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이 흘러 흘러
책을 배우다 3 - 최문희의 소설 [난설헌]을 읽고
눈이 내린 고요한 아침에 [난설헌]을 만났다. 아름답고 총명한 어린 초희를 만났다. 열다섯 나이에 혼례를 앞둔 초희는 모든 게 불안하고 긴장되지만 아녀자가 지켜야 할 생의 덕목을 묵묵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성이 지배하는 유교 국가, 조선에서 여성들은 신분이 높건 낮건 인간의 본성을 억제하며 아내로, 어미로, 며느리로 살아야 했다. 이름도 없이 평생을 살아가는 여자들이 많았다.
난설헌은 딸로 태어났지만 ‘초희’라는 이름도 얻었고, 시집가기 전까지는 그대로 ‘초희’였다. 부모님은 지혜로운 딸을 사랑했고, 아들과 차별 없이 글을 가르쳤다. 초희의 재능을 알아본 오빠는 친구 이달에게 소개해 시를 배우게 했다.
초희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였다. 금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여름 푸른 잔디 위를, 찬 겨울 하얀 눈 위를 맨발로 느껴보는 자연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누릴 수 있는 자유공간은 집안과 마당 넓이의 하늘이 전부였다.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는 남자들을 부러워했지만 뛰쳐나갈 수는 없었다. 현실의 벽은 어린 초희가 뛰어넘기엔 너무 높았다.
혼인 뒤의 초희는 더 이상 ‘초희’로서 살 수 없었다. 사방에 금기라는 울타리가 쳐진 시댁 안에서 사랑이나 예술에 대한 욕망은커녕 슬픔이나 아픔 같은 감정표현도 어려웠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타고 있던 예술의 불씨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지아비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일삼는 김성립과, 똑똑한 며느리를 질투하고 괴롭히는 시어머니. 그 어둡고 서늘한 그늘에서 초희는 시들어 갔다. 집안조차도 자유공간이 아니라 끔찍한 감옥이었다.
서서히 말라가는 그녀를 살려낸 것은 뱃속의 생명이었다. 비록 부부간의 사랑으로 잉태된 것은 아니었으나,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모진 삶을 견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납고 무식한 시어머니는 그 모정도 끊어놓고 철저하게 그녀를 외롭게 했다. 시를 쓰지 않았더라면 숨조차 쉴 수 없었을 것이다. 시린 외로움을, 살을 에는 아픔을 눈물이 아니라 먹물로 흐르게 했다. 그렇게라도 흐르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가슴은 딱딱하게 얼어붙었을 것이다.
불행은 왜 겹쳐 오는가?
든든하고 다정했던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정치 혼란 속에서 객사하고, 두 아이들마저 제대로 품어보지도 못한 채 병으로 잃었다. 밖으로 흐르지 못한 눈물이 안으로 안으로만 흘러 흘러 가슴속 불씨를 꺼트렸다. 더 이상 시를 지을 의지도, 붓을 잡을 힘도 모두 잃었다. 살아서 모든 흐르는 것을 동경하고, 자신도 흐르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을 지녔던 여인. 건천동 후원 연못가에 고여 있다가 스물일곱 아름다운 나이에 봄비와 함께 머나먼 곳으로 흘러갔다.
사실 감옥 같은 시댁에서도 그녀는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흐르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고인 연못의 물이 썩지 않는다는 건 흐르고 있다는 증거다. 비가 내리고 눈이 올 때마다 조금씩 천천히 땅속으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남성들처럼 들을 가로질러 힘차게 흐르지는 못했지만, 난설헌은 연못처럼 깊이깊이 소리 없이 흘렀던 것이다. 그녀가 남겨놓은 아름다운 노래들이 사는 동안 치열하게 흘렀던 흔적이다.
감 우 (感 遇)
허난설헌(1563 ~1589)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기롭더니,
가을바람 잎새에 한 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몇 백 년 전에 초희는 떠났지만, 난설헌은 지금도 시(詩)로 흐르고 있다. 향기로운 난초처럼 살다가 가부장제도의 규제와 억압으로 시들어간 난설헌. 그녀가 노래했듯이 향기만은 죽지 않고 흘러 흘러 우리에게 스며들었다. 앞선 고려시대보다도 여성에게 더 엄격했던 시대에 태어나 제 뜻을 다 펼칠 수 없어 원통했던 그녀의 혼이 수 백 년을 날아서 최문희에게 흘러든 게 아닐까?
16세기 천재 시인, 난설헌이 21세기에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는 초희가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림처럼 시처럼 아름다운 이 글을 쓰는 동안 최문희는 난설헌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내가 초희였던 것처럼.
초희처럼 맨발로 꾹꾹 하얀 눈을 밟아보고 싶다. 그녀의 혼이 흘러 흘러 들어올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