 한 후 캐리어를 끌고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일단 공항버스 정류장이 어딘지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맛있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보아야지. 오늘까지 교통권 T10 중 다섯 번을 벌써 다 썼다. 내일은 남은 네 번 쓰고, 마지막 날 한번 남은 것을 쓰면 바르셀로나..이제 우리 안녕이야,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날 좀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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