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만큼 중요한 말 끊기 스킬
#1 입사 1년 차 직원 캐리는 이번 달부터 팀 내 정기 미팅을 직접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회의만 들어가면 지쳐서 나온다. 회의를 참석한 사람은 이 회의가 무엇을 논의하는 회의인지 알지 못한다. 들어와서 설명을 시작하고 질문을 하면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무슨 회의인지 모르고 참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안건을 낸 1~2명만 주야장천 이야기한다. 이들이 발언하는 시간이 전체 회의의 대부분이다. 가끔 2명의 의견이 충돌할 때가 있는데, 이러면 회의 시간은 더 길어진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서로 논쟁을 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머지 사람은 두 명이서 논쟁하는 것을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다. 캐리도 한 마디씩 거들다 보면 힘이 다 빠진다. 결국 논쟁만 있고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회의다. 팀원들은 점점 지쳐간다. 회의에서 결정된 것이 없다 보니,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일은 진척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번에도 마감일에 맞추어 야근을 해야 할 판이다.
#2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원고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법정에서 너무 오래 발언하면 판사가 원고를 제지한다. 원고는 본인의 억울함 때문에 할 말이 많기 때문에,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사건의 쟁점과 핵심을 벗어난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으면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재판이란 것은 사건의 실체를 밝혀 법률에 빗대어 판단하기 위한 절차인데, 원고는 본인의 억울함을 감정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주체들(원고, 피고, 대리인, 방청객, 배심원)이 재판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판사는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 주체들의 발언의 시간과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는 회사에서의 회의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의에서는 해당 안건에 대해 더 말하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안건의 범위를 더 확장시키고 싶은 사람과 해당 문제에만 집중하고 싶은 사람이 모두 존재한다. 따라서, 팀의 목표와 해당 안건을 다루는 방식이 적절한지 지속적으로 체크하지 않으면, 회의의 양상은 팀의 목표에서 쉽게 벗어난다. 그래서 이번에는 회의에서 팀의 목표에 벗어나는 사람의 말을 어떻게 제지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적어본다.
1. "이 아이디어 좋은 것 같지 않아?" 형
본인의 아이디어를 주장하는 한 명이 있다. 그런데 나머지 사람들은 해당 아이디어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디어 제안자는 본인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회의가 평행선을 달린다. 물론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팀의 리소스다. 해당 아이디어의 규모가 너무 커서 팀 전체의 리소스를 투입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팀 전체의 리소스를 투입해야 하는 아이디어가 갑자기 불숙 튀어나온다면, 팀원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아이디어 제안자에게, 아이디어를 조금 더 구체화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해당 아이디어를 글로 정리할 수도 있고, 리서치나 테스트를 할 수도 있으며, 데이터를 통해 가설을 검증할 수도 있다. 그래서 회의 진행자는 아이디어 제안자에게 구체적인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해당 아이디어가 아직 구체성이 부족하다면 아이디어 제안자의 발언을 제지하며 조금 더 구체적인 제안을 해올 것을 요청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구체성이 부족하며 팀원들이 동의하지 않은 해당 아이디어를 그 자리에서 바로 수용해버린다면, 팀은 큰 후폭풍에 시달릴 것이다.
2. "그게 아니라 ~~ 야" 형
회의에서 발언하는 두 사람이 있다. 서로 어떤 사안에 대해서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두 사람의 논쟁이 길게 이어진다. 계속 서로의 발언을 부정하는듯한 뉘앙스의 말들이 오간다. "그게 아니라~", "그렇게 하면 안 돼요!"등이다. 십중팔구는 서로가 해당 사안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거나, 해석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 같은 맥락과 사실관계를 공유하고 있는지 질문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두 명이서 사실 관계를 확인 후 정리해서 회의가 끝난 후 공유해달라고 요청한다.
회의에서 두 명이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를 맞추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논쟁을 바라보며 기다려야 한다. 여러 명이 들어가는 회의에서의 긴 논쟁은 상황에 따라 반드시 필요하지만 반복되면 팀원들이 쉽게 지친다. 팀 내부 미팅의 경우 서로 미리 어느 정도 생각과 의견을 미리 정리하고 조율해 온다면 훨씬 쾌적하게 회의를 마칠 수 있다.
3. 교장선생님 설교 형
안건에 대한 준비도가 높지 않고 평소 자기주장이 강한 경우 말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 의미 없는 같은 말이 여러 번 반복되면 듣고 있는 상대는 지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상대가 자신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상대가 한 말을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다시 나의 말로 정리해주면 된다. 그러면 자신의 말을 상대가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경우 상대가 사용하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전략을 취하면 훨씬 더 쉽게 상대에게 내가 잘 이해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말할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을 때에도 말이 길어질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상대방의 이해도를 점검한 다음에 이해도가 높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 한 부분을 조금 더 준비해서 다음 회의에 말해달라고 하면 된다. 급한 안건인 경우 다음 정기 논의에 다루는 것이 아니라 바로 후속 미팅을 잡는다.
마지막으로, 그냥 말이 길고 의견이 많은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에는 핵심이 뭔지 지속적으로 물어본다. 핵심적인 한 문장만 말해줄 것을 요청하면 된다. 모든 의견을 다 반영할 수 없으므로 상대가 핵심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그 하나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면 상대와 나도 둘 다 만족할 수 있다. 핵심을 물어봐도 계속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한다면 최종적으로는 말을 끊어야 한다.
"자자 다른 분들도 다 이해한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때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토의한 것 같으니, 다음 안건으로 넘어갈까요?", "~의 관점에서는 맞는 말인데, ~의 관점에서는 어떨까요?"등으로 기분이 나쁘지 않게 충분히 화제를 전환할 수 있다.
4. 감정이 태도가 돼요 형
회의 중 말에 감정을 담아서 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업무가 지속적으로 과도하거나, 급박한 상황이 생겼을 때, 서로 감정이 안 좋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십중팔구는 특정 인원의 퇴사 전후, 프로젝트 마감, 장애, 결산 또는 목표 설정 시즌, 조직개편, 아이디어 회의, 피드백 미팅에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는 바로 말을 자르고 감정을 담아서 이야기한 사람에게 주의를 주어야 한다. 보통 회의가 끝난 후가 좋지만, 태도가 너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주의를 준다.
나의 감정을 적절한 방식으로 잘 표현하는 것은 직장에서 꼭 필요한 스킬이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팀원을 공격하거나, 나 자신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면 다른 팀원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 피해의 확산을 리더가 막지 못하면, 팀은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회의의 기본은 경청이다. 그러나 경청을 해야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그냥 그대로 계속 듣고 있으라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수동적 듣기다. 수동적 듣기는 경청과는 거리가 멀다. 위에 나온 방법을 보면 알겠지만, 내가 말을 잘 끊기 위해서는 현재 상대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듣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말을 잘 끊고 회의가 목표한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적극적 경청이다.
직장에서 회의를 처음 진행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어떤 타이밍에 말을 끊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우리 팀에서는 그럴 경우 일단 말이 길어지면 말을 한 번 끊어보라고 한다. 그 후 반응을 살펴보면 말을 잘 끊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말을 끊었는데, 다른 참여자가 발언하는 사람의 의견을 더 들어보고 싶다고 한다면 잘못 끊은 것이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꽤 잘 끊은 것이다. 이렇게하는 이유는 말을 잘 끊는 복잡 미묘한 타이밍은 오로지 경험으로써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회의 진행자와 팀원 간의 신뢰가 어느 정도 쌓여 있는 것이 좋다.