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으로 좌우된 인연, 트롤퉁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트롤퉁가 트레킹 일정
쉐락볼튼, 프레이케스톨렌 이틀 연속으로 2개의 트레킹 코스를 마쳤다. 나는 2개의 트레킹을 모두 마치고도 컨디션이 꽤 괜찮았었지만, 엄마와 다른 팀원 분들은 많이 힘들어 보였다. 일행 중 어느 한 분이 나서서 일정에 여유가 있으니 마지막 남은 트레킹은 하루 쉬었다가 하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을 하셨다. 아무래도 3일 연속으로 트레킹을 한다는 건 부담이셨던 것 같았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분은 너무 힘들다는 의견이었다. 이렇게 제안하셨던 이유는 아마도 우리에게 남은 트레킹 코스는 하나였는데 그 하나가 바로 노르웨이 3대 트레킹 코스 중에서 가장 길고,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는 왕복 28km의 트롤퉁가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체력을 충전하기 위해 이런 제안을 하셨던 것 같았다. 최대한 우리 컨디션에 따라 일정을 자유롭게 조정해주셨던 가이드님.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일정 조정에 대한 제안을 받으셨던 가이드님의 낯빛이 갑자기 어두워지셨다. 일정을 변경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동상의 거리, 그리고 그때 여행 일정에 맞게 예약되어 있었던 숙소 때문이었는지 가이드님은 상당히 곤란해하셨다. 그다음 날 일정이었던 플롬-구드방겐 피오르드 투어로 일정을 바꾸자니 이동거리가 너무 멀었고 예약되어있던 일정들이 꼬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다른 곳으로의 이동은 쉽지 않았기에 트레킹을 하지 않으면 원래 있는 곳인 오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시간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몸도 탄력 받았겠다, 이왕 트레킹을 하는 김에 트롤퉁가까지 연이어서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 생각만 할 순 없었으니 연이은 트레킹 일정에 힘든 엄마와 다른 팀원분들의 입장도 이해는 됐었다. 엄마와 다른 팀원분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셨다. 몸도 몸이었지만 가이드님의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며 어쩔 줄 몰라하시는 표정을 보고 다들 마음이 약해지셨는지 예정대로 쉬지 않고 바로 다음날 트롤퉁가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결정은 신의 한 수였다.
날씨에 울고 웃는 트레킹, 트레킹에서 체력만큼이나 중요했던 날씨
우리가 트롤퉁가에 올랐던 날의 날씨는 참 맑았다. 그러나 일정을 바꾸려 했던 그다음 날에는 비가 오고 날씨도 흐렸다. 트롤퉁가는 왕복 28km라는 대장정의 트레킹 코스이기에 다른 어떤 코스보다도 체력 안배가 중요했고, 코스 자체도 절대 만만하게 생각할 곳이 아니었다. 내가 트레킹을 하면서 느꼈던 바로는 체력도 물론 중요했지만, 체력만큼이나 날씨 또한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였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온다면 길이 미끄러워서 오르기도 힘들었을 테고 자칫하면 트레킹이 제한될 수도 있었다. 긴 코스 때문에 새벽부터 시작해서 반일 동안 진행되었던 트레킹. 트레킹을 끝나고 내려오니 초저녁이었다. 다음날 비가 내리자 일정을 바꾸지 않고, 원래의 일정대로 강행했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고 다들 흡족해하셨다. 최고의 트레킹 코스에서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었기 때문에. 이는 날씨가 한몫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1프로 아쉬웠던 트롤퉁가
이런 귀하디 귀하고 언제 다시 볼지 모를 아름다운 풍경을 아쉽게도 엄마는 함께하지 못하셨다. 엄마는 첫날 쉐락볼튼 트레킹을 올랐을 때처럼 트롤퉁가 트레킹 역시 많이 힘들어하셨다. 트레킹을 하는 중간중간 계속 중도에 포기하겠다고 하셨다. 본인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못 가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그렇지만 엄마와 전날 프레이케스톨렌을 함께 올랐을 때의 그 진했던 여운을 생각하며 나는 이 진귀한 풍경을 어떻게든 엄마와 함께 완주하고 싶었다. 그러나 점점 올라갈수록 힘들어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이는 내 욕심이라는 걸 깨닫게 되자 현지 가이드님과 긴 논의 끝에 엄마는 중간에 하산을 하시는 걸로 했다. 엄마의 하산이 결정되면서 든 생각이 어차피 엄마가 중도에 포기하시는 거였다면 혼자 내려가시는 길 덜 위험하게 ‘엄마를 더 먼저 내려보내 드릴걸’이라는 생각도 스쳤었다. 엄마와 헤어지면 연락이 되지 않았기에 엄마가 무사히 내려가실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를 알아챈 현지 가이드님이 엄마가 무사히 하산을 하셨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밑에 있는 직원과 연락을 취하겠다고 하셨다. 연락이 되지 않을 엄마를 혼자 두고 나만 트레킹을 강행한다는 것이 내심 걱정이 됐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 몫까지 잘 완주하고 싶은 마음 또한 있었다. 엄마는 또 이런 내 마음을 읽으셨던 것 같았다.
"엄마, 헤어지면 연락도 안되는데 정말 혼자 내려갈 수 있겠어? 말도 잘 안 통하잖아"
“엄마 걱정은 하지 마. 엄마 혼자 잘 내려갈 수 있어. 너나 잘 다녀와. 우리 딸, 워낙 잘하니까 엄마 없이도 잘 다녀올 수 있을 거야!”
트롤퉁가 트레킹의 경우 하산하는 길이 달라 더 신경이 쓰였었다. 역시 엄마는 내게 엄마 걱정은 말라고, 혼자서 잘 내려갈 수 있다고 되려 나를 안심시켜주셨다. 나를 배려해주고 격려해주시는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또 한 번 엄마의 큰 사랑을 느꼈다. 엄마의 사랑과 엄마가 몸소 보여주셨던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시던 모습 덕분에 아마 내가 더 힘내서 완주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트롤퉁가 트레킹 후 느꼈던 점 - 순간의 선택의 중요성
트롤퉁가 트레킹을 마치고 나는 여행도 인생도 선택의 연속이며, 순간의 선택이 참 중요하다는 점을 느꼈다. 우리가 그 찰나에 힘들다고 다음날로 트레킹 일정을 변경했더라면, 비가 내리고 흐렸을 때 트레킹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수도 있었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트레킹을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아찔했다. 아마 이런 풍경을 본다는 것은 꿈도 못 꿨을 일이었다. 최상의 조건에서 트레킹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 엄마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엄마의 선택으로 엄마가 행복해하셨다면 그걸로 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