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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un 14. 2023

[공개 일기] 남이섬 사고_기록2

사고 난 다음 날 새벽에 퇴원해서 집에 돌아왔지만 난 잠을 잘 수 없었어. 맑음이 치아를 꼭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집 근처 치과를 열심히 검색했지. 몇 군데를 알아본 뒤 이른 아침에 주변 지인들에게 괜찮은 치과를 물어봤어. 열심히 찾아본 게 무색하게 대부분 대학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


대학 병원으로 진료받으러 다니는 일이 막막했지만 그래도 대학 병원이 치아를 살리는 쪽으로 진료를 해 준다니 가야지 어떡해. 응급 치료를 받은 대학 병원은 집에서 너무 멀었기에 가장 가까운 Y대 치과 병원을 찾아봤어. 8시부터 전화 예약이 가능해서 전화해 봤더니 10시 전에 도착하면 당일 오전 진료도 가능하다고 하시더라. 난 어서 병원 갈 준비를 했지.


퉁퉁 부은 입술 주변으로 피를 흘리며 자고 있는 맑음이를 서둘러 깨웠어. 맑음이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호소했지만 병원에 가야 하니 일단 일으켜 세웠어. 어서 가서 진료를 받아야 치아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푸름이 학교 보내고 초록이 어린이집에 보낸 뒤 남편과 맑음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어. 길은 막히고 시간은 계속 흘렀지. 치과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먼저 차에서 내려 접수를 하러 갔어. 접수대에 아이 상태를 설명했더니 치과보존과로 가라고 하시더라. 난 치과보존과 앞에 앉아 맑음이와 남편을 기다렸지. 근데 시간이 지나도 남편이 오지 않아서 전화해 봤더니 글쎄... 남편은 맑음이를 데리고 치과 병원이 아닌 치과 대학으로 가 버렸다는 거야. 남편도 정신이 없었나 봐.


맑음이가 도착하자마자 차트를 쓰는 선생님께 사고 상황을 설명하고 치아 엑스레이를 찍었어. 맑음이가 엑스레이를 찍는 동안 난 맑음이 쪽을 바라보며 계속 서 있었어. 걱정되는 마음에 앉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거든. 한 선생님이 누구를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냐며 오래 걸리니 앉아 있으라고 하더라. 다른 사람들 눈에도 내가 안정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나 봐. 그 선생님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앉아서 맑음이를 기다렸어.


의사 선생님은 맑음이의 치아 상태를 보시더니 많이 아팠겠다고 하셨어. 그러고 조각난 치아를 붙이고 지혈이 되지 않은 부분을 또 꿰매 주셨지. 심하게 흔들리는 치아 중 하나가 세로로 조각나서 너덜대는 상태였는데, 응급실에서는 발견하지 못했었나 봐.  처치도 시간이 한참 걸린 것 같아. 처치를 마치신 선생님은 지금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서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우니 일주일 뒤에 다시 보자고 하셨어.


맑음이를 집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어. 잘 걷지도 못하고 온몸이 아프다고 하니 어떡해. 집 근처 정형외과에 들러 몸 상태를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 싶었지. 가슴, 팔, 골반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큰 이상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어. 손목 골절된 부위 깁스가 잘못돼 있어서 새로 깁스를 한 거 외에는.


원장님은 가슴과 골반 부분은 계속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 조금만 건드려도 맑음이가 아파했으니까. 타박상인지, 엑스레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 골절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픈 맑음이를 집으로 데려가는 것보다는 병원에 입원해서 바로 처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게 좋겠다 싶었어. 원장님도 그러자고 하셨지. 우린 바로 입원 수속을 밟았어.


정형외과 원장님이 맑음이 입술을 보시더니 치아보다는 입술이 중요하니 잘 관리해야 한다며 처치실에 데려가서 드레싱을 해 주셨어. 원장님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맑음이가 너무 아파하자 난 원장님께 한마디하고 말았지. 빠진 치아를 삽입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조심해 달라고. 아버지뻘 되는 원장님은 언짢으신 표정이었어.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치아'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나 봐. 이 생각을 이틀 만에 후회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맑음이는 병원식으로 나오는 묽은 밥을 먹지 못했어.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도 어려워했지. 입을 벌리는 것도, 입안으로 조심히 밥을 넣는 것도, 밥을 씹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어. 밥은 먹여야겠기에 묽은 밥을 비닐에 넣어 봉한 뒤 구멍을 뚫어 짜서 먹였어. 입술과 잇몸 염증이 심해서 밥이 닿으면 아파했지만, 어떻게든 먹였어. 맑음이는 밥을 씹지 못해서 입을 벌린  내가 짜 주는 밥을 그냥 꿀꺽꿀꺽 삼켰어.


입과 치아를 다치니 먹이는 게 일이었어. 빨대도 빨지 못했고, 입 안으로 음식을 넣는 것도 힘들어서 어떻게 밥을 먹이나 고민했지. 집에 가서 숟가락을 종류별로 가져온 뒤 하나씩 테스트를 해 봤어. 쇠숟가락, 나무숟가락, 끝이 하트 모양인 찻숟가락, 끝이 둥근 세모 모양인 찻숟가락, 손잡이가 긴 숟가락, 손잡이가 짧은 숟가락 등. 테스트해 본 결과 손잡이가 길고 끝이 둥근 세모 모양인 찻숟가락이 그나마 밥을 먹이기에 나았어.


씹을 수 없으니 병원식으로 나오는 반찬은 하나도 먹지 못했어. 할 수 없이 병원식을 취소하고 곱게 갈아진 죽을 사다 날랐어. 1인분 죽을 3개로 나눠 포장했는데, 그 한 팩을 먹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 이렇게 못 먹어서 어떡하나 시름에 빠져있을 때쯤, 회사 동료가 마시는 영양식을 알려주더라. 맑음이가 빨대는 잘 못 빨지만 들고 마실 수는 있으니 이걸로 식사를 보충하면 될 듯했어. 서둘러 뉴케어, 단백질 음료, 멸균 우유를 주문했지.


막막했던 하루가 지나고 조금씩 희망의 빛이 보였어. 다음 날 맑음이가 혼자 죽을 떠서 먹었거든. 난 너무 감동을 받아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어. 맑음이가 혼자 죽을 먹었다고, 이제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이야. 맑음이는 죽을 다 먹은 뒤 뉴케어도 한 팩 쭉 마셨지. 맑음이 스스로 몸을 챙기는 모습에 난 감동을 받았어. 아픈 아이가 잘 먹어 주는 것, 그 이상 고마운 게 어딨겠어.



근데 여전히 입술은 퉁퉁 부어 있고, 입에서 역한 냄새가 났어. 입술 위쪽과 안쪽을 꿰맸으니 그 게 낫는 과정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원장 선생님이 보시더니 입술이 괴사됐다고 하시는 거야. 입술 쪽에 까만 선이 생기길래 궁금했는데, 그게 괴사의 조짐이었던 거지. 입술 안쪽에 염증이 가득 차 있어서 꿰맨 부분을 뜯어 낸 뒤 염증을 다 닦아 냈어. 원장님이 닦아낸 거즈를 보여 주며 나에게 한 마디 하시더라.


"어머니, 너무 치아 걱정만 하는데 치아는 아무리 잘못돼도 임플란트 하면 돼요. 우리나라 임플란트 기술 좋아서 괜찮아요. 하지만 피부는 잘못되면 평생 흉터를 안고 살아야 해요. 지금 치아를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입술 정중앙이 괴사돼서 구순구개열처럼 보일 수 있으니 이걸 잘 치료하고 봉합하는 게 중요해요."


잠깐 밝아졌던 희망의 빛이 무참히 꺼져 버렸어. 난 나의 무지를 탓했지. 세 아이 모두 한 번도 봉합 수술을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봉합 수술 후 피부가 괴사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어. ㅜㅜ 원장님 말씀을 듣고 있으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어. 입술이 괴사된 건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이곳에서 염증 치료를 잘 받은 뒤 성형외과에 가서 꿰매면 될 거라고 하더라. 원장님은 입술 성형을 잘하는 성형외과를 알아보라고 하셨어. 하지만 추천해 달라고 하니 침묵하셨지.


난 울면서 계속 물어봤어. 도와달라고, 잘 모르니 도와달라고. 원장님은 흉터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성형외과를 찾으면 아마 최선을 다해 흉터를 치료해 줄 거라며 나를 위로해 주셨어. 열심히 흉터 치료 성형외과를 검색하니 많은 곳이 검색됐어. 구순구개열 수술부터 입술 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곳까지. 하지만 대부분 전화를 해 보면 봉합 수술은 하지 않는다고 하는 거야. 

"저희는 상처가 다 아문 뒤에 생긴 흉터를 치료하는 곳이니 봉합 수술은 대학 병원에 문의해 보세요."라고 하더라. 봉합하는 성형외과 찾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러다 한 곳이 눈에 띄더라. 흉터 치료도 하고 봉합 수술도 하는 성형외과가 보이는 거야. 난 바로 전화를 걸었지. 상담하시는 분께 지금까지의 상황을 말씀드리니 진료가 가능하다며 예약을 잡아주셨어. 다시 한 줄기 빛이 보였어.


(이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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