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6학년 3 반인가?"
"나야 아직 꽃 띠지!"
"난 나이 같은 거 몰라~"
“그런 거 안 키운 지 오래됐어.”
가벼운 자리에서 나이를 묻는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노년의 여성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웃으라고 하는 말인가? 그냥 자기 나이를 말하면 될 걸 왜 재밌지도 않은 말을 굳이 하는 건지. 그래, 육체는 점점 노화되고 있으나 마음만은 젊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인 거겠지. 그렇다면 이해해 드려야지 별수 있나.
.... 시간이 흘러, 내가 40을 넘긴 어느 날 나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다지 친분이 없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 갑자기 누군가 나에게 나이를 물었다.
“사.. 사십... 사”
“네? 마흔넷이요?”
“아, 아니! 사아~시입~”
가만, 나 올해 몇이지? 순간적으로 내가 몇 살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작년에 몇이었던가를 잠깐 떠올리며 사십 다음을 말하려는 순간 상대방은 내 입에서 뱉어진 ‘사십’만을 듣고는 말했다. “마흔이시구나!” 내가 뭐라 정정할 새도 없이 상대방은 다음 사람에게 관심을 돌렸고 나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마흔이 되었다.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왜 갑자기 생각이 안 난 거야? 말이 되나? 나만 두 살씩 먹는 것도 아닌데 내 나이가 안 떠오르는 게 말이 되냐고! 근데, 진짜 말이 되더라. 정말이야. 생각이 깜빡 안 났어.
육체도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알아주는 체력왕이었던 내가 날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고 마음도 점점 가뭄의 논바닥처럼 메말라 간다. 서른아홉 살에는 와 내년에 마흔이다! 놀라워했고 마흔이 넘고서도 마흔하나, 마흔둘, 했더랬다. 근데 어느 순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더니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순간적으로 한 번씩 내가 몇 살이더라 생각을 한 뒤에야 말이 나오는 거다. 아무래도 마흔이 넘으면서 뇌의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게 아닐까? 아니면 세월을 그만 멈추고 싶은 내 심리상태의 반영일까? 어쨌거나. 내 나이가 몇이던가를 생각해서 말해야 하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더니, 요즘엔 내 나이를 바로 떠올리는 것보다 아이를 한번 보고 네가 몇 살이니까 지금 나는 몇 살이구나로 마무리된다.(이거 어디서 봤다. 옛날에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어.)
그래서 작년부터 나는 마흔으로 나이를 정했다. 나이를 깜빡깜빡 잊어버리다가 아예 잃어버렸는지 진짜로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종종 있으니, 차라리 죽는 날까지 주욱 마흔으로 말하고 다니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가 신세 한탄을 하다가 과거 이야기로 넘어가며 우리가 올해 몇이냐 묻길래 마흔이라고 했더니 깔깔거리며 좋아하는 걸 보자 역시 잘했다 싶었다. 그 후로 누가 물어보면 장난반 진심반으로 마흔이라고 하고 다녔더니 진짜로 내가 몇 살인지 생각나지 않아 살짝 당황했다. 그래 그깟 숫자. 잃어버린다고 뭐 어떤가.
당시의 어머니들이 왜 자신의 나이를 제대로 말하지 않고 이상한 소리를 하시나, 그런 말들이 노년층의 유행인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가벼운 유행이 아니라 나름의 유쾌한 결단이었던 듯싶다. 이제 내가 그 위치로 향하고 있어서 그런가 조금쯤 이해가 된다. 어머니들도 누가 물으면 제대로 말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나처럼 깜빡하며 아주 짧게 잠깐만, 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점점 길어지며 자신의 육체와 마음이 노화하고 있다는 생각에 어쩌면 울적해졌을 것이다. 그런 날들이 길어지다 보면 어느순간 나이따위에 별 관심을 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된다. 에라 그럴 바에야 까짓, 숫자 따위는 잊자 하는 마음이 한순간 들었을 지도 모른다. ‘나? 아직 꽃 띠지!’라고 외칠 때는 정말 꽃같이 들뜨고 노화의 감정이라곤 단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나는 마흔.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한다. ‘나? 마흔!’ 이제 중년씩이나 됐으면 나이쯤은 각자 알아서 정할 때도 됐잖아. 나이를 정하고 나니 어찌나 편하고 즐거운지 몰라. 타인들은 매년 나이를 먹는데 나는 매년 마흔이니 아니 행복할 쏘냐. 더 이상 나이를 떠올리려 당황하지 않아도 되고,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뇌의 노화 상태에 괜히 심란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도 한결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마흔. 일흔이 언제 올지도 모르지만 일흔이 와도 나는 마흔이라고 당신에게 대답할 거다.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에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하다고 느낀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게 어색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곧 잊어버리게 될 어느 날 아침,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는다. 잔인한 햇빛을 받으며, 새로운 날을 위한 무기와 용기를 몽땅 빼앗긴 채. 자신을 가다듬으려고 눈을 감으면, 살아온 모든 순간과 함께, 그는 다시금 가라앉아 허탈의 경지로 떠내려간다. 그는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고함을 쳐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그러고는 바닥 없는 심연으로 굴러 떨어진다. 마침내 그의 감각은 사라지고 그가 자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해체되고 소멸되어 무로 환원해버린다.
<삽십세> 잉게보르크 바흐만
<삼십세>를 읽은 건 이십 대 초중반이었다. 당시에는 별 감흥이 없이 훌쩍 읽어낼 뿐이었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도 모르고 읽었다. 서른이 지나고 마흔이 좀 지났을 때 우연히 다시 책을 집어 들었는데 첫 장을 읽자마자 탄성이 터져 나와 읽던 책을 잠시 덮어야 했다. 어떻게 책을 시작하는 첫 장에서부터 한 인간을 이렇듯 완전히 해체해 버릴 수 있는가! 한 글자 한 글자 어느 하나 거짓되고 과장된 곳 없이 완벽히 내 마흔즈음의 상태를 MRI처럼 읽어 내린 명문이었다. 거실에 누워 책을 읽다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로 내 나이를 완전히 잃어버리기로 결정했다.
나이_ 마흔몇 즈음 실종
마흔이 조금 넘은 어느 날인가 나이를 묻는 질문에 깜빡하며 답변을 늦게 하길 여러 번,
아예 나이를 잊어서 잃어버리기로 결심.
앞으로 나의 나이는 영원히 마흔으로 결정했다.
목록_
01. 프롤로그_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방식
02. 서점_ 주인 모르게 홀로 팔아버린 책들
03. 리본_ 범인을 잡기 위해 놓은 덫에 걸린 나
04. 브래지어_ 입었을까 안 입었을까?
05. 미미_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인가
06. S_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07. M_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어
08. 아빠_ 간신히 되찾았으나 기어코 잃어버렸다.
09. 분노_ 감정의 잔해더미에서 살아남기
10. 개그감_ 나이가 들면 웃을 일도 사라지고
11. 머리숱_ 자연스럽다기엔 좀 억울하다
12. 성질머리_ 고약한 성질머리도 아이 앞에선 길을 잃네
13. 나이_ 나? 마흔!
14. 에필로그_ 잃어버려서 잊어버린 걸까, 잊어버려서 잃어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