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해바라기와 로또 복권

책을 배우다 2 - <빈센트 나의 빈센트>

by 툰자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여주인공 혜원은 서울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내려온다. 엄마가 떠난 집에서 혼자 지내는 혜원에게 친구 재하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이 쪼끄만 게 무슨 위로가 된다구?”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100년 가까이 살아야 하는 사람은 온기가 있든 없든, 생명이 있든 없든 위로가 되는 무언가를 곁에 두어야 한다. 고양이나 강아지도 좋고, 단 한 장뿐인 사진이나 노래 한 곡이 될 수도 있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를 쓴 정여울 작가는 빈센트의 그림이 힘겨운 순간마다 위로의 손길이었다고 했다. 빈센트의 삶이 있었던 흔적을 찾아 10여 년을 여행한 것은 ‘토포필리아’ 때문이라고 말했다. 토포스(topos:장소)와 필리아(philia:사랑)의 합성어로 사랑하는 사람과 관련된 장소에 대한 애정을 말한다. 빈센트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도 작가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세 살 아래 사촌 여동생은 미술을 전공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내가 고모네 집에서 살 때 한 방을 쓴 동생은 나를 친언니처럼 따랐다. 그때 나는 그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2년 가까이 함께 지냈지만 그림에 대해 얘기를 해 본 적은 없었다.

사촌 동생도, 나도 부모님 도움 없이 결혼해서 신혼살림은 비슷했다. 그런데 몇 년 뒤 동생은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했다며 집들이에 초대했다. 새로 지은 아파트는 외관도 독특하고 멋있었지만, 동생네 집에 들어섰을 때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집이 아니라 갤러리였다.

드레스를 입고 앉아야 할 것 같은 보라색 벨벳 소파가 처음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던 것은 동생의 해바라기 그림이었다. 하얀 액자 안의 해바라기는 밝게 웃는 얼굴, 집안 곳곳을 환하게 비추는 태양이었다. 초대받은 모든 사람들이 동생의 그림을 탐냈다. 나도 동생을 추켜세우며 찌질한 욕망을 드러냈다.


“나중에 언니가 집 사면 하나 그려 줘라.”

“언니, 집에 해바라기 그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긴대.”


빈센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병에 꽂아 놓은 해바라기는 금방 시들기 때문에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정신없이 그려야 한다고 했다. 모델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기에 그는 해바라기를, 자연을 그려야 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자신의 그림이 테오에게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그림에 손톱만 한 관심도 없었던 나는 동생의 말 때문에 해바라기 그림을 더 갖고 싶었다. 내 눈에 빈센트의 해바라기는 가난과 고통 속에서 그린 '슬픔'이지만 동생의 빛나는 해바라기는 '기쁨과 희망'이었다.


몇 년 뒤 내 소유의 집이 생겼지만 욕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유명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화가의 그림을 손에 넣기란 쉽지 않았다. 사실 내가 정말 원한 것은 빈센트의 해바라기가 아니라 사촌동생의 해바라기였다.

몇 년 전 마트에 갔다가 꽃집 근처를 지나가는데 내 키만한 해바라기가 나를 바라보았다. 활짝 핀 해바라기는 조화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끌었다. 결국 나는 해바라기를 안고 집으로 와서 항아리에 꽂았다. 해바라기 위에는 가족사진 액자를 걸었다. 24시간 내내 집 안에 떠 있는 태양이 내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시커먼 불안을 다독여주길 바랐다.

나에게 절실했던 것은 ‘위안’이었다. 서울을 떠나와 대전으로 군산으로 이사 다니면서 불안은 점점 몸집을 키웠다. 새로 시작한 사업은 힘들었고, 가까운 곳에는 마음 붙일 친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베란다에 꽃화분도 많은데 굳이 조화를 사다가 거실을 꾸미던 친정 엄마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사는 집에 영원히 시들지 않고, 죽지도 않는 친구를 곁에 두고 싶었나 보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남편의 지갑에는 로또 복권 한두 장이 들어 있다. 좋은 꿈을 꾸었다고 생각한 날이나, 복권을 판매하는 마트에서 뭔가 사고 잔돈이 생길 때 한 장씩 산다. 그리고 지갑에 부적처럼 넣고 다니다가 휴지처럼 보일 지경이 되면 번호를 확인한다.

“또 샀어?”

“꿈이 좋아서.

“헛된 꿈 버리고 차라리 그 돈으로 과일이나 빵을 사.”

빈센트는 <복권 판매소>라는 그림을 그리고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복권을 사는 사람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는데, 스케치하고 나니 그들의 입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한 것 같다고.


대부분 남편의 복권은 꽝이었지만 확인하기 전까지는 든든했을지 모른다. 큰돈을 걸고 하는 주식도, 도박도 아닌데, 행운을 거머쥔 누군가를 위해 기부했다고 치자. 5천 원짜리 부적으로 그가 한두 달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이제 잔소리는 그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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