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생일을 안겨주었던 프레이케스톨렌
프레이케스톨렌, 내게 유달리 각별했던 이유
엄마와 인생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 보고 싶어 떠났던 노르웨이 3대 트레킹 여행.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내게는 정말로 잊지 못할 여행이 되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이렇게 회자하는 걸 보면. 노르웨이 3대 트레킹 여행지 세 곳 모두 각각의 의미가 남달라서 소중한 곳이지만, 프레이케스톨렌은 내게 유난히 더 특별하다. 프레이케스톨렌을 트레킹을 했던 날은 바로 나의 생일날이었다. 엄마는 아침에 트레킹 코스로 출발하기 전에 생일을 축하해주셨다.
"딸, 생일 축하해 그런데 생일인데, 미역국을 끓여주지 못해 미안하네."
“아니야, 괜찮아. 난 오히려 엄마와 여기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걸?”
우리는 차를 타고 프레이케스톨렌 등산로 입구에 도착을 했고, 이곳의 트레킹 난이도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었기에 마음을 편히 가졌었다. 트레킹을 하면서 느꼈지만 정말 소문대로 긴장이 필요 없던 곳이었다.
프레이케스톨렌의 트레킹 풍경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현지인들은 마치 산책을 나온 듯 가볍게 트레킹을 즐겼었다. 아빠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오듯 오던 웃음기 가득했던 아이들, 청바지를 입고 트레킹을 즐겼던 사람들, 심지어 아기를 등에 업고 오르내렸던 사람들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전 날 쉐락볼튼에서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보다 이곳에서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더 눈에 많이 띄는 것을 보면서 '확실히 여기가 더 대중적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엄마도 트레킹을 하시면서 이곳은 확실히 어제보다 쉽다고 하셨다. 그리고 왠지 이곳은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아마 트레킹을 하시면서 느낌이 오셨나 보다. 완주를 하시기 위해 힘은 들지만, 포기하지 않으시려 했었다. 엄마와 오손도손 대화하면서 가는 길이 좋았다. 평소에도 대화를 많이 했던 우리 모녀지만, 여행을 오니 좋은 풍경을 함께 보면서 걷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뻤다.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 더 와닿는 엄마의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들, 우리가 살면서 겪었던 추억거리들이 그랬었다. 엄마가 힘들지 않은 지 중간중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었다.
“엄마 괜찮아? 올라갈 만 해?”
“조금 힘들긴 한데 오늘은 그래도 괜찮아.”
엄마는 웃으시면서 대답하셨다. 엄마의 웃음 속에서 약간의 여유와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야기를 하면서 오르다 보니 어느덧 우리는 정상까지 함께 와버렸다. 엄마는 오늘만큼은 정상에 도달하셨다. 전날 나 혼자 쉐락볼튼 정상에 올랐던 것보다 함께였기에 감동과 뿌듯함은 두배로 더 컸었다.
"엄마, 우리가 함께 정상을 올라온 게 내 생일선물인 거야?"
엄마는 환한 웃음으로 화답하셨다.
잊을 수 없을 생일
엄마와의 특별한 추억으로 인해 나의 30번째 생일은 잊을 수 없는 생일이 되었다. 비록 난이도가 가장 낮은 곳이라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랴. 우리 모녀가 처음으로 함께 트레킹에 성공한 날인데. 그런 최고의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내친김에 엄마에게 다음날 트레킹도 정상까지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힘들겠지만, 노력해보겠다고 말해주셨다. 자연이 준 선물 앞에서 하산하려고 하는데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고, 자꾸만 뒤를 쳐다봤다. 엄마와 함께 완주한 곳이었기에 더욱더 애틋했고,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다. 내려가면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죽기 전에 여기 또 와볼 수 있을까?”
“엄마는 이제 끝난 것 같지만, 너는 그래도 한 두 번 더 올 수 있지 않을까?”
엄마는 이제 끝난 것 같다고 하셨지만 다음에도 내가 이곳에 오게 된다면, 엄마와 함께 오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내 바람과는 달리 살짝 힘에 부치셨던 것 같았다. 그래도 첫날 트레킹 완주에 성공을 못해서 아쉬워하셨던 엄마가 둘째 날은 완주에 성공하시고 자신감을 찾으신 것 같아서 옆에 있었던 나 또한 기뻤다. 힘들었을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신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힘들어도 꿋꿋하게 오르시는 엄마를 보면서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숱한 고비들이 찾아오겠지만 그때마다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고마워"
“뭐가?”
“그냥 여러모로”
그리고, 차마 뱉지 못한 말이 있었다. “내 엄마인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