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지만 낮에 햇빛이 내리쬐면 여름이 아직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음이 실감이 난다. 지나가는 여름을 마지막으로 보내기 전 만나게 된 그림책이었다. ”돌랑돌랑“ 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돌다”라는 말이 달다, 달콤하다의 제주도 사투리라고. 왠지 제목에서부터 제주도에서의 달달했던 여름이야기가 기대됐다. 책을 펼치자 샛노랗게 색칠된 앞면지, 뒷면 지는 따스함과 자유로움이 물씬 풍겼던 그런 그림책이었다.
여행준비물이 눈에 띄었다. 특히나 온 가족의 공통 짐인 모자가 눈에 가장 띄었다. 여행을 떠나는 듯한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공항을 나서는 코끼리 가족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코끼리 가족은 비행기를 타고 남쪽 끝섬 제주도에 도착을 했다.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각 가족의 역할이 나온다. 또한 여기 나오는 가족이 꼭 우리 가족이 여행했을 때와 같아서 공감이 됐다. 이것저것 찾아보는 아빠, 무조건 사진 찍는 엄마, 그냥 마냥 신난 아이. 가족은 숙소를 찾아갔다. 자꾸만 나와 여행스타일이 비슷한 엄마에게 눈길이 간다. 손에서 여행책과 카메라를 떼지 못하는 모습. 여행책을 쭉 훑어보더니 숲을 가고 싶어 하는 엄마. 숲을 좋아하는 모습도 꼭 나를 닮았다. 그에 반해 바다에 가고 싶어 하는 아빠. 이렇게 의견이 다른 것조차 우리 가족 같았다. 평소에 산을 좋아하고 등산을 즐겨하는 내가 산에 가자고 하면, 남편은 꼭 산보다는 바다가 좋다고 이야기하며 등산을 어떻게든 안 가려고 한다. 그렇게 아빠와 엄마의 의견이 다르면 누가 원하는 곳을 먼저 가게 될까? 궁금했다. 이렇게 가족의 서열이 정해지는 것 같아서.
결국 숲을 먼저 가게 된 코끼리가족. 아빠는 혼자 둘러보고, 엄마는 여지없이 셔터를 마구 눌러댄다. 아이는 엄마 주변을 맴돈다. 숲을 그냥 느끼고 있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밥생각부터 하는 모습이다. 이 모습조차 왜 이렇게 똑같은지. 남편은 어딜 데려가면 꼭 “배고프다, 밥은 뭐 먹지? 언제 가?”라는 말을 한다. 제발 분위기 좀 잘 느껴봐.
여행하면서 계속 사진 찍는 엄마, 무언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알려주려는 아빠, 그냥 어딜 가든 마냥 즐거운 아이. 그렇게 코끼리 가족은 제주 숲, 화산, 오름 등을 돌아다녔다. 오름을 걷다가 바람에 날아가버린 가족의 모자들. 책 속에서 제주 바람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다음날 가족은 드디어 아빠가 원하는 바다를 왔다. 아빠가 좋아했던 바다에서 가족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비행기를 타고 다시 돌아오며 여행이 끝났다
작가 자신이 아이가 여섯 살이었을 때 함께했던 가족여행을 쓰고 그린 책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가족여행 풍경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특히나 틈나는 대로 카메라로 풍경사진을 찍는 모습은 여행을 가면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와 닮아서 더욱더 공감이 됐던 그림책이었다.
나의 제주도를 몇 개 꼽아보자면 어렸을 적 온 가족이 함께 떠났던 제주여행, 그땐 솔직히 태풍 때문에 비바람이 몰아쳐서 호텔에 주로 있었던 것과 제주도를 처음 가봐서 잘 몰랐기도 했고 아빠가 가고 싶은 곳들을 따라다니기 바빴었다. 두 번째는 엄마와 여름이 올랑말랑 했을 때 엉또폭포, 쇠소깍, 그리고 여름에는 수국이 예쁘고, 겨울에는 동백이 예쁜 카멜리아힐에 반해 다음에 겨울에 다시 제주 오자 약속하고 이듬해 겨울 제주를 다시 찾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후 변화로 인해 겨울말에 갔더니 동백이 다 져버렸던 카멜리아힐이었다. 그 외에도 사려니숲길이란 좋은 숲을 알게 되어 뜻깊었던 그런 제주였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낳기 전 아이를 뱃속에 품고 지인들과 떠났었던 제주여행. 그땐 지인들과 분위기 좋은 카페를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러 다니기 바빴었다. 이후로 몇 년째 제주도를 가지 못하고 있다. 등산과 라이딩에 푹 빠진 삶을 살아가는 요즘 제주 한복판 오름과 올레길을 걸어보고 싶고, 해안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는 상상을 해본다. 나의 다음 돌랑돌랑 제주는 언제 올까? 이 책과 함께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