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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Apr 09. 2024

수분충전 완료!

실천23. 메마른 마음 수시로 적셔주기

피곤에 압도되어 눈꺼풀은 자꾸만 감기는데 괜히 잠들기 싫어 뒤척이던 어느 밤.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스낵 VS셰프"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제목 그대로, 널리 사랑받는 유명한 스낵을 여러 명의 요리사가 재현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본 회차의 주제는'프링글스'였고 주어진 시간 내에 프링글스의 모양과 맛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감자와 밀가루를 섞어 반죽하고 곡면의 모양을 살려 튀기느라 비지땀을 흘리는 요리사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중 한 요리사는 점성이 부족한 반죽 때문에 모양을 잡지 못해 특히 애를 먹었는데 지난 한 달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자꾸만 응원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일기처럼 끄적인 글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주제와 흐름을 요리조리 굴려본 후에 쓰게 된다. 쌀알 같은 순간의 생각을 붙잡아 이런 느낌, 저런 경험을 덧붙여 며칠 동안 치대다 보면 '아, 이제 써볼까'하는 순간이 온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의 '바스러지는 반죽'을 보고 난데없이 글 쓰는 내 모습을 떠올린 이유는, 요즘 내 머릿속에 글로 옮길만한 글감이 잘 뭉치지 않고 저 반죽처럼  흩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연수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 학기를 준비하던 2월에 이어, 임용 후 처음 맡는 학년의 수업준비/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의 업무/학교 부적응 학생 두 명이 번갈아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는 담임업무에 적응하며 보낸 3월에는 어떤 생각을 '반죽으로 굴릴' 틈이 거의 없었다. 마음 한 켠에서는 '이런 일들이 다 글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글쓰기는 근육과 같아 꾸준히 써야 한다'는 브런치의 독촉 알람을 거나 글쓰기 모임 멤버들이 올리는 글을 읽으면서도 내 안에 가루처럼 흩날리는 생각들을 끌어모아 무언가로 빚어내지 못했다.


복직 전 vs. 복직 후 독서상황;;;


6개월의 연수가 내 수업에 작은 변화라도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에 대부분의 쉬는 시간을 수업 준비에 할애했다. 밤샘도 모자라 3교시 수업에 쓸 자료를 2교시까지 수정하고 부랴부랴 인쇄해서 교실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내 마음을 위한 책이나 글쓰기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책 읽는 여유, 하늘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잠깐의 틈이 내 마음에 스며야 콩알만 한 반죽이라도 뭉칠 힘이 생긴다고 말하면 내 게으름이나 체력부족을 지나치게 포장한 것이 되려나.


내 책상 한편에는 보는 사람마다 '하루에 이 물을 다 마시는 거예요?'라고 묻게 만드는 2L 용량의 거대 물병이 있다. 하루에 그 정도 물은 마셔야 피부도 좋아지고, 폭식이나 과식도 방지하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는 말에 냉큼 구입해서 하루 1.5L 정도는 꾸준히 할당량을 채우는 중이다.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해서 귀찮고, 피부가 좋아졌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물병은 계속 그 자리에 있다. 건조한 사무실에서 뻑뻑한 눈으로 화면을 보며 오래 앉아있어야 하기에, 또는 부은 다리로 칠판 앞에 서서 갈라진 목소리를 높여야 하기에 꾸준히 내 몸에 물을 주는 일이라도 놓지 않으려고 한다.


몸에서 느껴지는 물리적 수분감이 마음의 여유로도 이어지면 좋으련만. 두 달 가까이 브런치 앱을 못 본 척하다가 '글쓰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도 '3월은 너무 바빠서 나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고 그래서 마음이 메말라 버렸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며 돌아보니, '책 읽을 틈도 없다'며 불평 속에 이어나갔던 수업 준비 시간 역시 내 마음에 물을 주는 과정이었다. 열심히 준비해 간 수업활동에 아이들이 몰두해서 참여할 때, 늘 재미있는 활동이 많아서 5교시에도 졸리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면 피곤으로 퍼석해진 눈가에 웃음으로 주름이 지는 만큼 마음은 촉촉해졌다. 쉬는 시간마다 '학교가 너무 괴롭고 힘들다'며 나를 찾아오던 아이가 '오늘은 3교시까지 있어볼게요.', '학교 안 나오면 선생님이 속상할까 봐 나와요'했을 때는 눈에도 마음에도 물기가 스미고 만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새로운 다짐과 긴장 속에 적응하느라 바쁜 3월이 지났다. 따스한 햇살 아래 망졸망 피어난 벚꽃무리와 함께 4월을 맞이했다. 오늘은 교정 한편 작은 벚꽃나무 아래에 우리 반 아이들을 세워두고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너희가 너무 예뻐서 꽃이 기죽는다'는 내 닭살멘트에 누군가는 으억! 얼음이 되고 몇몇 아이들은 까르르 웃어준다. 꽃도 너희도 참 곱다. 내 입술을 바싹바싹 마르게 하는 것도, 입꼬리와 광대를 기분 좋게 끌어올려 주는 것도 너희들이다. 오늘치 수분충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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