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몸을 옆으로 돌려 욕실 거울에 비친 배를 봤다. 출산일이 가까워 오면서부터 배가 아래로 처졌나 유심히 확인했다.
38주 3일.
배는 여전히 가슴 아래부터 불룩했다. 아래로 처지지 않은 걸로 봐서 초록이는 아직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책모임 멤버들과 다음 주 목요일에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점심 메뉴는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 스테이크로 정했다. 한 멤버가 내 배를 쳐다보며 말한다.
"초록아~ 스테이크 먹고 싶으면 좀 더 늦게 나와야 돼."
푸름이 친구 엄마들과는 다음 날인 금요일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전에 검진을 하고 오후에 같이 점심을 먹으면 되겠다 싶어서 그날 오전으로 정기 검진을 예약했다.
목요일 저녁, 퇴근 준비를 마친 뒤 회사 동료들에게 내일은 정기 검진일이어서 출근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내 출산은 한두 주 뒤라고 생각했고, 나는 출근 전날까지 회사에 나오겠다는 의사를 표한 상태였다. 회사 선생님들도 대수롭지 않게 정기 검진 가서 초록이 잘 만나고 오라고 인사했다.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누웠다. 몸이 좋지 않았고 배도 슬슬 아팠다. 아픈 것보다 피곤한 게 먼저였는지 일단 잠이 들었다. 그러다 배가 아파서 새벽에 깼다. 화장실 배인지 진통 배인지 헷갈려서 화장실을 계속 왔다 갔다 했다. 변기에 앉았더니 이슬이 비친다. 진통은 어느새 규칙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늘 퇴근할 때까지도 출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몸이었는데 진통 주기를 보니 오늘 출산을 하겠다 싶었다. 줄줄이 잡아놓은 약속, 정리되지 않은 책상, 마무리되지 않은 업무가 걱정되었다.
초록아 네가 드디어 오는구나!
엄마에게 오려고 노력 중이구나!
그래 초록아, 엄마도 노력할게.
새벽 내내 초록이와 태담을 하며 진통을 견뎠다. 진통이 짧은 간격으로 강하게 몰려왔다 사라졌다. 이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서둘러 깨웠다.
“도이야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코를 골며 자고 있던 남편은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차 없는 삶을 살고 있었기에 남편은 서둘러 택시를 불렀고, 10분 만에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내 몸속 깊숙이 손을 넣은 간호사는 80프로 열렸다며 바로 출산을 해야겠다고 했다. 입원복으로 갈아입고, 혈관을 확보한 뒤 분만실에 들어갔다.
출산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눈을 꼭 감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더니 분만실에 들어간 지 몇 분 만에 초록이를 만날 수 있었다.
간호사는 초록이를 내 가슴 위에 올려 주었다. 출산 후 마지막 처치를 하는 동안 나는 초록이와 두서없는 대화를 시도했다.
아이고 예쁘다. 눈 좀 떠 봐. 엄마야. 엄마 보이니? 힘들었지? 많이많이 보고 싶었어.
손가락 좀 봐. 발 뒤꿈치 좀 봐.
아.. 너무 예뻐.
배고프지? 엄마가 이따가 맛있는 맘마 줄게.
내 목소리가 익숙한 듯, 뭔가 알겠다는 듯,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초록이.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낳다니...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인가 보다.
나를 입원실까지 데려다준 후, 남편은 아이들 등교를 위해 서둘러 집으로 갔다. 아이들이 아직 꿈나라일지, 일어났는데 엄마아빠가 없어서 어리둥절해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입원실에 누워 있으니 내가 초록이를 낳았다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 몸은 임부의 몸과 다를 바 없어서 더 그러했다. 그러다 내가 몇 개월 만에 반듯이 누워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아랫부분이 스칠 때마다 불편한 걸 느끼면서 출산했다는 걸 조금씩 실감했다.
남편이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초록이의 탄생을 알려주었더니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초록이를 보러 가겠다고 떼를 썼다고 한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귀여워서 나는 또 웃었다.
하교 후 병실에 온 아이들은 초록이를 보자마자 너무나 신기해했다. 유리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유리창 너머의 초록이를 오랜 시간 봤다.
"너희들도 이렇게 작았던 때가 있었단다. 손수건을 이불 삼아 덮어줄 정도로 작았는데, 언제 이렇게 컸구나!"
9년 만에 나에게 온 여린 존재가 감격스러워서 나는 수유 후에도 오랜 시간 아이를 안고 있었다. 잠에 빠져 있는 모습도, 하품하는 모습도 모두 다 사랑스럽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