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의 <죽음과 삶> - 작품 편
누쏠: 안녕하세요, 클림트 선생님. 오늘, 저희 세 번째 만남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더욱 반갑습니다. 저희 ‘쿤스트캄머 아트카드’ 나온 거 아직 못 보셨죠?
클림트: 네, 만든다는 말만 전해 들었고, 아직 직접 보진 못했어요.
누쏠: 인터뷰 오는 길에 샘플을 받았는데, 정말 예쁘더라고요. 판매 카드는 다음 주 정도 출시된다고 들었습니다. 오늘은 <죽음과 삶> 카드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고 하는데요. 카드 제작자가 원본 작품을 의도적으로 잘라 사용한 점이 인상 깊었는데, 이렇게 카드를 직접 받아보니 그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클림트: 허허, 참 재미있게 만들어졌네요. 제 작품의 한 조각이 이렇게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된 것이니, 나름 신선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누쏠: 그럼 인터뷰 시작 전에,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방청객 분들께 질문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이 카드는 <죽음과 삶> 작품의 일부입니다. 우측에 치우쳐진 인물덩어리 같은 형태가 보입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이 그룹의 왼쪽, 즉 카드 밖 왼편에 선생님께서 무엇을 그리셨을 것이라고 상상하시는지요?
방청객 1: 저는 왼편에 선생님이 팔레트를 들고 작업하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분의 예술적 열정이 그대로 느껴질 것 같아요.
방청객 2: 저는 카드 속 인물이 평온함을 나타내는 것 같아, 그 평온함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방청객 3: 저는 조금 다르게 봤어요. 작품 제목이 <죽음과 삶>인 만큼, 오른쪽에 있는 덩어리는 ‘삶’의 모습을 나타낸다면 왼편은 ‘죽음’의 잔혹함과 고요함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쏠: 와, 이렇게 열심히 상상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네요.
클림트: 네, 정말 흥미로운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죽음과 삶>을 그릴 때는 인간 존재의 양면, 즉 생명의 아름다움과 다가오는 죽음의 불가피함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카드에 잘라낸 부분은 원작 전체에서 그 균형과 대비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편집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해 주신 것처럼, 왼편은 어쩌면 삶의 활기와 반대되는, 조용하고 숙연한 ‘죽음’의 면모를 표현하는 요소일 수 있습니다.
그럼 저의 전체 그림을 한번 봐 볼까요.
방청객들: 웅성웅성
클림트: 왼쪽에는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푸른 옷을 입은 사신이 붉은 곤봉을 들고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고, 우측에는 남녀노소가 화려한 꽃과 다채로운 컬러조각에 얽혀 누구 하나 데려가지 못하게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것 같죠.
누쏠: 네, 작품의 인물들의 표정과 자세에서도 그 상반된 감정이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클림트: 인물의 배치는 매우 신중하게 구성했습니다. 죽음은 혼자 강하게 서있는 반면, 삶은 모두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어찌 보면 죽음에 대항하는 느낌을 가지게 말이죠.
누쏠: 오른쪽 인물들은 따뜻한 삶의 기쁨을 나타내는 반면, 왼편에 있는 인물들은 죽음의 침묵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죽음과 가장 가까운 소녀가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왜 겁이 없어 보이는지도 궁금합니다.
클림트: 누쏠씨, 죽음은 우리 곁에 언제나 있어요. 이 작품을 통해 전 한 순간에 대한 감정이 아닌,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 죽음을 무섭게만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죽음이 모든 게 끝나는 절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희망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누쏠: 아, 그래서 죽음이 옆에 있어도 사람들이 이렇게 평온할 수 있었던 걸까요. 우리가 살면서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는 탓에, 선생님이 '죽음'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깊이 다루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한데요. 혹시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가족이나 친지 등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으셨나요?
클림트: 전 음악을 아주 사랑했어요. 특히 제 절친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와 ’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했죠. <죽음과 삶>은 내 친구 말러가 세상을 떠나고 시작하게 된 작업인데, 아마 말러와의 대화를 계속 상상하며 작업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누쏠: 저도 말러 교향곡 많이 알아요. 두 분이 친구셨군요.
클림트: 특히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Kindertotenlieder)>라는 가곡은 자녀를 잃은 부모의 슬픔을 담았던 곡이거든요. 프리드리히 뤼케르트(Friedrich Rückert, 1788~1866)라는 독일 시인의 작품에 곡을 쓴 거죠. 저 역시 뤼케르트의 시와 말러의 곡의 영향을 받으며, 삶과 죽음의 복잡한 감정을 작품에 녹여내게 되었습니다.
이제 태양은 찬란하게 떠오르려고 하네
이제야 알 것 같구나, 이 어두운 불길 속에서
너희 엄마가
아이들은 잠깐 나가 있을 뿐이다.
<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 중에서
Nun will die Sonn' so hell aufgeh'n
Nun seh' ich wohl, warum so dunkle Flammen
Wenn dein Mütterlein
Oft Denk' Ich, Sie Sind Nur Ausgegangen
< Kindertotenlieder > 중에서
https://youtu.be/5OiRRW9Mhbw?si=Dy1Y7cRh0ech5Yth
누쏠: 교향곡이 아닌 말러의 가곡도 참 인상적입니다. 가사 중에 ‘아이들은 잠깐 나가 있을 뿐이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처럼 죽음을 잠시 떠나는 듯한 표현이, 이 작품의 무게를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클림트: 맞습니다. 그 표현은 죽음이 절대적이고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라, 때로는 슬픔과 동시에 새 출발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누쏠: 작품 배경이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어 인물과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요. 클림트 선생님께서는 1911년 경 작업을 시작하신 후, 로마 국제전에서 일등 상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수정 과정을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클림트: 네, <죽음과 삶>은 고민과 수정이 많았던 작품입니다. 처음 작업할 때는 제가 즐겨 쓰던 골드를 사용하였지만, 이후 다크 블루 배경을 도입하여 인물과 감정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수정했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강렬한 대비와 함께 인물들의 내면적 감정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누쏠: 오늘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죽음과 삶>가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선생님의 전성기 독특한 예술세계까지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클림트: 누쏠님, 오늘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저도 매우 기뻤습니다. 제 작품이 여러분 각자의 마음에 영원한 흔적을 남길 수 있길 희망합니다.
누쏠: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본 매거진은 크라우드펀딩 (텀블벅) 후원을 통해 제작된 아트카드에 등장한 작가와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을 위해 발행되었습니다. 곧 스마트스토어를 통해서도 구매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