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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과 태영 Oct 16. 2020

다시, 그런 시간

그리고 끝의 시작 

  체화당이 잘 버텨주기를 늘 멀리서 응원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 때’가 와버렸습니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시 이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진짜였습니다. 체화당에 몸담고 있을 때 가끔 이 때를 머릿 속에 그려보긴 했는데,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밀려드는 아쉬움과 공허함, 계속 힘을 보태지 못한 미안함에 대한 자책감마저 들었습니다. 활동 당시 우리의 작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달리기만 했던 당시 제 자신의 부족함이 후회스럽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결과에 어느 정도 책임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는 이 책을 쓰고 있는 동안 체화당 공간 해체작업을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두 작업을 통해 체화당의 마지막을 제 손으로 정리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제 청춘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이곳의 모든 것들을 두 눈 질끈 감고 내다버려야 하는 매일매일은 때로는 눈물이 자리하기도 하면서 한숨과 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돌아가는 길에 ‘체화당 사람’ 누군가라도 만나 그 감정의 무게감을 덜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혼자였기에 차분하게 제 삶의 한 자리였던 그 곳을 감사한 마음으로 잘 보내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4년 봄, 체화당을 처음 만났습니다. 다른 삶의 복사가 아닌 자기만의 특별한 삶을 만나보는 시간을 내 인생에서 의도적으로 가져보는 것,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 제 자신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고, ‘인생에서 이유 있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체화당에서 저는 지기, 프로젝트 디렉터로 주로 활동했습니다. 이렇게나 오래 체화당과 관계하면서 매니저해 볼 생각은 없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왔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매니저가 공석일 때마다 제가 몇 차례 임시 매니저로서 체화당 문을 열고 닫기도 했습니다. 한 번 닫힌 문을 다시 열었을 때 손실을 어렴풋이 알기에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카페 운영은 실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몰랐다면 흔쾌히 도전해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매니저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결코 쉽지 않은 자리라는 것, 그래서 솔직히 나중에는 용기를 낼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대신 이렇게 체화당과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24명의 매니저 중 22명과 관계를 형성했던 것이 상대적으로 체화당의 시간들을 많이 ‘아는 사람’이 되어 이 글을 쓸 기회를 갖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년 12월부터해서 9개월 동안 온오프라인 자료를 뒤적거리고 인터뷰를 하면서, 기고문을 요청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과 많게는 수십 번씩 토론하고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체화당은 자기 삶을 실험하는 교실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 맥락에서 공간 정리가 끝난 체화당을 우연히 들른 누군가로부터 그곳에 가고 그곳에 머무르는 일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미처 몰랐었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리곤 한참을 생각에 잠겼습니다. 경험은 그 경험을 할 만한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그런 장소가 없어지면 경험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특정 장소가 사라지면 특정 경험 또한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장소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차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느껴지는 안타까움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 닫힘이 아니라 다시 시작을 꿈꿀 수 있는 열림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표는 끝이 될 수도 있지만 다음 문장의 시작을 알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체화당의 마침표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끝나지 않는 실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그 끝의 시작이 다시 ‘신촌동 2-93번지’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인생에서 언제든 어디에서든 ‘다시, 그런 시간’이 시작되기를, 그런 마음으로 작업해 나갔고, 그 마음이 여러분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체화당의 실험이 각 도시 체화당과 성격이 유사한 그룹,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건강한 혹은 좋은 장소(공간) 만들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과 미래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환상이 담기는 것을 경계했으며, 무엇을 배우고 취할 것인지 각자에 맞게끔 적용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체화당이라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궁극적으로 누구나 이러한 장소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누구보다 체화당에게 20년이라는 오랜 시간과 좋은 장소로 만들어 준 운영진들, 파트너들, 주민들, 손님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애써 주신 분들, 특히 멀리서 체화당의 늘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자청해주신 이경자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2004년 둘 다 체화당을 처음 만났고 이렇게 마지막까지 체화당 풍경 사이로 벌써 16년 지기가 된 이태영씨 덕분에 발제문이 이렇게 완성된 글로 만들어질 수 있었고, 좋은 토론 상대자가 되어주어 공부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에 원고를 쓰면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분명 미래를 위한 시간이 될 것이라며 격려해 준 이현지씨와 허나영씨, 체화당을 두고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를 나눠 준 김원영씨, 김혜리씨, 김영주씨, 김현씨, 김가연씨, 마한얼씨, 윤혜진씨 등 여러 사람의 아낌없는 도움에도 감사드립니다. 


  끝의 시작에서  

  또다시 

  ‘다시, 그런 시간’을 기다려봅니다. 



끝의 시작에서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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