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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쿤스트캄머] 상상 인터뷰

알폰스 무하 (1860-1939) - 작가 편

by yune Feb 27. 2025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1860-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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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쏠: 안녕하세요, 무하 선생님! 오늘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오시는 길 힘드시진 않으셨는나요?


무하: 아닙니다. 오기 전에 홍대, 상수, 망원 근처를 둘러봤는데, 정말 흥미로운 곳이더군요. 어떤 카페에는 제 그림이 걸려 있어 걸 보고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누쏠: 홍대가 한국에서는 미술대학으로 유명한 곳이거든요. 그래서인지 다양한 스타일의 카페와 예술적인 공간이 많더라고요.


무하: 맞아요. 확실히 창의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곳 같아요


누쏠: 선생님 마니아 층이 한국에도 참 많답니다. (씨익 웃으며) 사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특별히 선별된 분들이에요!


무하: 그렇군요. 그럼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겠네요.


누쏠: 선생님은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런데 ‘아르누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직접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무하: 그럼요. ‘아르누보(Art Nouveau)’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예술’을 뜻합니다. 19세기말 유럽에서 등장한 예술 양식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벗어나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유려한 곡선과 장식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죠.


누쏠: 맞아요.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 아름다운 곡선과 화려한 장식이 많죠. 그런데 왜 아르누보 스타일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무하: 처음부터 아르누보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다만 예술은 대중과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르누보'는 고급 미술뿐만 아니라, 책표지, 포스터, 광고, 보석 등 여러 분야에 적용되며, 실용적인 디자인에까지 널리 퍼졌죠. 저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을 하고 싶었기에, 자연스럽게 아르누보 스타일을 고수한 거 같아요.


누쏠: 어쩜 이런 멋있는 생각을.. 이런 철학이 선생님의 성공을 만들었나 보네요! 선생님의 그림 스타일은 특별히 ‘무하 스타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독창적이에요. 그런데 처음부터 유명했던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을 스타로 만든 계기가 배우 ‘사라 베르나르’와의 협업이었다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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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사라 베르나르 (Sarah Bernhardt, 1844~1923)   우: 알폰스 무하, <지스몽다>, 채색석판화, 1894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 파크사우스갤러리


무하: (웃으며) 맞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계획된 일은 아니었어요. 189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한 인쇄소에서 급하게 포스터를 의뢰했는데, 사무실에 있던 사람이 저뿐이었죠. 그게 바로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지스몽다> 포스터였습니다.


누쏠: (흥미진진해하며) 어머, 그야말로 운명 같은 만남이에요! 그런데 그 포스터는 기존 포스터들과 굉장히 달랐다면서요.

무하: 그렇죠. 당시 포스터들은 보통 강렬한 색채와 단순한 구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는 우아한 곡선세밀한 장식을 더했고, 사라 베르나르를 성스러운 존재처럼 표현했습니다. 포스터가 길고 세로로 늘어난 형태였던 것도 독특했죠. (만족해하며) 사람들이 거리에서 이 포스터를 보자마자 ‘이건 뭔가 다르다!’고 느꼈을 거예요. 허허.


누쏠: 사람들의 반응도 대단했겠어요!


무하:

스스로 말하려니 쑥스럽네요. 네, 맞습니다. 포스터가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반응이 있었습니다. 사라 베르나르는 이 포스터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고, 저에게 6년 동안 전속 계약을 제안했어요. 덕분에 저는 <지스몽다>뿐만 아니라 <메데아>, <햄릿>, <카밀> 같은 그녀의 대표적인 연극 포스터들을 계속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누쏠: 그 포스터들이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걸 보면, 선생님의 스타일이 그만큼 특별했던 것 같아요. 오늘 아르누보 스타일부터 선생님의 스타 탄생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 정말 감사드립니다!


무하: 저도 즐거웠어요. 제 예술이 오늘날까지도 사랑받고 있다니 기쁜 일이죠. 누쏠씨, 혹시 끝나고 별일 없으시면 상수동에 봐둔 바가 있는데 같이 안 가시겠어요?


누쏠: 아, 너무 좋죠. 그럼 이동하죠, 선생님


=

상수, 한적한 막걸리 바에서

[...]

무하: 지난주에 클림트 씨도 다녀갔다고 들었습니다.


누쏠: 네, 맞아요. 혹시 두 분은 서로 알고 계셨나요?


무하: 우리 시대에 빈에서 클림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죠. 저는 빈 분리파의 정식 멤버는 아니었지만, 몇 차례 전시를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누쏠: 그럼 로트렉 씨와도 교류가 있었나요? 로틀렉 씨는 3월에 올 예정이거든요.


무하: 파리에서 활동할 때 같은 인쇄소와 클라이언트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저는 우아하고 장식적인 스타일을 추구했고, 로트렉은 몽마르트르의 거친 현실을 그대로 담았죠. 표현 방식이 다르다 보니, 어울릴 기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쏠: 그래도 세 분 다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평가받으시잖아요.


무하: 클림트나 로트렉은 순수 회화 작가로 인정받았죠. 하지만 저는 주로 포스터, 광고 등 ‘장식미술’을 많이 했기 때문에, 미술사에서는 ‘상업적인 예술가’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술이 특정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물론, 클림트나 로트렉의 예술관에 대해 논하는 건 아닙니다.

[...]


둘은 바 마감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오늘 인터뷰 끝.


### 본 매거진은 크라우드펀딩 (텀블벅) 후원을 통해 제작된 아트카드에 등장한 작가와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을 위해 발행되었습니다. 곧 스마트스토어를 통해서도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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