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 인연이 아닌가 봐

비가 오면 생각 나는 여행지, 구드방겐

by 방구석여행자

비가 오면 생각 나는 여행지

나에게는 비가 오는 날이면 유독 생각나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노르웨이의 구드방겐. 구드방겐이 비가 올 때마다 생각나는 이유는 구드방겐을 2번 방문했었는데 2번 다 비가 왔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구드방겐 방문은 나 홀로 북유럽 여행 중 노르웨이에서 당일치기 피오르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오슬로에서 출발해 뮈르달-플롬-구드방겐-보스-베르겐을 거쳐 야간열차를 타고 다시 오슬로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오슬로 중앙역에서 열차를 타고 뮈르달로 갈 때부터 안개가 꼈었고, 날씨가 좋지 않았었다. 노르웨이의 날씨는 워낙 변덕스럽기로 유명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실제로 열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역마다 날씨가 제각각이었다. 피오르드를 실제로 처음 보는 건데 이왕이면 맑은 날씨에서 보고 싶었다. 아쉽게도 내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두 번째 구드방겐 방문은 엄마와 함께였는데 구드방겐에 도착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날씨가 안 좋았다. 마치 첫 방문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특히나 엄마와 노르웨이 일주일 여행 중에는 날씨가 다 좋았다가 딱 구드방겐에서만 비가 내렸다. 이쯤 되면 비가 오면 생각 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첫 산악열차 탑승기

오슬로에서 3시간 정도를 달려서 뮈르달 역에 도착했다. 뮈르달 역에서 내려 맞은편에 있던 플롬으로 가는 산악열차를 바꿔 탔다. 산악열차 내부 벽면은 갈색이었는데, 산장과 같은 아늑한 느낌이 들어 캠핑을 가는 듯 두근거렸다.

산악열차를 타고 플롬에 도착하기 전 중간에 멈춰 키요스 폭포를 봤다. 키요스 폭포에 다다르니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내 속도 모르고 폭포의 물줄기는 빗물과 섞여 세차게 흘러내렸다. 아직 피오르드를 보지 못했으니 '피오르드를 볼 때쯤이면 날씨가 금방 좋아지겠지'하고 애써 덤덤하게 준비해 온 우비를 꺼내 입고 비와 섞인 폭포를 구경했다. 폭포는 5분 동안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시원한 물줄기를 보기 위해 열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속속들이 나왔었다. 휘슬이 울리자 다시 열차 안으로 탑승했고 플롬으로 내려가는 길은 희뿌연 안개가 가득했었다. 마치 앞 날을 예견하기 힘든 여행 일정 같았다.

물에 젖은 생쥐꼴이었던 첫 페리 탑승기

드디어 플롬에 도착을 했고, 구드방겐으로 향하는 페리를 탔었다. 오락가락하던 비 때문인지 날씨가 제법 쌀쌀했었다. 페리 안의 매점에서 핫초코라도 사 먹으려고 했으나 현금이 없었던 나는 'CASH ONLY'라는 안내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비는 그쳤었지만 이때의 나는 비가 언제 올지 몰라 가슴을 졸이며 추위에 떨었던 딱 물에 젖은 생쥐꼴이었다. 출발하기 전 오락가락했던 비는 페리가 출발하기 시작하자 하늘에 구멍이 났나 싶을 정도로 거세게 퍼붓기 시작했었다. 비록 그토록 바랐던 맑은 하늘에서의 피오르드를 볼 순 없었지만 우비를 뒤집어쓰고 온몸으로 자연을 마주했었다. 흐릿한 구름과 쏟아지던 장대비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었지만, 곳곳에 보였던 폭포 물줄기와 옅은 피오르드 풍경은 마치 보물 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2시간 여의 빗속 페리 관광이 끝이 났고, 보스 행 버스를 타러 갔다.

다시 만난 구드방겐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또다시 뮈르달-플롬-구드방겐을 여행하게 되었다. 비록 이번 여행은 구드방겐-플롬-뮈르달-플롬 일정으로 지난번 혼자 여행했을 때와 순서는 달랐지만, 장소에는 변함이 없었다. 가이드님의 차로 마침내 구드방겐에 도착을 했다. 도착하자 본 구드방겐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날씨가 흐렸고, 안개가 자욱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페리를 타지 말까 수차례 고민을 했었다. 이전에 여행했을 때와 같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페리를 탔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엄마. 엄마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드리고 싶었다. 그래도 전과 달라진 게 있었다면 이번에 탔던 페리는 신형 페리였고, 더 이상 매점은 'CASH ONLY'가 아니었다. 페리 안에 조명이 생겼고, 딱딱한 의자가 아닌 편안한 소파였다. 가장 달라진 게 있었다면 혼자였던 그때와 달리 엄마가 함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행복했었다.


페리가 출발하니 예상했던 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비를 뒤집어써야 했고, 페리의 안팎을 드나들어야 했다. 몇 년 전 혼자 마주했던 그때와 같은 풍경을 또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함께’였기에 “비가 와도 다 추억이다”라고 웃을 수 있었다. 빗속을 뚫고 마침내 페리는 플롬에 도착했다. 엄마와 함께 플롬이라는 작은 마을을 둘러보며 구경하다가 산악열차를 탔고, 열차 내부는 처음과 같았다. 변한 게 없었다. 뮈르달로 올라가는 중간에 키요스 폭포를 봤었다. 이번에는 혼자 여행했을 때 보지 못했던 전설의 요정 훌드라도 볼 수 있었다. 엄마와 나는 안갯속에서 춤을 추고 있던 전설의 요정 훌드라가 신기해 그녀의 춤사위에 눈을 떼지 못했었다. 나 혼자였을 땐 보지 못했었지만 엄마와 함께 찾았을 땐 볼 수 있어서 특별했었다. 엄마는 처음 타보신 산악열차가 신기하셨는지 안개가 자욱해서 풍경이 잘 보이지 않았음에도 열차를 타면서 지나가는 풍경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하셨었다. 아마 엄마도 처음의 나처럼 안갯속에서 보물 찾기를 하신 기분이었겠지? 뮈르달에 도착한 후 잠깐 멈춰있다가 우린 산악열차를 타고 다시 플롬으로 돌아왔다. 플롬에서 우릴 기다리고 계셨던 가이드님은 우리를 숙소가 있는 구드방겐으로 차로 데려다주셨다.


숙소에 도착 후 엄마와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오늘 어땠었는지 여쭤봤었다.


“엄마, 오늘 여행 어땠어?”

“비가 와서 아쉬웠지만, 딸 덕분에 큰 페리도 타보고 흐릿했지만 피오르드도 처음으로 보고 좋은 경험이었어”


엄마는 비록 비가 와서 좋은 풍경을 보지 못했던 점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거대한 페리도 타보고 처음 경험해본 것들이 많아 좋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 함께였기에 좋았다고 하셨다. 나 역시도 엄마와 갔을 때는 ‘날씨가 맑았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었지만, 이곳에 엄마와 함께 있었다는 점, 엄마와 공유할 특별한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는 점은 좋았었다.


내가 갔던 두 번 모두 비가 왔었기에 구드방겐과 나는 아직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니 비가 올 때마다 구드방겐에서의 추억들이 자꾸 생각이 난다. 여행 당시에는 비 때문에 울적했지만 돌아서 보니 다 추억이었다. 다음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구드방겐을 만나게 될까? 다음에 다시 구드방겐을 가게 된다면 이왕이면 맑은 날씨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도 역시 엄마가 함께 였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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