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과 함께 세계로, 95일간의 아프리카 여행
게스트 하우스에는 나이 든 영국 사람이 하나 있다. 이제 영국은 날씨가 추워지니 이 시기에 따뜻해지는 남아프리카로 여행을 와서 장기적으로 묵는 사람이다. 70이 넘은 사람인데 매년 이곳에 와서 자기가 즐기는 스쿼시 클럽에 가입하여 즐기다 간다고 한다.
별도로 관광은 하지 않고 오로지 스쿼시만 하고 끝나면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자거나 노트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내가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면 레드 한잔을 들고 나와 같이 마시자 한다.
같이 마시자 하면서도 내 것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너도 술을 따라 가지고 나오라는 것이다. 그는 전자 담배를 피우다가 내가 일반 담배를 피우면 하나씩 얻어 피우기도 한다. 같이 와인잔을 기울이며 담배도 나누어 피우는 이야기 동무가 있다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어제저녁에 나를 태웠다 줬던 운전사가 아침 8시에 오기로 했는데 조금 이르지만 밖에 나와 보니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택시가 대기하고 있다.
준비하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대충 먹던 것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택시에 타면서 언제부터 기다렸느냐 하니 아침 7시부터 기다리고 있었단다. 왜 이렇게 빨리 나왔느냐고 물어보니 새벽에 잠이 없어 그냥 일찍 나와 여기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숙소에서 시티투어버스가 출발하는 로즈뱅크까지는 약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기사와 헤어지고 나는 다시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을 향해 출발한다.
박물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나라와 연관되어 마음이 아프다. 우리의 역사에서 일본 식민시대의 공권력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펼치다 희생되거나 감옥에 갇혔던 슬픈 역사와 함께 군부 독재에 항거하다 희생된 사람들과 함께 불의와 인종차별에 대항하다 희생된 남아프리카 흑인들의 역사에서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슬프고 가슴이 아팠다. 그러고 다시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SCI-BONO Discovery Center를 찾아간다. 여기는 어린이들이 각종 과학이나 산업시설들을 체험하는 곳이다.
바로 옆에는 어제 들렀던 맥주 공장이 있었는데 무언가 하여 들렀더니 이곳은 아이들과 함께 오는 곳으로 우리 같은 나이 때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어온 것이다.
다음에 찾은 곳은 헌법 언덕이다. 어두운 시설의 감옥시설이다. 이곳에서 만델라가 감옥 생활을 했고 인도의 간디도 이곳에 수감되었단다.
감옥을 둘러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말 이곳에 수감되었던 죄수들은 백인들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이지만 그들의 삶에 그러한 저항이 없었다면 그래도 현재와 같은 생활을 누리기 힘들었지 않을까 싶다.
요하네스버그가 세계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다고 하는데 이는 백인과 흑인의 생활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봐 왔지만 백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치안이 잘 되어있고 도시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으며 언제나 깨끗하게 청소가 잘 되어 있다.
하지만 흑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정말 정비되지 않은 함석집에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곳에서 거주하고 정말 열악한 대우를 받아가며 생활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며 또한 이곳의 흑인들만 사는 것이 아니고 인근의 짐바브웨나 모잠비크, 보츠와나, 나미비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일을 찾아 입국을 하는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범죄자로 전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감옥을 개조하여 만든 기념관과 전시관을 둘러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여자 죄수들의 감옥을 둘러보고 독방의 감옥과 여러 사람들이 수감되어있는 감옥과 시설을 들을 둘러보며 흑인 죄수들에 대한 형벌을 가늠할 수 있었다.
사실 아프리카를 여행하기 전에는 인도의 간디가 왜 아프리카에서 존경받고 기념관들이 있는지 의아했었는데 이곳에 오다 보니 간디의 생활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헌법 언덕의 감옥시설과 기념관들을 둘러보고 다시 로즈뱅크로 돌아와 아침에 태워줬던 기사를 만난다. 이제 사흘 밤을 지내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된다.
차를 타고 오면서 물어본다. 내가 보기에 택시기사들이 로즈뱅크의 주차장에 차들을 거의 세워두고 있는 것 같은데 하루에 얼마 정도 수입을 올리느냐 물어보니 아주 많이 벌 때는 우리 돈 십만 원이고 적게 벌 때는 이만 원이나 삼만 원 버는 때도 많다고 한다.
그럼 내가 삼만 원을 줄 테니 3시간이나 4시간에 걸쳐 프레토리아를 돌아봐 주고 화요일 아침에 공항까지 태워다 줄 수 있느냐 물어보니 일요일은 교회를 가야 안되고 월요일은 가능하다고 한다.
원래 요하네스버그에서 프레토리아를 여행하려면 버스를 타고 가거나 전철을 타고 간다. 그렇지 않으면 투어를 신청해서 가는데 숙소에서 알아보니 투어를 하는데 우리 돈 약 8만 원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간단하게 3만 원으로 택시로 하기로 하고 어차피 숙소에서 공항 가는 데는 택시로 가야 되기에 일요일은 나도 숙소에서 쉬고 월요일은 프레토리아로 가기로 한다.
숙소에 있는 영국 노인은 밑에 개인 방에 묵고 있었고 도미토리 방에는 여러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조금 오래 머물고 있는 친구는 짐바브웨에서 왔다고 하는데 사흘을 같이 묵고 있는데 오늘은 내가 밥을 만들어 주기로 해본다. 이 친구는 언제나 저녁에 먹을 것을 사들고 들어왔는데 밥을 짓고 가지고 있던 고추장과 김으로 만찬을 준비한다.
그렇게 저녁을 지어 같이 나누어 먹고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