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유럽 돌바닥에서의 기록 14

열네 번째 기록- 시체스 해변에서 나랑 놀기

by 릴리코이

걸어오는 길에서 내게 무작정 니하오 하던 외국인 꼬마에게 씽긋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미소와 춥파춥스를 건넸다. 즐겁다. 모든 것이 참으로 즐겁다.

P20181111_235211045_C493B1DE-F62E-405C-90A4-53325EE74271.jpg 해변 마을의 골목길

시체스 해변 골목골목을 걷다가 다시 바다로 와 그 앞에 털썩 앉았다. 하늘과 맞닿는 바다 표면이 유난히도 날카롭게 느껴질 만큼 일직선이다. 파도치는 소리. 물소리가 좋다. 소리가 무진장 큰 것 같은데 전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어의 지느러미 색은 햇살이 비친 바다 표면의 반짝거림 색일까? 눈이 부시게 반짝이고, 매끈하며, 애매랄드 빛깔이다. 리스본 호카곶에서 봤던 바다, 파도랑은 다른 느낌이다. 호카곶 바다는 강인하고 웅장한 남자 바다, 여긴 부드럽지만 강인하고 아름다운 여자 바다. 여기 하늘색도 물먹은 아니 우유 먹은 하늘색이구나. 나도 저 끝 너머로 가보고 싶다. 탐험가처럼. 저어기 지평선을 넘고 넘어 황량한 바다 한가운데에 존재해보고 싶다.

하늘에 구름이 별 같다. 한 번도 그리 느껴본 적 없는데. 더 부드럽고 커다란 별 같아. 이상하게 바다 위에 떠있는 구름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파도의 움직임이 워낙 역동적이어서 구름이 그에 묻혀 보이지 않는 것, 아니 구름의 배려인가봐. '바다 너가 더 빛나 보였음 해. 나는 여기 멈춰있을게.'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웃음을 주는 사람이었을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었을까? 나는 그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고, 너무 조심스러웠고, 재미있어도 이상하게 자존심 탓에 잘 웃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난 웃음이 헤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하곤 했다.

바다 냄새가 시원해, 눈을 감았더니 함께 바다를 갔던 전 남자 친구 생각이 난다. 별로 그렇게 대단히 사랑하지도 않았으면서, 되게 사랑한 척하네. 그저 난 나를 좋아해 주는 남자 친구에게 받는 예쁨이, 손길이 좋았던 것 같다. '나,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는구나.'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존재구나.' 난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몰랐기에 남이 주는 사랑을 먹고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른 것 같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응원하며, 나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잘 살아갈 수 있다.

나는 매력적이고, 예쁘고, 차분하며, 믿음직스러운, 사랑스러운 사람이니까.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난다.

나는 자연이 참 좋다. 자연 이대로가 참 좋다.


아까 만난 한국 친구들과 과연 오늘 저녁, 밥을 함께 먹게 될까? 사실 나는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 아무리 생각해도 난 완전 아웃사이더다. 남들 다 하는 걸 안 하고, 남들 다 가는 길을 안 가고.. 그치만 나는 이런 내가 좋다. 특별하잖아! 뭔가 비범하다. 난 뭐라도 될 것 같아!

언제부터였을까. 혼자가 편해지고 말이 잘 없어진 게. 초등학생? 중학생?

생각해보면 이게 원래 나였을지도 몰라. 너무나도 편안하잖아.


뺨에 닿는 바닷바람이 점점 차가워진다. 오랜만에 정수리가 해를 만나서 그런지 박하사탕을 정수리에 바른 것처럼 화- 하다. (지금은 바람은 맞고 있으니까) 이마저도 좋다. 들쑥날쑥 대머리 아저씨에게 몇 가닥 남은 머리카락 같은 야자수 나무도, 흰구름 밑에 회색으로 짙게 드리운 구름도 다 감사하다. 감사합니다. 그라시아스.

P20181112_011559562_F32E6B42-27AD-4FD7-A329-FE756A698AD8.jpg 바다가 잠에 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험난한 집 오는 길이었다. 짝퉁 올라 카드를 버리고, 바르셀로나 교통카드 T10을 새로 샀는데, 이놈의 길치, 자꾸 잘못 타고 다시 갈아타고... 이걸로 한국에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하다던 츄레리아는 그냥, 심심한 초코랑 심심한 츄러스. 우리나라 아츄가 더 맛있다. 내일은 진짜 맛있는 점심을 사 먹어야지! 스테이크나 먹물 빠에야를 먹을 거다. 아까 만난 한국인 언니와 함께 엊그제 들렀던 레이알 광장에 들렀는데, 같은 장소인데도 완전히 다른 장소처럼 느껴졌다.

함께의 소중함, 감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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