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여행 중 만났던 소울푸드

인스턴트 누룽지, 즉석김치, 컵라면, 사골 곰탕면

by 방구석여행자

처음으로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유럽 대륙인 노르웨이라는 낯선 나라에 도착했던 엄마는 잠도 잘 못 주무시고, 음식도 잘 드시지 못하셨었다. 그런 상태에서 첫 트레킹 일정을 시작했고, 엄마는 트레킹을 할수록 버거워하셨다. 결국 엄마는 중도에 첫 트레킹을 포기하셨다. 트레킹이 끝난 후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시간이었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니 밖으로 나가기도 뭐했었던지라 한국에서 가져왔던 식량들을 풀었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인 인스턴트 누룽지, 즉석김치, 그리고 노르웨이에 도착하자마자 들렀던 마트에서 직접 공수한, 컵라면 MR.Lee. 노르웨이에서 꽤나 성공했다는 컵라면이라니 기대가 됐었다.


커피포트에서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누룽지와 컵라면이 마법처럼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한입 뜨는 순간 비록 인스턴트였을지라도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었고, 며칠 동안 최악의 컨디션을 보였던 엄마는 그제야 기운을 차리실 수 있었다. 한국 땅을 떠나온 지 며칠 안되었지만, 웃으시면서 "오늘이 여태까지 먹었던 음식들 중에 제일 맛있게 먹은 것 같다"라고 하셨던 엄마를 잊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모든 트레킹 일정이 끝나고, 피오르드를 여유롭게 구경했던 날이었다. 그날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가 저녁이 되자 그쳤었다. 숙소 근처에는 저녁을 먹을만한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우리 모녀는 남아있던 짐을 줄이기 위해 배낭에 있었던 한국에서 가져온 식량으로 저녁을 때우기로 했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한국음식은 바로 인스턴트 사골 곰탕면이었다. 엄마는 평소에 고기를 잘 드시지 않아 설렁탕, 곰탕 같은 고깃국들도 어쩌다 한번, 정말 먹을 것이 없을 때 말고는 잘 드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 온 엄마는 인스턴트 사골 곰탕면에 즉석밥까지 말아서 한 숟가락 뜨시더니 그 위에 김치를 얹어 맛있다고 쓱싹쓱싹 잘 드셨다. 엄마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그릇을 비우셨고, 잘 먹었다며 흐뭇해하셨다.

엄마가 여행 중 만났던 소울푸드는 그 어떤 값비싼 음식도, 근사한 레스토랑의 음식도 아니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음식인 누룽지, 컵라면, 김치, 사골 곰탕면이었다. 이런 엄마를 보면서 아무리 비싸고, 맛있다는 음식을 먹는다고 한들 몸과 마음이 불편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었다. 동시에 소울푸드라는 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도 엄마를 보면서 느꼈다. 비록 특별하진 않더라도 맛있게 먹고, 웃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소울푸드이지 않을까? 엄마는 어쩌면 갑자기 들이닥쳤던 낯선 환경에서 익숙함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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