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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an 07. 2019

우리 부모님이 널 보자고 하셨어

나의 남자 친구에게 : 나는 사실 낯선 사람이 싫어


 20대 초반에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 서로 알아간 지 오래됐을 무렵, 내 남자 친구는 전화로 자신의 부모님을 한번 보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는 어른들이 어려웠고 그의 부모님은 더 어려웠다. 지금 나는 너를 알아가기도 벅찬데 또 다른 사람을 알아가야 한다니, 힘든 부탁이었다.


 "나 어른들 보는 건 좀 불편해."

 "괜찮아, 우리 부모님들 전부 착하셔."

 

 아니, 착한 게 문제가 아니야. 우리 옆집 아주머니도 착하셔. 근데 만나면 엄청 불편하다고! 최대한 기분이 상하지 않게 돌려 돌려 거절하는 모습에 알았다며 한풀 꺾인 널 보자 약간은 안심이 됐다. '당분간은 다시 권유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내 짐작을 비웃듯이 남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너 저녁에 혹시 바빠?"

 "아니, 오늘은 안 바빠."

 "나 부모님한테 오늘 저녁에 너 올 수 있다고 말했어. 괜찮지?"


  갑자기 들어오는 어이없는 태클에 사고가 멈췄다. '얘 미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안 나가면 혹시 버릇없는 애처럼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옷장에서 제일 예의 있어 보이는 옷이 뭘까를 고민했다. 불편한 자리를 억지로 만든 그가 보기 싫어 약속시간까지 연락하지 않았다. 연락이 없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그 애는 '정말 나오기 싫으면 안 나와도 돼.'라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번복했다. 물론 그게 더 어이가 없었다. '(이미 네가 온다고 말한 상황이지만) 정말 나오기 싫으면 안 나와도 돼.'라니 왜 이렇게 생각을 대충대충 하는 걸까?


 그날 남자 친구의 부모님과 식사하는 두 시간 동안 우리 테이블은 화목해 보였다. 다만 밥을 다 먹고 나오면서 나는 소화제를 마셔야 했고, 종일 입에 경련이라도 일어난 사람처럼 웃어 팔자주름이 선명히 자리 잡았다. 그 후로 그 자리가 마지막이었나. 아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냐며 또 이런 식의 만남을 또 주선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두 번도 다 똑같이 어려웠다. 그렇게 불편한 자리에서 두 번이나 체하고 나서야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널 사랑하지만, 나는 나도 아끼고 사랑한다. 그래서 나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과는 계속 만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소화제 두 번에 첫 연애를 끝냈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인간관계는 내가 들어간 동그라미 안과 밖으로 나뉜다. 원 안의 사람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건 좋지만, 원 밖의 모두와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남들이 저 사람 참 좋은 사람이라 말해도 원 밖의 사람이라면 나에겐 다 낯설다. 그래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관계없이 만남이 힘들다. 어쩔 수 없이 사회적인 관계를 해야 할 때는 게임에 흔히 있는 MP 마나 포인트, Magic Point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사교적인 '스킬 Skill'을 쓸 때마다 보유한 MP가 소진되는데, 이걸 회복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낯선 사람과 말하는 건 게임 고난도 스킬을 연계하는 것과 같아서 한번 만나고 나면 모든 MP가 바닥난다. 이러면 당분간은 치킨 배달원도 마주치기 싫어진다.






 원 밖의 사람과 만나는 건 다 힘들다. 하지만, 그중 가장 힘든 것은 '무조건' 좋게 보여야 할 때다. 내가 저 사람과 맞을지 안 맞을지 여부랑 상관없이 무조건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이 가장 문제다. 이런 관계에서는 서로 맞지 않으면 둘 중 더 약한 쪽은 거짓으로 아첨하거나 일방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된 모든 낯선 사람이 제일 어려운 것이다. 원 안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네가 원 밖의 사람을 소개해줄 때, 나는 너로 인해 당연히 약자일 수밖에 없다.


 물론 사회에서는 맞지 않은 사람과 맞는 척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사랑을 사회생활로 생각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나는 너와 사적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애가 동등하다면, '나'도 그 관계에서 배려받길 원한다. 너와 다르게 난 새로운 인간관계에 큰 용기가 필요한 사람인 것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특히 사랑하는 너와 관계된 모든 것에는 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도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날 둘러싼 원을 조금씩 키우려 노력하겠지만, 하루아침에 내 작은 방만한 마음이 운동장만큼 커질 순 없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네가 나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제 우리의 관계에서 '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옷장에서 그나마 싸가지 있어 보이는 옷을 고르던 나는 어렵게 네 부탁을 들어줬지만 돌아오는 답장이 소화제 두 병이었을 때 결심했다. 앞으로의 인간관계에서는 나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않겠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내 원안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하여도, 그 원 중심에는 내가 있다.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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