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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Sep 11. 2022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방식에 대해

프롤로그

홈플러스에서 영수증 쿠폰을 받았다. 5일 안에 2만 원 이상 결제 시 사용할 수 있는 2천 원 쿠폰. 지갑과 쿠폰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장을 봐온 식품들을 냉장고에 쑤셔 넣는다. 쿠폰은 금방 필요할 것이 분명하므로 언제고 눈에 보일 수 있는 근처에 둔다. 잠시만이다. 진짜 금방 쓸 거다. 내일 아니면 모레.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나는 그것을 쓸 일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사는 건 너무 바쁘고 해결할 일은 산더미다.


한 시간 뒤 쿠폰 위로 책이 한 두 권 올려지고, 두 시간이 지나면 립밤과 이런저런 충전기 더미들이 쿠폰 곁을 맴돈다. 안경닦이와 메모지 들로 뒤덮인 저녁, 그것들은 테이블 끝에 자리한다. 이제 쿠폰은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밀어두었던 것들 위로 자잘한 물건이 더 많이 쌓이거나 식탁에서 떨어져 마구 뒤엉키게 되면 나는 그것들을 다른 곳에 가져다 놓는다. 이렇게 쿠폰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이게 내가 물건을 잃어버리는 방식이다. 대체로 그렇다.   

   

이스라엘 작가 에트가르 케레트의 책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중, <거짓말 나라>라는 짧은 단편이 있다. 자신이 한 거짓말들이 어느 곳에서 차곡차곡 모여 현실이 되어버리는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다. 거짓말들이 살아나는 곳이 있다면 어딘가에는 내가 잃어버렸던 것들이 모여 있는 장소도 있지 않을까? 내가 잃어버렸던 것들이 잔뜩 쌓여 있는 곳을 생각해본다. 그곳의 얼굴은 어떨까 궁금하다. 감격스러운 얼굴? 글쎄 그쪽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공포물이 될 수도 있겠다. 잃어버렸던 것을 찾아 반가운 나와는 달리 잃어버려졌던 것들의 마음은 다를 수도 있을 테니까. 의도치 않았더라도 내가 잃어버렸다는 것에는 어쨌건 ‘버렸’ 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해야겠다.

잃어버려서 잊어버린 건지, 잊어버려서 잃어버린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어떻게 그것을 잃어버리게 됐을까? 잃어버린 후의 일상이나 그것이 존재할 때의 존재감조차 이젠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사소했지만 중요했던 것이, 중요하지만 사소해져 버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잃어버리고 만다. 종종 이렇게 나는 사람을, 물질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잃었다.      


누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늘어진 머리끈일 수도, 새로 산 에어팟 이거나 낡은 책일 수도 있다.

혹은, 함께 했던 사람이거나 인지하지도 못했던 감정들이거나, 어쩌면 삶의 우선순위일 수도.



목록_     

01. 프롤로그_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방식

02. 서점_ 주인 모르게 홀로 팔아버린 책들

03. 리본_ 범인을 잡기 위해 놓은 덫에 걸린 나

04. 브래지어_ 입었을까 안 입었을까?

05. 미미_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인가

06. S_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07. M_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어

08. 아빠_ 간신히 되찾았으나 기어코 잃어버렸다.

09. 분노_ 감정의 잔해더미에서 살아남기

10. 개그감_ 나이가 들면 웃을 일도 사라지고

11. 머리숱_ 자연스럽다기엔 좀 억울하다

12. 성질머리_ 고약한 성질머리도 아이 앞에선 길을 잃네

13. 나이_ 나? 마흔!

14. 사탕_ 슈퍼집 딸이 구멍가게에서 사탕을 훔쳤대

15. 골목_ 나는 여덟 개의 다리로 빠르게 달리지

16. 에필로그_ 잃어버려서 잊어버린 걸까, 잊어버려서 잃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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